마나헴 일생일대의 치욕이었다.
아무래도 왼쪽 무릎이 으스러진 것 같았다.
어제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무릎이 몹시 붓고 아파서 걸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이 당했는데, 위기의 순간에 그나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놈들을 너무 얕본 것이 큰 실책이었다.
분한 마음에 놈들을 소개한 누보를 죽이고 싶었다.
누보를 경호대에 일단 감금시켜 놓았으니 고문을 해서라도 놈들에 대해 알아본 후 추적을 하면 될 것이다.
칼잡이 두 명이 그렇게 맥을 못 추고 놈들에게 당한 걸 보면 열성당 놈들이 틀림없었다.
분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목발을 짚고 경호대로 갔다.
누보가 갇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그가 반갑게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마나헴 님, 갑자기 경호대 사람들이 저를 붙잡아 가두었어요. 빨리 풀어 주세요.
어제 일은 잘되셨지요?”
짝 - 하고 뺨을 갈기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
목발을 왼팔로 단단히 짚고 오른손으로 굵은 채찍을 잡은 마나헴이, 아무 말 없이 누보를 매질하기 시작했다.
누보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과 머리를 팔로 막았다. 채찍은 누보의 몸과 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한참을 때린 후 마나헴이 입을 열었다.
"네가 왜 맞는지 알겠니?”
"모, 모릅니다. 상금은 못 주실망정 왜 이러십니까?”
누보도 불만에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흠, 이놈이 아직 정신이 덜 들었구나.”
마나헴이 다시 채찍을 들고 계속 휘둘렀다.
누보의 찢긴 옷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만 때리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제야 채찍질을 멈춘 마나헴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누보는 마나헴이 목발을 짚은 것이, 나발 일행에게 뭔가 당하고 자기에게 분풀이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이 자리를 모면한 후 마나헴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겠느냐?”
누보는 그래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았다.
‘벌은 마침내 죄를 찾아낸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네, 생각해 보니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지난번 주신 은전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한참을 때리다 보니 마나헴은 누보가 어제 그놈들과 같은 패거리는 아닌 것 같았다.
누보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아니, 그놈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네요. 어떻게 감히 마나헴 님께 그런 짓을…. 말씀을 들으니 저도 분통이 터집니다.”
누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나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하튼 내가 곧 열성당 두목은 물론 그놈들을 다 잡을 것이다.
너도 이제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지난번 받은 은전은 돌려줄 필요도 없고, 상금을 더 받게 될 것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마나헴 님”
"지난번에 만난 덩치 좋은 놈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통 생각이 안 나네. 그놈이 어디서 뭐 하던 놈인지 아니?”
"죄송합니다. 저도 그날 처음 본 사람입니다요. 제가 연락할 수는 있으니까 아는 대로 즉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나헴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드럽게 말했다.
"처음에 너도 열성당 놈으로 생각하고 내가 좀 심했던 거 같구나.
내가 당한 걸 생각하니 너무 분해서 그렇게 되었다. 이해해라.
지금부터 그놈들과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네 친구 놈을 찾아서 빨리 그놈들의 은신처를 알아봐라.
이제 열성당 두목 놈을 잡으면 상금은 너와 내가 반씩 나눠 가지면 된다. 알겠지?”
"네, 마나헴 님. 젖 먹던 힘까지 보태서 놈들을 하루속히 잡겠습니다.”
경호대에서 누보는 터진 상처에 약을 바르고, 옷도 새 옷을 입고 바로 나갈 수 있었다.
누보의 마음은 다시 흔들렸다.
상금을 마나헴과 둘이 나누어 먹으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곧 마나헴이 그럴 사람이 아니니 속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누보는 나발을 만나러 호텔로 갔다.
돌 던질만한 거리를 두고,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누보를 따라가고 있었다.
큰 테이블 중간에 검붉은 색의 향초가 향기를 내뿜었고, 그 냄새에 집중하느라 둘러앉은 사람 중 반 이상은 눈을 감고 있었다.
바라바와 사라는 물론 아셀, 미사엘, 아몬, 헤스론, 나발까지 모두 모였다. 향기에 대해 아무도 특별히 생각나는 실마리가 없었다.
침묵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 아셀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향초는 이제 충분히 냄새를 맡았으니 그만 끄지요. 또 다른 사람도 나중에 맡아야 할지 모르니까.”
사라가 향초를 후 불어서 끄고 나무 상자에 잘 넣어 놓은 후에도, 초가 꺼지며 생겨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사무엘님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럿이 모여 있을 때 열성당의 다음 당수에 대해 같이 의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모인 사람들의 구성으로 볼 때 아셀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사라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며 인사부터 했다.
"먼저 아버지의 장례식을 무사히 엄수할 수 있게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도 꿈을 꾸는 듯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만, 아셀님의 말씀대로 열성당 당수를 오래 비워 둘 수는 없겠지요.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한 말씀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라가 인사를 마치고 앉은 후 아무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