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루고는 사무엘을 만난 후 로무스에게 심문 내용을 보고했다.
루브리아도 아버지 옆에 있었다.
“아가씨가 사무엘을 설득한 것 같습니다.
가버나움 열성당의 두목이 사실은 본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갈릴리 전체 열성당 두목이 누구인지도 빠른 시일 내에 알아내겠습니다.”
로무스는 루고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본인이 가버나움 열성당 두목이라… 어떻게 생각하나?”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사무엘이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건 확실하나, 그가 접촉하는 거물급은 가버나움에서는 없었습니다.”
“그렇군. 이용가치도 있겠네. 내가 직접 만날 테니 데리고 오게.”
루고가 사무엘을 데리러 간 사이에 로무스가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네가 이런 재주도 있었구나. 루고도 놀란 것 같다. 하하.”
"아빠가 만나 보시고 곧 풀어주는 은혜를 베푸신다면, 완전히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잠시 후 옷을 단정히 갈아입은 사무엘이 루고와 함께 들어왔다.
로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엘에게 옆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사무엘, 당신이 가버나움 열성당의 두목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완강히 진술을 거부하다가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온 이유는 뭡니까?”
사무엘은 잠깐 고개를 떨구더니 루브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장님의 따님을 보니 제 딸자식이 생각나서 마음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제 딸이 열성당 일로 화를 당한다면, 아버지로서 크게 후회가 될 것 같았고, 또 어차피 열성당은 지난번에 큰 피해를 봐서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루고가 옆에서 거들었다.
“사무엘 두목에게 18세 정도의 딸이 있는데 열성당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루고의 말이 끝나자 로무스가 사무엘을 보며 말했다.
“사무엘 님, 그럼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우리와 힘을 합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로무스가 상대방을 가버나움 열성당의 우두머리로 대우하며 정중히 물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감금된 우리 열성당원들도 모두 풀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문제는 고려해 보겠지만, 약속은 못 합니다.
또 사무엘 님도 지금 그냥 풀어 드릴 수는 없고, 아까 말씀하신 따님을 우리가 교육하는 조건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교육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좋은 말로 교육이고 솔직히 인질입니다.
지금의 헤롯왕도 젊은 시절 로마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지요.
사무엘 님도 그만큼 거물이라는 뜻입니다. 하하.”
루고도 옆에서 같이 소리 내 웃으며 분위기를 맞추었다.
“교육은 어디서 받게 되나요?”
“여기서 내가 좀 데리고 있다가 로마나 알렉산드리아 중 따님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겠습니다.
우리 딸 루브리아가 책임지고 잘해 줄 겁니다.”
로무스의 말에 사무엘과 루브리아는 서로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무엘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문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마음은 더욱 불안했다.
갑자기 귀빈 대우를 받으며 진수성찬을 먹으려니 음식이 목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졸지에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어 사라가 인질로 오게 된 것이다.
열성당에서는 여차하면 배신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
사무엘은 순간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
‘나 하나 죽으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충동이 일었다.
그러면 당원들에게 나의 진정한 마음을 알릴 수 있고, 사라도 인질로 잡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다.
무엇보다 사라가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열성당의 후계 문제와 사라의 장래 문제를 어느 정도 매듭지은 후 무엇이든 결단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윗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한때 도망 다니기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루고 백부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사라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대장님 집무실에 있으니 같이 가시죠.”
루고를 따라 방에 들어가니 로무스 옆에 앉아 있던 사라가 일어나 사무엘을 껴안았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난 괜찮다. 네가 걱정이지.”
“아니에요. 로무스 대장님께 말씀 자세히 들었어요.
저를 공부시켜 주시고 나중에는 로마에도 보내 주신다고 하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로무스가 입을 열었다.
“따님이 아주 총명하고 효녀입니다. 사무엘 님이 자랑하셔도 되겠어요.
지금 사라 말처럼 이제 우리는 한 가족같이 지내야 합니다.
루브리아는 동생이 없으니 사라를 동생처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시기가 지나면 사라의 외부 출입도 좀 더 자유로워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전에 말씀드린, 감금된 우리 당원들도 같이 좀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저만 풀려나면 제 입장이 몹시 곤란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미 그런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루브리아 아가씨는 안 오셨나요?”
“네, 안 왔습니다.”
대답하는 로무스의 얼굴이 무거웠다.
“그럼 저는 대장님만 믿고 이제 가게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네, 따님이 보고 싶거나 하실 말씀이 있으면 언제든지 근위대 관사로 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라야, 마음 편히 먹고 잘 지내렴.
일 좀 정리하고 다시 올게.”
사라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아버지, 제 걱정은 마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루고 백부장은 사무엘 님을 밖으로 모시고 가고, 사라는 나와 같이 루브리아에게 가 보자. 그럼 사무엘 님, 또 만나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고 나가는 사무엘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두 사람이 나가자 로무스가 사라에게 말했다.
“사라야, 사실은 지금 루브리아의 눈이 좀 안 좋아져서 치료를 받고 있단다.”
“아, 네,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요.”
“그래, 그렇게 알고 만나러 가자.”
대장의 관사는 근위대 안에 있어서 언덕길을 잠깐 가로질러 가면 되었다.
숲이 우거지고 작은 새들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날아다녔다.
사라는 ‘새들은 인질이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로무스 대장과 함께 루브리아의 방에 들어갔다.
루브리아는 둥그런 분홍색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에는 무언가가 붙어 있었고, 옆에서는 얼굴이 검은 여자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루브리아가 자고 있나?”
대장이 해방 노예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아, 아빠 오셨어요? 안 자요!”
루브리아가 침대에서 누운 채로 대답했다.
“루브리아야, 사무엘님의 딸 사라가 지금 왔다.
네가 지금 눈이 불편한 것을 알고 있단다.”
루브리아는 눈에 붙인 것을 떼고 일어나 침대에 앉아 사라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사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반가워요. 루브리아예요. 이쪽은 유타나라고 하고요.”
루브리아가 밝게 웃으며 유타나까지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