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는 사무엘 선생의 가게에 들렸으나 선생이 바쁜 것 같아 눈인사만 하고 나왔다.
가게 건너편에서, 루고 백부장이 파견한 병사의 눈길이 바라바의 뒤통수에 꽂혔다.
바라바는 답답한 마음에 글로바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이 반갑게 바라바를 맞이해 주었다.
“바라바, 어서 와. 지난번에 같이 온 로마 아가씨도 잘 있지?”
“네, 나중에 식사 한번 모시고 싶어 합니다.”
루브리아가 지금 실명 위기에 있다는 말이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언제든지 알려 주게.
난 젊은이들과 식사하며 토론하는 걸 무척 좋아하네. 맛있는 포도주도 한두 잔 하면서 말이야.”
“네, 곧 그럴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오늘은 선생님께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누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죄를 지어서 그런 건가요?”
바라바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선생이 잠시 바라바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유대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조상의 죄나 자기 죄 때문에 신의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죄가 없이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무언가 죄를 찾아내고 적절히 적용한다네.
마치 죄를 찾아내지 않으면 더 큰 벌을 받을 것처럼…”
바라바는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하지만 지진이 나서 사람들이 다치면 우선 그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누군가가 눈이 안 보이면 속죄하라고 하기보다 우선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나?”
바라바는 일단 루브리아의 병이 누구의 죄는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네….”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종교의 본질이라네.
하지만 율법 학자들은 종교를 독단적으로 해석했고, 그에 대한 논리를 여러 가지로 세분하여 사람을 옭아매는 그물로 만들어 버렸지.
그러니 이들이 말하는 종교는 종교의 본질과는 완전히 어긋나게 되었네.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된다는 이유가 안식일이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지.
나사렛 예수도 안식일에 환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크게 비난을 받는 걸 보면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알 수 있지.
유대교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작은 지역 종교에 그칠 것이야.”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안해집니다.”
글로바 선생의 예리한 눈이 잠시 바라바의 얼굴에 머물렀다.
“혹시 주위에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있나?”
“사실은 전에 같이 뵌 그 로마 아가씨가 눈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서 의사가 실명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 걱정이 많이 되겠네.”
“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글로바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어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나사렛 예수가 고쳤다고 하던데… 그를 아는 사람이 혹시 주위에 없나?”
바라바는 이 말을 듣자마자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즉시 근위대로 향했다.
“고향 친구입니다.”
근위대 부속실 관사에서 바라바가 말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바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유타나와의 관계를 물어보는 근위대 병사의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면회실에서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는 로마 군병들의 구령 소리가 귀에 익숙해질 즈음 유타나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작은 면회실 테이블 앞 의자에 유타나가 앉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돼서요, 좀 어떠신가요?”
“아직 별 차도가 없으세요. 그래도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으세요.”
“의사들은 무슨 대책이 없나요?”
“네, 약초를 진흙에 개어서 눈에 바르거나, 뜨거운 수건도 대고 뭐 그런 정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가씨 눈이 석청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한 것은 너무 속이 상해서 한 말이니 이해해 주세요.”
바라바가 숙였던 머리를 들면서 말했다.
“다른 방법을 한번 써 보는 건 어떨까요?”
“어떤 방법요?”
“방법이라기보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예수라는 랍비가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고쳤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분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들은 건 아파서 거의 죽게 된 근위대 백부장의 하인을 치료해 줬다고 들었어요.”
“백부장의 하인을요?”
“네, 예수 선생님이 고쳐 주셨는데 하인을 직접 만나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어떻게 만나지도 않고 고치나요?”
“예수께서 하인을 보시려고 백부장 집에 오려는 것을 백부장이 만류하면서, 그냥 말씀만 하셔도 고칠 수 있으니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나 봐요.”
“그래서요?”
“예수께서 따르는 무리에게 유대인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이 그 후 집으로 가 보니 하인이 이미 나아 있었다는 거예요.”
“아, 믿음이 병을 고친 건가요?”
“예수 선생님의 능력을 믿는 백부장의 믿음이겠지요.”
“루브리아 아가씨의 눈도 믿기만 하면 고치실 수 있겠네요?
제가 예수 선생의 제자들을 아니까 당장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라바는 즉시 근위대를 나와서 아몬의 집으로 향했다.
열성당원이었다가 예수 선생의 제자로 들어간 시몬을 아몬이 잘 알기 때문이다.
아몬은 집에 없었다. 바라바의 마음이 조급함으로 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