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무스는 집무실에서 바라바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브리아가 바라바에게 더 마음이 기울기 전에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봐서는 바라바가 괜찮은 젊은이 같지만 아무래도 루브리아의 짝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노크 소리와 함께 루고 백부장과 바라바가 들어왔다.
“오, 바라바. 그동안 잘 있었나? 이리 와 앉지.”
“네, 대장님.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본 바라바는 전보다 더 의젓하고 늠름해 보였다.
역시 루브리아가 호감을 느낄 만한 젊은이였다. 루고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열성당 상황은 어떤가?”
“네. 지난번 성전사태 이후 활동을 거의 중단했습니다. 사무엘과 그 일당만 잡으면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겁니다.”
“바라바, 그동안 뭘 좀 알아냈나?”
“죄송하지만 아직 별 성과가 없습니다.”
바라바는 로무스가 왜 급히 불렀는지 몰라 긴장이 되면서 말을 아꼈다.
로무스의 방에서 은은한 계피 향내가 풍겨 나왔다.
“우리는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네.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가 없으면 불원간 사무엘을 체포할지도 몰라.
그 전에 최선을 다해 보도록‥. ”
바라바가 머리를 숙였고 로무스의 말이 계속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 땅에 사는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 사람의 정신적 고향이지.
그리스 사람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많이 살지만, 그들에게는 정신적 구심점이 없어요.
유대인들은 어디에 살든 1년에 2*드라크마의 헌금을 예루살렘 신전에 바친다고 들었네.
참 대단한 민족이지. 안 그런가, 루고 백부장?”
“네, 그렇습니다. 대장님.”
루고는 바라바를 슬금슬금 쳐다보며 말했다.
“이 땅에 거주하는 20세 이상의 유대인들은 성전세도 1년에 반 *세겔씩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랍비는 돈이 없는 제자에게, 오늘 처음 잡는 물고기 입속에 한 세겔이 있으니, 그것을 찾아서 성전세를 내라고 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사는 유대인보다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키아 등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 더 많으니 그들이 내는 성전세가 더 클 것입니다.”
“그렇지, 최근에는 로마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늘어났다더군.
이들이 이렇게 뭉치는 것은 역시 유대교라는 유일신 종교 때문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보면 약간의 균열도 있습니다.”
“그런가? 예를 들면?”
“우선 양대 파벌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교리도 다르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또한, 지역별로 저소득층인 내륙에 사는 사람들과 무역이나 상공업을 하는 해안지역에 사는 유대인들도 생각이 서로 다릅니다.
열성당은 목축이나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저소득층을 파고들어 불만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은 해안지역의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정책을 이해하고 대부분 협조적입니다.”
“루고 백부장이 역시 파악을 잘하고 있구먼.”
“감사합니다. 대장님.”
“유대인 본인은 어찌 생각하나? 바라바?”
“제 생각에는 유대의 위치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탓에 험난한 역사를 이어 나갈 수밖에 없어서, 자유나 독립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음, 확실히 그런 면도 있겠지. 위로는 시리아, 아래는 이집트, 동쪽엔 바빌론까지 유대 민족을 노예로 전락시키며 핍박한 역사가 있으니까.
그 후 유대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이제 로마의 힘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시대가 되었지.
우리는 유대의 유일신을 인정하며, 유대 민족에게 스스로 대표를 뽑아 지방 행정을 하도록 하고 있네.
형벌의 집행도 사형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치적으로 하게 했는데, 이 정도면 그동안 어느 나라보다 유대 민족을 인정해 주고 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준 것이지.”
바라바는 로무스의 말이 맞는 말이지만,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완전한 자유 독립을 항상 추구해 왔기에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한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바라바가 자기의 말을 수긍했다고 생각한 로무스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로마가 오늘날 여러 국가와 민족을 통합하여 제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힘은, 능력 있는 사람은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고 등용하는 개방정책 때문이지.
앞으로는 유대 출신 중에서 로마 원로원 위원도 나오고, 시리아나 아프리카 지역 총독도 나올 것이네.”
루고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루고 백부장은 먼저 나가보게.”
루고가 허리를 굽히고 나가자 로무스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바라바에게 물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젊고 패기가 넘치니 장래의 포부도 커야 할 텐데, 이번 열성당 잔당을 소탕한 후 특별히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가?”
“별로 없습니다.”
“음, 그럼 내 밑에 와서 일을 좀 하면 어떻겠나?”
로무스가 내 쉬는 숨결이 전해졌다.
“여기 근위대에서 일을 좀 배우고 나면 알렉산드리아로 보내 줄 테니, 거기서 백부장으로 근무하면 어떨까?”
“감사합니다만, 아버지를 제가 모시고 있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바라바가 로무스의 눈길을 피했다.
*드라크마: 그리스의 은화, 앞면에 '아테나' 여신(전쟁의 여신)
*세겔: 두로에서 만든 은화, 앞면의 인물은 두로의 신 ‘말까르트’
*마태복음 17:24~27 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설에 인용 :"얼마 전 어느 랍비는 돈이 없는 제자에게, 오늘 처음 잡는 물고기 입속에 한 세겔이 있으니, 그것을 찾아서 성전세를 내라고 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