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중앙 회당에는 300석 규모의 자리가 거의 꽉 차게 사람들이 모였고, 루브리아와 바라바는 긴 의자에 같이 앉아서 글로바 선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버나움 중앙회당장이 먼저 나와서 글로바 선생을 소개했다.
“글로바 선생님은 유대의 플라톤이라 불리는 *필로 선생님의 수제자이십니다.
필로(philos)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명성을 쌓으시고 이제 고향인 엠마오에 돌아오셔서 후진 양성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글로바 선생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와 함께 글로바가 미소를 띠고 등장하였다.
호리호리한 몸매는 여전하고 못 본 사이 흰머리가 많아진 것 같았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자유롭습니까?”
그는 청중에게 침묵을 유도하여 자신을 주목하게 하고는 말을 계속했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혼란한 세상에서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네가 화를 돋워도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화를 낸다는 말입니다.”
객석에서 선생을 바라보는 청중들의 눈이 반짝였다.
“내 생각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봐야 합니다. 내 몸짓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봐야 합니다.
신의 말씀이 ‘네가 하는 일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라 하는데, 그 한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렇게 고생이 심하구나’ 하십니다.
한 걸음 떨어지지 못해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청중으로 꽉 들어찬 회당을 좌우로 한 번 둘러본 후 선생이 계속 말했다.
“한 걸음 떨어지면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생각하고 깨닫는 것도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이란 자기가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지, 남의 말이나 남의 글을 통해서 이해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루브리아는 이 유대 랍비의 말이 신선하게 느껴져 바라바를 살짝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글로바 선생은 자유에 관한 설명을 좀 더 한 후 본격적으로 신을 언급했다.
“여러분, 유대 속담에 ‘인간은 생각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누가 신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침묵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 선생이 말했다.
“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신의 웃음소리를 듣지, 신을 잘 아는 사람은 신의 웃음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신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생기며, 이 능력이 광야 같은 세상을 이겨 나가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신의 웃음은 인간의 생각보다 무한대로 크기 때문이지요.”
바라바는 글로바 선생의 말씀이 좀 어렵지만 그럴듯했고, 이런 말을 안나스 제사장이 들으면 뭐라고 할까 궁금했다.
강의가 계속되었지만, 그 후로는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발이 가 봤다는 점성술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방화범을 찾아 복수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수가 터지며 글로바 선생의 강의가 끝났다.
바라바는 루브리아와 같이 앞으로 나가 글로바 선생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바라바예요.”
“바라바, 자네가 내 강의에 다 왔구나! 요셉 선생님은 건강하시지?
며칠 전에 여기 오신 것 같았는데 내가 인사도 못 드렸네.”
“네, 아버지는 건강하십니다.
오늘 말씀 재미있게 잘 들었어요. 저도 이제 철이 드나 봅니다. 선생님 말씀이 조금 이해가 되네요.”
바라바가 옆에 서 있는 루브리아를 인사시켰다.
“루브리아라고 합니다. 선생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언제 시간 내주시면 식사라도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아, 그래요. 아리따운 로마 아가씨군요. 고맙습니다.”
바라바와 루브리아는 글로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나와서 유타나가 기다리는 마차에 올라탔다.
저녁 공기는 시원했고 마차 속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연인처럼 보였다.
루브리아가 하얀 도자기 그릇을 열고 잘 익은 무화과 열매를 집어서 바라바에게 건네주었다.
“오늘 루브리아 님 덕분에 공부 많이 했습니다. 글로바 선생 말씀이 좀 어렵고 철학적이지만 뭔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선생에게만 의존해서는 결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라는 말씀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을 찾아 또 이런 강의를 들어야겠지요. 하하.”
“저도 생각보다 좋았어요. 나중에 같이 식사하며 제가 궁금한 몇 가지를 글로바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네요.”
“네, 그러시지요. 제가 선생님과 자리 한 번 만들어 볼게요.”
“어쩌면 나중에 우리가 로마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선생님도 만날 수 있을지 몰라요. 간혹 로마에 오신다고 들었어요.
그분이 쓴 모세 오경에 대한 주석서를 조금 읽어봤는데 저에게는 어렵더군요. 호호.”
바라바가 그러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는데 벌써 마차가 가게 앞에 당도했다.
가게에서 내린 후, 돌아가는 마차가 가도를 꺾어 안 보이자, 바라바는 오늘 루브리아의 손이라도 잡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손에는 무화과 열매가 그대로 들려 있었다.
*필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유대인 철학자로서 기독교 초창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AD39년에 유대 사절단 대표로 칼리굴라 황제를 로마에서 만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