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가 석양빛으로 반짝인다.
헤롯 왕은 *마케루스 여름 궁전에서 사해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 헤롯 대왕이 유사시에 피신할 곳으로 증축한 요새인데, 짠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지겨웠다.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뿌린 갖가지 향수가 음식 냄새에 뒤섞여 역겨웠다.
요즘 들어 번번이 자신의 의중을 슬쩍 떠보는 헤로디아의 얼굴도 보기 싫었다.
처음부터 좀 무리하긴 했었지만, 헤로디아를 로마의 이복동생 빌립의 집에서 처음 보았을 때, 이 여자를 뺏어 소유할 결심을 하였고 그대로 실행하였다.
또 헤롯은 당시 본부인인,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였던 파샬리스와 이혼했다
그것이 헤로디아가 남편과 이혼하고 헤롯에게 오는 첫째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진한 화장에 그리스 복장을 한 무희들이 연회장 한가운데로 나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헤롯은 이런 춤을 구경하는 것도 이젠 시큰둥했다.
연회장에 앉아 있는 대신들이나 사제들이, 로마에서 몰래 들여온 팔찌나 반지를 끼고 자랑하는 꼴도 보기 싫었다.
자신의 팔목에도 커다란 은팔찌가 끼워져 있었고, 목에 걸친 루비 목걸이도 역시 로마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요즘은 유대 땅에서 만들어진 짝퉁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문한 헤롯의 동상도 제막했다.
궁전 입구 붉은 대리석 바닥 위에, 하얀 기둥 사이로 위엄있게 서 있는 자신의 전신상을 본 헤롯은 그제야 엷은 미소를 띠었다.
헤롯의 생일 축하연이 무르익어 가면서, 시녀들이 계속 나폴리산 고급 포도주를 날라왔다.
밤이 깊어 갈수록 포도주가 잔에서 넘쳐흐르며, 술 취한 귀부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무렵, 안나스 제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시는 헤롯 전하!
이 땅의 백성은 전하의 은혜로 오늘 밤도 안전하고 행복하나이다.
그러나 겸허하신 전하의 만류로, 오늘 제막한 동상이 겨우 9번째 동상입니다.
송구하고 또 송구하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조각가라도 전하의 은덕을 표현할 수는 없나이다.
소신은 오직 전하의 강령하심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헤롯 전하 만세!”
헤롯은 성전을 크게 늘리고, 안나스는 성전에서 제물을 팔아 얻는 막대한 이익을, 왕실과 공유하는 상부상조가 오랜 기간 공고히 유지되고 있었다.
지금 대제사장도 안나스의 사위이고, 안나스 가문의 위세는 이 땅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연회가 더욱 무르익어 악사들이 연주하는 *기타라 소리가 흥을 돋울 때, 헤로디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지며 헤로디아를 주목한다.
도도하게 아름다운 그녀가 헤롯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입술을 열었다.
“전하의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제 딸이 나와서, 오늘을 위해 준비한 춤을 추겠습니다. 부디 어여삐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배꼽이 드러나고 허벅지가 비치는 의상을 걸치고,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15살밖에 안 되었지만, 엄마를 닮아서인지 농염한 여인의 자태가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 풍겨 나왔다.
그녀가 헤롯에게 다가와 의붓아버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헤롯은 어린 그녀의 눈 속에서 깊은 우물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빠질 것만 같아서, 무심결에 오른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꽉 쥐었다.
바로 그때 헤로디아가 손등으로 헤롯의 뺨을 비비며 속삭였다.
“당신은 저 아래 동굴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이 무섭지요?
이제 제 딸 살로메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녀가 입은 3겹의 베일을 모두 벗기세요.”
헤롯이 궁전의 경호실장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경호실장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저 위험한 인물을 더 이상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이 연회장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오늘 뭔가를 보여줄 것이다.
세례 요한이 감금되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 전에 그를 없애야 한다.
산헤드린 의회에 요한의 처형문제가 올라가면 잘난 척하는 바리새인들 몇 명이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오늘 그의 처형은 헤로디아 왕비가 요청한 것으로 기록될 것이니 나의 손은 깨끗하다.
일단 처형해 버리면 의회 의원들도 처음엔 떠들어대다가 곧 잠잠해질 것이다.
세례 요한은 의원들에게도 껄끄러운 존재다. 오히려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일을 내가 대신 해 준 셈이니 속으로 좋아할 것이다.
살로메가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금실로 장식된 반투명 가슴 가리개에 헤롯의 눈길이 꽂혔다.
그녀가 헤롯 앞으로 걸어와 그의 앞에 놓인 금잔을 들어 술을 따랐다.
잔이 가득 넘치면서 흘러내린 붉은 포도주가 그녀의 배꼽 위로 떨어져서 치마 속 계곡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녀는 헤롯에게 술잔을 쥐여 주고 연회장 한가운데로 미끄러지듯이 걸어갔다.
그리고 꼿꼿하게 선 채로 고개만 움직여서 춤을 시작했다.
어깨가 움직이며 팔이 펴지고 가는 허리로 원을 그렸다.
양팔을 벌리면서 엉덩이를 강하게 털어내자 음악 소리도 튕겨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음악을 이끌었고 기타라 소리가 그녀의 앙증맞은 배꼽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의 동작이 격렬해지면 음악도 불꽃을 튀기었다. 그녀의 몸뚱이가 뱀처럼 휘어지면 음악도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렸다.
사해에서 불어오는 따가운 바람이 헤롯의 콧구멍으로 훅 들어왔다.
헤롯이 잔에 가득한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유대 광야의 모래바람처럼 휘도는 그녀의 춤이 연회장을 뒤덮었다.
잠시 후 모래가 걷히고 퍼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보듯이 살로메의 목이 뒤로 꺾어졌다.
저 아래 동굴 감옥에서 칼날이 하얀 선을 그었다. 요한의 목이 떨어졌다.
살로메의 춤도 멈추었다.
*마케루스 궁전터
*마케루스 지도
*기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