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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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95 화 ★ 덧칠

wy 0 2019.10.26

 

토마스 김의 메일이 계속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의 전설’이 ‘조반니’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의 사인에 덧칠한 흔적이 최근 적외선 투시로 발견되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위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가들이 젊었을 때 다른 이름으로 서명한 것을 나중에 자신의 알려진 이름으로 고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만약 위작으로 밝혀진다면 그림 제작 연대와 내용도 문제가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6C에 '그레고리' 교황이 창녀라고 발언한 후 1500년간을 음지에서 묻혀있다가 2016년이 되어서야 사도로 인정 받았습니다.

 

6C 이후에 그녀를 그린 작품은 별로 없고 이 작품도 조반니의 후기 작품인 1C 말의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마르세이유에서 온 배의 그림, 즉 '막달라 마리아'라는 배의 콥트어 글자의 역사성이 인정되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이름 외에도 덧칠한 부분이 있다면 새 사도신경과 이 그림의 연결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 제가 내주에 플로렌스로 출장을 가서 직접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런던 토마스 드림

 

가슴을 웅크리고 단숨에 끝까지 읽은 문교수가 긴 한 숨을 내쉬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도마일행이 새사도신경을 곱트어로 쓴 것에 대한 학문적 주장은 바로 이 그림뿐 인데 이것이 무너지면 연결 고리가 빠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막달라 마리아가 이집트에 간 적이 없다는 반증은 없지만 그만큼 새사도신경의 역사성은 약해진다.

 

극단적으로 새사도신경은 12C에 만든 작품이라고 주장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니케아 호수의 성당은 12C에 일어난 지진으로 물 속에 잠겼기 때문이다.

 

새 사도신경에서 쓴 콥트어는 8C 이후에는 거의 없어진 문자이긴 하지만 1C에 마리아가 썼다는 주장과는 큰 차이가 난다.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AD70년경 가장 먼저 쓰였고, 30년 후쯤 요한복음이 마지막으로 써졌다고 보는데 바울 서신은 그보다 몇 십 년 전, 즉 AD 50-6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지금의 신약성경은 2C초 까지는 다른 문헌들과 같이 섞여 있었는데, 현재의 신약 27권의 정경이 최초로 확정 된 것은 니케아 공의회의 최종 승자인 아타나시우스의 개인 서신에서 비롯되었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신약은 같으나 구약은 7권이 더 정경에 포함되어 있고, 그 중에 유대민족을 독립 국가로 잠시 유지한 마카베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 후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며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을 신약에서 빼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문교수가 시계를 본 후 런던으로 전화를 걸었다.

 

3-4번 벨이 울린 후 마리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로빈슨 교수가 며칠 전 휠체어에서 일어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어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신문에 위독하다는 기사가 났다는 것이다.

 

고관절에 금이 갔지만 수술을 하지는 않았고 기브스를 푼 후에는 휠체어에 앉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터어키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명랑했다.

 

박사를 바꿔주겠다는 것을 내주쯤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토마스 김에게 좀 더 확실한 결과를 들은 후 그림 문제를 상의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맥심 가루 커피를 한 잔 만들고 소파에 앉은 문교수의 머리 속에 여러 모양의 먹구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림이 위작이라면 사인 부분만 아니라 배에 써있는 콥트어까지 덧칠한 것이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새 사도신경이 막달라 마리아가 콥트어로 쓴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잃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은 물론 로빈슨 교수의 학문적 업적에도 흠결이 생길 수 있다.

 

사실 오래 전 그림의 위작 여부는 한마디로 가름하기 어렵고, 지금도 다빈치나 램브란트의 작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토마스 김의 말대로 사인 만 덧칠을 했다면 그림이 위작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특별히 언론에서 문제를 삼지 않으면 그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태가 그 정도로 마무리 되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커피잔을 입에 대는데 잔 밑에 물방울이 몇 방울 떨어져 이태리 가죽소파를 적셨다.

 

다행히 진한 회색 소파라 얼룩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얼른 크리넥스 한 장을 뽑아서 물기를 닦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동구 학장이 손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얌전히 들어왔다.

 

“선배님이 이 방에 계시다는 생각만 해도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이학장이 앞자리에 앉으며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놓는데 달걀이 3-4개 들어있었다.

 

“이 번 주일이 부활절이라 1학년 학생들이 제 방으로 가지고 온 달걀입니다.

 

이 번 부활절은 선배님께서 새사도신경을 발굴하시고 첫 번 부활절이라 더욱 뜻 깊은 부활의 감격을 맛 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문교수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원래 이 번 주일에 선배님께서 부활절 설교를 해주셔야 하는데 부득이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어느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하는 게 좋을까요?”

 

 ‘학장님이 성경을 훤히 아시는데 잘 알아서 하시지요’ 라고 하려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바꾸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이 어떨까요?

아니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도 좋고요.“

 

이동구의 작은 눈동자가 커지면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말씀과 그렇게 일치 하실 수가 있을까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라는 말씀이지요. 아멘!”

 

그가 포동포동한 손가락을 깍지 끼며 기도 자세가 되었다.

 

“다음 주말에 그 동안 연기했던 새사도신경에 대한 기자회견을 학교에서 하려고 합니다.

 

괜찮으시면 저도 옆에서 배석하려고 합니다만...”

 

“네, 그러시지요.”

 

이 학장의 고개가 깊숙이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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