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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89 화 ★ 파문 재판

wy 0 2019.10.05

 

 

 문익진교수는 영국에서 돌아와, 연극 무대에 올릴 단막극 ‘파문 재판’을 쓰기 시작했다.

 

‘21C 기독교 광장’ 주최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공연하는 행사를 위해서다.

 

딱딱한 신학을 강의하는 것보다 이런 연극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파문을 당할 사람의 입장에서 이러한 대본을 쓴다는 것이 재미 있기도 하였다.

 

주인공은 서울의 어느 대학 교회 목사로서 이름은 ‘문진’이다.

 

연극 <파문 재판> 1막 1장

 

중세 재판정에서 피고 문진 목사가 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옆에는 17C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앉아 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문진 목사에게 재판장이 엄숙히 선언했다.

 

“모든 천사의 결정과 역사적 성인의 판단에 따라 피청구인 문진 목사를 파문한다. “

 

재판관은 크고 누런 중세 가발을 썼는데 언뜻 바로크 시대 음악가처럼 생겼다.

 

안경을 끼고 판결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자세로 계속 읽어 내려가는 재판장의 모습이 엄숙했다.

 

“목사 문진을 영원히 기독교에서 제명하며 추방한다.

 

이제 잠을 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에도 꿈을 꿀 때에도 항상 저주를 받으라.

 

집을 나갈 때도 집에 들어올 때도 저주를 받으라. “

 

주심 판사 옆에 앉은 뚱뚱한 부심이 공손한 자세로 옛날 유성기 옆에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 RCA LP 판을 올려 놓았다.

 

음악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나오는데 재판 분위기와 어울렸고, 1절이 끝나기 전에 판사가 나머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신은 절대 그를 용서하지 마옵시고, 분노의 영원한 불길이 문익진을 향해 훨훨 계속 타오르도록 하소서.

 

경고하는 바 그 누구도 문진과 말로도 글로도 소통하면 안 되고, 그에게 어떠한 호의도 베풀면 안되며 그와 한 지붕 아래 머물지 말지라.

 

그를 길거리에서 스치게 될 경우에도 66cm 이상 거리를 둘 것이며, 특히 그와 말을 하거나 그가 쓴 문서를 읽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스피노자의 할머니가 마녀였으므로 그녀가 포르투갈에서 화형 당한 것을 잊지 않는다면, 암스테르담이나 런던이나 서울에 사는 어느 누구도, 문진의 파문과 그 벌로 화형에 처함을 의심치 않으리라.”

 

옆에 앉은 스피노자가 측은한 눈길로 문목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판결문이 나와 똑 같군.

 

요즘 이단 재판은 워낙 피고인이 많아서 나에게 내린 판결문을 그대로 이름만 바꿔서 선고 한다오.

 

너무 상심하지 마시게.

 

아마 화형은 시키지 않을 걸세. “

 

어쩐지 판결문이 눈에 익다 싶었는데 당시 23살의 스피노자에게 내린 유대교의 파문 결정문이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

 

“저는 유대인도, 유대교도 아닌데 왜 스피노자님과 같은 파문을 당해야 하나요? “

 

 

"피고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마치 갈릴레오가 처음 재판을 받을 때와 흡사 하도다.

 

그는 단순히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주장하여 파문 당한 것은 아니오.”

 

“네 저도 잘 압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인 갈릴레오는, 당시 이미 모든 물체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학설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체 성례식때 먹는 빵과 포도주의 원자가 변하지 않으므로, 그것들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이 파문의 결정적 이유였지요. “

 

재판장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재미있다는 듯 문교수를 바라본 후 질문했다.

 

“그런 것도 아는 피고가 본인이 파문 당하는 이유는 모른단 말이오? “

 

“모릅니다.  혹시 ‘새사도신경’을 로빈슨 박사와 같이 발표해서 그런가요? “

 

어이가 없다는 듯 재판장이 옆에 있는 부심과 눈을 마주친 후 말했다.

 

“ 새사도신경은 사람이 만든 거 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았소.

 

피고인의 파문 사유는 S교단의 ‘대표 고문’직을 거절 했기 때문이오. “

 

문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를 응시한 후 입을 열었다.

 

“제가 파문을 당한다면 슈바이처 박사도 파문 당해야 합니다.

 

그는 ‘역사적 예수 탐구’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기적을 사실이 아닌 상징으로 보았지요.

 

독일의 세계적 신학자 ‘칼 바르트’는 어떤가요?

 

그는 천국에 가면 하나님보다 모짜르트를 먼저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데 당연히 파문 감이지요.

 

더욱이 모짜르트가 천국에 있는지는 전혀 확실치 않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더 문제가 있지요.

 

그는 만년에 “젊었을 때의 신앙을 돌아보니 다소 폭이 좁았다” 고 회고하며 구원은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있을 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LA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박사와의 대화에 나온 내용이지요. “

 

재판장이 누런 가발을 옆으로 쓸어 올리며 물었다

 

“피고는 Y대학에서 연구실의 소파도 이태리제로 갈아주고 석좌 교수 자리도 마련했는데 왜 ‘새사도신경’ 같은 것을 발굴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건가요? “

 

문목사가 언뜻 말문이 막혔는데 옆에서 스피노자가 메모지를 슬쩍 건네며 읽으라고 했다.

 

 “내가 이제까지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해 온 까닭은 인간의 행동을 비웃기 위해서도, 그것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도, 그것을 미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소.

 

다만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오.”

 

스피노자는 자신의 말을 문목사가 대독 한 것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저 옆에 피고를 도와주는 사람을 당장 퇴장시키시오.”

 

투구를 쓰고 긴 칼을 찬 옥졸 두 명이 냉큼 스피노자의 양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하지만 그가 있던 자리에 어느새 허연 수염을 기른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구부정하게 앉아서, 문진에게 누런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문목사가 미소를 지으며 내용을 읽어나갔다.

 

“재판장님, 이번에는 내가 질문 하나 하겠소이다.

 

그 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의 종류가 대개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

 

재판장이 부심과 머리를 맞대었으나 모르는 성 싶었다. 문목사가 입을 열었다.

 

“약 400억 종이오. 그 중 현재 생존 해 있는 종은 불과 4천만 종인데 0.1%밖에 안되지요.

 

최근 흰 코뿔소 수놈이 죽어서 지구상에 흰 코뿔소는 사실상 멸종되었소.

 

현존하는 4천만종 중에 가장 많은 종의 생명체가 뭔지 아십니까?”

 

재판장이 대답 대신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거기 앉아 있는 노인장은 누구시요?”

 

노인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다윈, 찰스 다윈이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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