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황금 개띠가 밝았다.
1/2일 화요일 주간 시사에는 문익진교수 폭행사건이 특종으로 실렸다.
-한국의 세계적 신학자 문익진 교수, 작년 12/31일 대학 교회에서 설교 도중 손모씨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지난 3년동안 재직하던 Y 대학을 떠나는 마지막 설교였는데, 가해자인 손모씨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로 밝혀졌다.
문교수는 설교 도중 손모씨가 휘두른 의자에 맞아 왼쪽 안구가 약간 손상되었으나 S 병원 안과에서 긴급 수술을 하여 시력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이다.
그는 신학계의 살아있는 전설, 영국의 폴 로빈슨 교수의 제자이면서, 곱트어(고대 이집트어)로 쓰여진 성경 해석에 세계적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이 인터뷰는 12/31일 저녁 11시 30분 그가 입원한 충정로 S병원에서 이루어졌다.
수술 후 안대를 붙인 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신 문교수께 감사 드린다.-
기자: 문교수님, 올해를 넘기는 액땜인가요?
문교수: 액땜 같긴한데 신학 교수가 액땜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되지요 ㅎㅎ
기자: 네 그럼 액땜 대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손모씨의 진술에 의하면, 교수님의 설교에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폭행을 했다는데, 무슨 말을 하셨기에 그리 화가 났나요?
문: 설교가 거의 끝날 때쯤이라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바알세불’ 이라고 외치면서 단상으로 뛰어 올라와, 의자를 휘두르고 넘어진 나를 올라타서 목을 졸랐지요.
기자: ‘바알세불’이 무슨 뜻인가요?
문: ‘바알’은 농업 공동체였던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하던 남성신이었지요.
BC 12세기경의 바알신 조각
구약에서는 바알 신앙과 야훼 신앙이 경쟁 관계였다는 내용, 즉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의 추종자들의 싸움 이야기가 나와요.
예수님도 바알세불을 마귀의 왕이란 뜻으로 복음서에서 언급하신 일도 있지요
기자: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세불’은 뭔가요?
문: 세불은 히브리어로 ‘파리’라는 뜻인데 중세 이후 마법 책에 등장하는 바알세불은 거대한 파리의 모습으로 나와요.
옛날 사람들은 파리가 사람들에게 악령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지요.
그들은 파리가 꾀었던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러한 파리들을 부하로 거느리는 이가 바로 바알세불이었지요.
이후 18세기에는 바알세불이 '폭식을 유도하는 악마'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기자: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나 종교 얘기를 잘 안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쉽게 흥분을 하기 때문인데,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군요.
문: 종교적으로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이나 교리와 조금만 달라도 슬슬 화가 난다는 통계가 있어요.
기자: 저도 작년 탄핵 사건 전후해서 소주 마시다 싸우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정치도 그런데 종교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겠지요.
문: 종교의 어려운 점은, 서로 다른 종교끼리는 오히려 대화가 되는데, 같은 종교 안에서 의견이 갈리면 더 광폭한 싸움이 납니다.
간디를 암살한 사람은 인도의 힌두교인.
부토를 암살한 사람은 파키스탄의 이슬람인.
베긴을 암살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인이었지요.
즉 같은 종교 안에서, 그들의 리더가 조금이라도 다른 정책이나 교리를 취하는 것은 배교가 되는 것이고,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참 뜻을 모르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이지요.
기자: 예수님을 유대인이 죽인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문: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처형한 주체는 로마 군입니다.
물론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로마 법에 의해 정치범으로 처형된 것이지요.
예루살렘이 무너진 AD70년 이후 쓰여진 복음서들은, 당시 로마의 눈치를 보느라, 유대인들의 잘못이 다소 과장되어 있어요.
이러한 유대인들의 과잉 포장된 잘못이 역사상 많은 비극을 초래했어요.
독일의 기독교가 나치에 협조하여 유대인 6백만 처형에 침묵한 것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유대인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는데,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였다는 생각과 연관이 있습니다.
기자: 혹시 문교수님을 폭행한 사람도 누구의 사주를 받은 기독교인이 아닌가요?
문: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젊은이는 우발적으로 행동한 것이 틀림없어요.
기자: 내년에는, 이제 몇 분 안 남았습니다만, 학교를 떠나시는데 다른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문: 며칠 후에 영국 케임브리지에 가서 로빈슨 교수를 만날 예정입니다.
터어키의 이케아 호수 밑에 천오백 년간 잠들어 있던 고대 성당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발굴된 유적 중 돌판에 새긴 글씨가 있는데 '사도신경' 같습니다.
이 돌판의 해석 작업을 로빈슨 교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일정 입니다.
기자: 사도신경이 12사도가 쓴 것이라면 다른 사도신경이 나올 수 있나요?
문: 사도신경은 12사도가 2구절씩 썼다는 말도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로마신경이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4C경에 지금의 모양을 갖춘 것입니다.
기자: 하지만 사도신경은 십계명과 함께 기독교의 중심 교리인데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있나요?
문: 저도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릅니다.
다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12제자가 아닌 갈릴리 여인들이었고, 부활하실 때도 처음 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지요.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아라비아 사막으로 넘어가서, 이집트로 진출했다는 흔적이 있는데 이와 연관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자: 그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더 궁금해지네요.
어느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길을 가던 두 사람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는 구절도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지만 우리가 알아 볼 수 없는 건 아닐까요?
문: 그럴 지도 모르지요...
기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교수님께 폭력을 행사한 손모씨를 용서 해 주실건가요?
문: 이렇게 공개적으로 질문하는데 용서 안 할 수 있겠어요? 목사라는 사람이 ㅎㅎ.
기자: 네, 이제 곧 새해가 되는데 문교수님께서 우리 독자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 제가 좋아하는 어느 신학자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묵상 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자: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문교수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병실의 벽에 붙은 TV에서는 ‘올드랭자인’이 합창으로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