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대학 캠퍼스 안의 작은 교회는 백 년 전 미국 선교사가 이사장으로 있을 때 붉은 벽돌로 지은 것으로 겨울에는 난방시설이 충분치 않아 실내 공기가 차가웠다.
나무로 된 장의자 하나에 8명이 앉는데 오늘은 9명씩 앉아 있는 의자도 많았다.
높은 벽면을 따라 천정까지 올라간 십자가 모양의 스테인드 글래스가 벽돌 색깔과 잘 어울리며 작은 교회를 장엄하게 연출했다.
강대상에는 오늘 여기서 마지막으로 설교를 하는 문교수와 학교 관계자 몇 사람이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예배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11시가 가까이 되자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앞 좌석이 다 차서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윽고 통통한 얼굴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 강대상의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예배의 사회를 맡은 신학대 학장 이동구입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예배당의 좌우를 천천히 둘러본 후 계속 입을 열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귀빈 몇 분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연합 교단의 총회장님이신 김훈두 목사님이십니다.”
이학장이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검정 양복을 입은 김총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김총회장님은 우리 Y 신학대학원을 정확히 40년 전에 졸업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하신 사명을 오늘 이 순간까지 희생적으로 감당하시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 교단의 최고 어른이십니다.
오늘 특별히 문익진교수님의 년 말 설교를 위한 이 자리에 총회장님이 오신 이유는, 지난 3년간 설교를 해주신 문목사님이 안식년을 맞으셔서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으로, 오늘이 마지막 설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잠잠해졌다.
“또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교단의 상임 고문님이시고 믿음의 사표이신 신종일 장로님이십니다.”
박수 소리가 다시 들렸고 신장로가 일어나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러면 12/31일 마지막 주일예배를 모두 다같이 묵도 하심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은은한 오르간 소리가 잠시 들린 후 찬송가 전주가 힘차게 나왔다.
“예배 찬송은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량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이 끝나자 이동구 학장이 고개를 숙여 기도를 시작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올 해 저희가 지은 모든 죄를 통회하고 자복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 함이 주 안에서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데 저희는 그저 원망하며 불만 불평에 가득 찬 사탄의 마음을 따랐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살짝 울먹이는 이 학장의 목소리가 계속 되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말세입니다.”
방주가 들으니 이학장이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었다.
“또한 말세에는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이 있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헛기침을 한 번하고 그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또한 말세에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방주가 앉은 장의자 반대 편에 누가 한 사람 더 앉는 소리가 들렸다.
“주여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모두 이해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서의 내용은 그 자체로 비전이며, 환상을 수반하는 신적 계시이기 때문이고, 나타남과 감추어짐이 모순적으로 융합하는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
단상 위에서 누가 ‘아멘’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방주는 ‘나타남과 감추어짐이 모순적으로 융합한다’는 말이 어려웠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로 하여금 사탄과 그의 모든 권세를 극복하게 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죽은 행실로부터 나의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잠시 후 큰 아멘 소리와 함께 기도가 끝났고 문목사가 강대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예배당 안은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의자 사이 통로에도 사람들이 서 있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으나 간혹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도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했다.
“먼저 이 자리에 와주신 김훈두 총회장님, 신종일 장로님, 이동구 학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오늘 올해의 마지막 날이고, 마지막 주일이고 제가 여기서 여러분을 만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이란 말이 3번들어가고 내일부터는 새해가 되니까 모든 것이 바뀌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는 것이겠지요.
약 백 년 전 전라도 실상사에 '학명선사'라는 분이 쓴 시가 있습니다.
망도 시종 분양두 동경 춘도 사년류
시간 장천 하이상 부생 자작 몽중유
妄道 始終 分兩頭 冬更 春到 似年流
試看 長天 何以相 浮生 自作 夢中遊
-새해니 묶은 해니 구별하지 마시게.
겨울 지나고 봄이 오니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저 하늘은 여전히 똑 같지 않은가.
나그네가 스스로 꿈속에서 헤매네.-
문교수가 느닷없이 어느 스님 이야기를 하자 장내가 약간 웅성거렸고, 단상 위의 3사람은 일제히 상체를 오른 쪽으로 돌려 문교수를 쳐다보았다.
방주가 멀리서 봐도 총회장의 안색이 굳어진 것이 느껴졌다.
문교수가 계속 이어 나갔다.
“가톨릭의 ‘토마스 머튼’ 신부도 노장 사상에 정통했으며,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대부분의 가르침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