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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4 화 ★ 불상 훼손

wy 0 2018.12.03

 

 

4) 불상훼손 ▶ 

 

Y신학대학 문익진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직 50대 중반이지만 눈처럼 희고 긴 머리카락이 검은 뿔테 안경과 산뜻한 조화를 이루었고 반듯한 이마와 안경 넘어 예리한 눈길에는 저명한 신학자로서의 깊이가 엿보였다.

문교수는 미국 뉴욕 신학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 케임브리지의 세계적 신학자 폴 로빈슨 교수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가 되었다.

  

문익진의 박사 학위 논문이 ‘사도 신경’에 대한 연구인데 로빈슨 박사가 그 논문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하였다.  

 

이후 10여 년간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를 가르치며 정교수까지 오른 후 귀국하여 Y신학대학의 교단에 선 지 올해로 3년째였다.

 

사건의 발단은 얼마 전 서울의 '큰구원 교회' 장로님이 몰래 경기도 '비운사'의 법당에 들어가 불상의 목을 자르고 우상 숭배를 반대한다는 시위를 함으로써 시작 되었다.

 

이에 대해 Y신학 대학의 시간 강사 한 사람이 비운사에 가서 주지 스님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훼 손 된 불상을 복원시키기 위한 모금 운동을 트위터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교수 회의에서 문제의 시간 강사를 징계해야 된다는 주장에 문교수만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 강사의 이름은 신방주였고 그가 새빛 교회 유년부를 다닐 때 문교수가 주일 학교 전도사로서 잠시 만난 인연이 있었다.

 

문교수가 방주의 징계를 반대한 것은 개인적 친분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20여 년만에 귀국하여 돌아본 한국 교회와 신학 대학의 모습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대형 교회가 더 많아지면서 세계 최다 신도수 50교회 중  반 이상이 한국에 있으나 대부분 문자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운사의 불상을 훼손한 장로는 교회에서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고 '살면 전도 죽으면 천당'을 외치며 그의 믿음에 긍지를 느끼는 것이다. 


문교수는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한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한 교수나 목사라는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서 예수님의 참 뜻보다는 로마 시대의 교리를 문자 그대로 전달하고 있으니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중세 시대처럼 다른 종교를 원수로 여기는 것이다.

 

 연구실 창문으로 빗줄기가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했고 문교수는 책상 위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방주가 벌이고 있는 모금 운동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고 총 2천 만원의 모금 목표 중 반 정도가 이미 차 있었다.

 

문교수도 20만원을 이달 말까지 내겠다고 약정한 후 인터넷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대부분이 불상을 훼손한 장로와 기독교 자체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만 하나님께 드려도 충분하다. 비운사는 경기도다.'

 

 '다음에는 성당의 성모 마리아 목을 냉큼 자르는 장로님을 기대하며 건투를 빕니다'

 

‘천당이 이런 장로들이 가는 곳이라면 천당일리가 없다'

 

문교수는 댓글 몇 개를 더 읽어보고 인터넷을 빠져나왔다.

 

창문에는 빗줄기가 가늘어졌으나 먹구름이 낀 하늘은 금방 또 폭우를 쏟아 낼 것 같았다.

 

문교수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기독교 재단에서 세운 학교였는데 1주일에 한 번씩 성경시간에 배우는 예수님의 생애나,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그때는 문교수도 지금의 주일학교 학생들처럼 하나님은 높은 하늘 나라 어느 곳에 계시면서 우리의 모든 마음과 행동을 아시는 할아버지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점차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같은 교리는 감히 의문을 품을 수 없었지만, 성경에는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데 예수님을 전혀 몰랐던  옛날 사람들과 아프리카에서 평생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조금 억울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교목 선생님은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다.

 

"바로 그러니까 우리가 땅끝까지 전도하여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 믿고 구원 받도록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도 예수를 몰라서 천당에 못 갔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았으니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라" 는 것이다. 


일단 안심이 되어 그냥 넘어가면서도 흔쾌하지 못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린 마음에도 하나님이 어딘지 하나님답지 않았고,  신학자들이 말하는 '값싼 은혜’ 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교수의 컴퓨터 화면에 열어보지 않은 이메일이 6개 있다는 표시가 떴다. 


대부분이 스팸 메일이고 마지막 메일은 이학장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문교수님, 저 이동구입니다.

 

오늘 아침 교수회의에서 말씀하신 선배님의 깊으신 뜻을 저는 충분히 이해 합니다.

 

지금 연구실에 계신 듯한데 시간이 되시면 잠깐 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문교수는 카톡을 사용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과 대부분 e mail을 통해 연락을 했다.

 

학장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문교수 연구실의 '재실' 이라는 표시를 보고 바로 들어오지 않고 이메일로 먼저 방문을 알린것이다.

 

이동구학장은 문교수의 대학 3년 후배인데 성격이 원만하고 누구에게나 극도로 친절하여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촛불시위로 새로 들어선 정부의 고위층과도 잘 통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잠시 후 크지도 작지도 않게 3번의 노크소리가 들렸고 이학장이 들어왔다.

 

"선배님이 통 불러주시지 않아서 오늘은 제가 쳐들어왔습니다. ㅎㅎ"

 

그의 손에 작은 인사 파일이 들려있었고 그것이 신방주의 것이라 직감했다.

 

50대 초반인데 머리가 많이 빠져서 옆머리 몇 가닥을 길게 위로 넘겨 덮은 그의 통통한 얼굴은 늘 그렇듯이 싱글싱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혹시 신방주강사를 선배님이 개인적으로 잘 아시나요?"

 

부드럽고 친근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질문은 직선적이었다.

 

‘오래 전 새빛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때 그를 만난 적이 있지만 이번 사태는 순수한 신학자의 양심으로 처신한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이학장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방주와 문교수의 관계가 그다지 깊지 않은 것에 안심하는 눈치였다.

 

"저는 선배님이 반대하시는 한, 신강사를 당장 해촉하거나 징계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 전 신장로라는 분이 전화를 주셨는데 신강사의 부친이라고 하시더군요."

 

문교수의 기억 한구석에 방주의 아버지 신집사, 지금은 신장로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학장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신장로는 아들이 교회에서 부목사의 직분에 더욱 충실키 위해 학교 일은 그만 두기를 바란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학장은 신강사 본인의 사퇴서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며칠 내에 우편으로 제출될 것이라는 대답을 신장로에게 들었다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렸다.

 

학장은 방주의 사퇴서가 오면 수리할 수 밖에 없다는 통보를 하러 문교수의 방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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