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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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61 화 ★ 종교신학

wy 0 2019.06.28

 

작년 겨울부터 방학 때는 학교에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다.

 

Y신학 대학의 재정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연구실의 작은 전기 난로가 시뻘건 열선으로 열심히 공기를 덥히고 있지만 영하 15도의 날씨에는 역부족이었다.

 

문교수는 두터운 외투를 입은 채로 소파에 앉아 따끈한 생강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3-4일 후에는 떠나야 할 연구실이라고 생각하며 방안을 둘러보니 가지고 갈 물건들도 별로 없었다.

 

공동번역 성경책과 신학서적 30여권, 집에서 가져온 커피포트 정도였다.

 

오늘 아침에도 이동구 학장이 전화를 걸어 지금이라도 21C 광장은 당분간 접고, 명예교수로 계시면 연봉의 반을 드리겠다고 했다.

 

문교수가 거절하자 그럼 그냥 한 학기 만이라도 더 계셔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형식적인 절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학장은 전화를 끊기 전에 만약 21C광장을 계속 하시면 학교차원이 아니라, 교단차원의 징계도 감수하셔야 할 것이라는 언급도 슬며시 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교단에서의 파문은 중세시대라면 사형이나 종신형까지 각오해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징계였다.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도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각자들이 여러 명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루터 시대에 인쇄술이 발명되어 그의 주장이 독일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이 성공의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은 파문을 당해도 목숨이 위태롭지도 않고, 인쇄술보다 훨씬 빠른 인터넷 시대인데 오히려 진리를 향한 시대정신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문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문에 루터처럼 개혁조항 95개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이번 일요일 마지막 설교시간에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천명하고 21C 기독교광장에 올리면 되는 것이다.

 

연구실 문에서 노크소리가 났고 이 방으로 찾아오는 마지막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님, 심려를 많이 끼쳐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두터운 회색코트를 입고 들어온 방주의 모습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약간 여윈 얼굴에 담담한 표정이 산속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선승 같았다.

 

“고생 많았네. 건강은 괜찮은가?”

 

“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를 걱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별 이상은 없습니다.”

 

“ㅎㅎ, 다행이구만.

 

밖에 날씨가 많이 차니까 내가 집에서 가져 온 따끈한 생강차 한 잔 하게.”

 

작은 보온병의 뚜껑을 열고 허연 김에 강한 생강 냄새가 올라오는 뜨거운 차를 방주의 찻잔에 따라주는 문교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방주가 생강차를 마시려다 너무 뜨거워서 입술을 살짝 오무려 바람을 내 뿜은 후 잔을 도로 내려 놓았다.

 

“학교 일이 잘 풀리지가 않아서 미안하네.”

 

방주가 다음 학기 전임강사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언급이었다.

 

“아닙니다. 당연하지요.

 

그보다 교수님께서 갑자기 사임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응, 그렇게 되었네.


21C 기독교광장과 교수직 중 택일 한 결과인데 처음 광장을 열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지.”

 

“네, 그러셨군요. 저도 나오자마자 들어가 봤습니다.”

 

“잘 했네. 자네가 읽어보니 어떻던가?”

 

문교수가 안경 넘어 맑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만드신 지 얼마 안되었는데 사람들의 방문이 많고 댓 글의 수준도 높더군요.

 

비판의 글도 많지만 교수님을 지지하는 글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토론의 장이 열린 것 같습니다.”

 

방주의 대답에 문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동안 자네가 없어서 나 혼자 하느라고 힘들었는데 이제 든든하구만.

 

신장로님이 한 번 다녀가셨네. 건강은 좋으시지?”

 

“그러셨군요. 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셨는지 별로 안 좋으세요.”

 

“얼마 전 뵈었을 때만 해도 굉장히 정정하셨는데 어디가 편찮으신가?”

 

“혈압이 좀 높으신데 별로 말씀도 없으시고 좀 우울하신 것 같아요.”

 

방주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고 문교수가 화제를 바꾸었다.

 

“자네가 없는 사이에 비운사 불상 복구를 위한 목표금액이 달성되었더군.

 

대단한 성과야.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종교간의 화해를 위한 차원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네. 저도 예상보다 많은 호응에 감격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는 앞으로 복직이 될 때까지 ‘종교신학’을 공부 해 보려 합니다.”

 

“좋은 생각이네. 우리나라 신학자 중에 비교종교학이나 종교신학을 전공한 분이 많지 않아요.

 

비교종교학의 창시자인 막스뮬러가 벌써 백 년 전에 ‘다른 종교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종교도 모른다’ 라는 말을 했는데 요즘 더욱 새겨 들을 말이지.”

 

“네. 이번 특사로 S구치소에서 11명이 나갔는데 그 중 6명이 불교이고 5명이 기독교라며, 우상숭배하는 무리에게 5대6으로 졌다고 분해하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ㅎㅎ 그런 분들이 목소리가 더 크지.

 

종교신학은 종교들 간의 대화와 협력에 귀 기울이면서 공존과 상생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정립하는 학문일세.”


“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복 받고 돈 많이 벌기 위해 교회 나가지요.

 

부적을 쓰는 사람을 미신이라고 욕하면서도 바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부적으로 쓰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 바울 신학을 전공한 L.A의 김모교수는 현재 한국 개신교의 구원론은 구원파의 교리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하더군.

 

구원파가 들으면 자기네들의 수준이 더 높다고 하겠지만...”

 

방주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저도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좀 됩니다.

 

신도들이 저에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것을 믿느냐고 간혹 물어보는데 제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그 다음에는 제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 꼬치꼬치 따지거든요.

 

그들의 소박한 눈동자를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참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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