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수가 '21C 기독교광장' 을 나와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로빈슨 교수는 아직 아무 연락이 없었다.
목이 좀 뻐근해서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나 허리를 시원하게 젖히는데 책상 위의 인터폰이 울리고 이동구 학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안 바쁘시면 제 방으로 지금 좀 오실 수 있을까요?”
그가 자기 방으로 오라는 것은 사무적으로 할 말이 있다는 것인데 평소 부드러운 목소리가 약간 경직되게 들렸다.
곧 학장 방으로 들어가 그와 마주 앉으니 늘 싱글거리던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이 학장이 습관대로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린 후 입을 열었다.
“문선배님, 오늘 좀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어제 오후 우리 교단 총회장이신 김훈두목사님께서 제게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가 총회장님을 10년 넘게 모셨는데 그 분이 그렇게 진노하신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문교수의 눈초리를 살짝 피한 이동구가 한 숨을 내쉰 후 계속 말했다.
“총회장님께서 '21C 기독교 광장' 을 보셨습니다.
문선배님이 그 사이트를 만드신 것과 우리학교 교수인 것을 알고 계시더군요.”
이학장이 말을 다시 멈추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래서요?”
문익진이 학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 분 말씀이 우리 학교 교수가 그런 사이트를 만든 것은 교단의 교리에 어긋날 뿐더러, 교수는 학교 수업에 전념해야 한다며…그 사이트를 폐쇄하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고 이 학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실은 문선배님이 만드신 21C 기독교 광장을 가끔 들어가서 짧은 글도 남겼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문교수님 팬입니다.
그러나 학장의 입장으로서는 총회장님의 말씀을 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가 교단 보조금을 많이 타내려면 그 분과 척을 질 수는 없으니까요.
널리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교수가 검은 안경테를 살짝 올리면서 물었다.
“21C 광장의 어느 부분이 총회장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음.. 며칠 전 선배님이 올리신 ‘내가 믿는 하나님’ 이란 글 있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문교수에게 그의 다음 말이 놀라왔다.
“그 아래 댓글을 단 ‘여의도 이레’ 라는 사람이 아무래도 총회장님 같아요.
그 분이 여의도 사시고 ‘여호와 이레’ 좋아하시고 전도서 전공이잖아요.
누군가 처음부터 총회장님께 21C광장을 알려주고 문교수님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한 사람이 있는 듯합니다.”
문교수가 목을 한 번 가다듬은 후 물었다.
“만약 21C광장을 폐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
이동구가 진한 눈썹을 모으며 사정조로 말했다.
“선배님이 좀 도와 주셔야지요.
작년부터 신학생들 모집도 여의치 않은데 교단하고 관계가 나빠지면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리지요.
마침 학기가 거의 끝났으니까 올 해 말로 사표를 내겠습니다.
제가 학교 소속이 아니면 21C광장을 가지고 더 이상 시비를 걸 수 없겠지요.”
이동구가 화들짝 상체를 곧추 세우며 두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러시면 제가 선배님께 죄송해서 안되지요.”
“아니에요. 저는 학장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은 지난 번 교회에서 설교를 안 하고 내려 왔을 때부터 곧 학교를 그만 두려고 했습니다.
이제 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말을 해버리니 시원했다.
이동구 학장은 절대로 총회장의 심기를 건드릴 사람이 아니고, 지금 만류하는 것도 예의상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문선배님, 생각을 좀 돌리실 수는 없을까요?
1년만 21C 광장을 닫으시고 상황이 좀 바뀌면 다시 여시지요.”
이학장이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이어나갔다.
“제가 알기로는 내후년 지방선거에서 우리 총회장님이 도지사 선거에 나가시는데 그 때는 다른 분이 총회장이 되십니다.
올 해는 다 갔고 이제 1년 밖에 안 남았습니다.”
문익진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학장의 음성이 애원조로 변했다.
“저도 압니다. 사실 신학자 중에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과 구운 생선을 드신 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성경 말씀을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하면 기독교의 근간이 흔들리고,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둑이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이대로 간다면 21C 광장이 자칫 위험한 수위까지 갈 것 같습니다."
이동구의 속 마음이 드러나면서 하소연하듯 두 눈썹을 올리며 계속 말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손상 된 결과, 유럽의 수 많은 교회가 텅텅 비고 디스코장이 되었지요.
우리도 다 알면서 말 안 하는 것은 그런 위기감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국이 아직은 미국 남부, 바이블 벨트 지역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복음신학이 유지되는 곳 아닙니까.
목사도 판사도 다 하루하루 가족을 부양 해야 하는 생활인입니다.”
이동구의 목젖이 꿀꺽 위아래로 움직였다.
“판사가 정권 눈치 보듯이, 목사도 수입이 있어야 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유럽처럼 되면 생활 기반이 무너집니다.
지금 한국에 목사님이 20만 명이 넘고 교회가 6만 개라고 합니다.
교회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데 신학 대학원에서 목사는 계속 더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직장을 찾지 못해서 막노동을 하거나 백수로 지내는 목사님이 많은데, 이런 추세로 교회가 줄어들면 당장 우리 신학생도 취직 하기가 어렵습니다.”
문교수가 그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무너질 교리, 없어질 신은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지요.”
이동구가 어이 없다는 듯 살짝 코웃음을 쳤다.
“선배님, 참 순진하십니다.
그런 새 술을 담은 기독교는 사람들을 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다 사실이 아니라 해도, 사람들은 죽은 후의 삶, 천당에 가는 희망으로 교회에 나오는 겁니다.
인생의 절망에 시달리는 이들을 우리가 위로하고 도와 줘야 합니다.
목사는 그들에게 내세의 빛, 천당의 영광을 보여줘야 합니다.
주와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다스리는 희망으로 이 땅에서의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문교수가 아무 말이 없자 이동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선배님, 신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니케아 교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동정녀가 낳은 신이어야 하고 그 분은 재림해야 합니다.
우리가 2천년 동안 배운 이런 교리로 충분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왜 지금 이런 사이트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시험 들게 합니까? “
문교수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전에,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정직한 교회가 천당의 영광보다 먼저입니다.
저는 기독교가 진정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일종의 기독교 분파 사건으로서 여전히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요.
5백년 전 기독교 개혁은 이제 찻잔의 폭풍으로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