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기도 서준을 알아보고 즉각 뒤로 돌아 방을 나가버렸다.
“어머, 아는 사람이에요?”
소파에 나란히 앉은 홍변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무슨 말을 더 물으려는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윤마담이 안으로 들어왔다.
간혹 호스트들이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하여 실례를 할 때가 있다며 다른 선수를 부를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마담의 엉덩이가 소파에서 떨어지기 전에 서준이 입을 열었다.
“손준기를 좀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어머, 본명도 아시네. 그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네, 꼭 할 말이 있는데...”
윤 마담이 나가자 홍변이 말했다.
“저 때문에 기사거리가 생겼나 보네요.. 그럼 오늘은 제가 먼저 들어갈까요?”
선뜻 대답을 못하는 서준에게 그녀의 말이 계속 되었다.
“호스트바도 와 봤고 최고라는 호스트 얼굴도 봤으니 궁금증이 많이 풀렸어요.”
“기사관계는 아니고 제가 무슨 일로 찾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미안해서...”
“설마 최기자님이 커밍 아웃 선언 하는 건 아니지요? ㅎㅎ 농담이에요.
좀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 데이트는 노래방에서 제 솜씨를 발휘 할게요. ”
그녀가 선뜻 일어나서 손을 내밀어 서준과 악수를 하고 방을 나갔고 곧 이어 손준기가 들어왔다.
맞은 편 소파에 얌전히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다.
서준이 가볍게 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손준기씨, 내가 며칠 전에 전화 했었는데 연락이 안되더군.”
짧은 적막이 흐르고 그가 고개를 들어 서준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목에서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최기자님 나와 얘기하고 싶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약속은 해 주이소.
아니면 그냥 일어나 나갈겁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말이 계속 되었다.
“선희에게 나를 여기서 봤다는 이야기는 안 하는 기라요.
약속 할수 있지예? “
“알았소. 그런데 검찰이 곧 선희를 소환 할거요.
신목사 아버지, 신장로님도 같이 불러서 대질 심문을 할텐데 당신이 합의금을 달라고 했다는 말도 하실거요.
잘못하다가는 선희와 당신, 두 사람 다 곧 구속 돼요.”
“그게 다 최기자님 덕분 아닙니까.
선희를 묘하게 설득해서 처벌 불원서를 쓰게 했으니까예.”
손준기의 눈에 분노의 빛이 스쳤다.
“내 입장에서는 신목사가 친구니까 우선 풀려나게 해 줄려고 한거요.
그렇다고 선희나 당신이 구속 되는 것도 나는 원치 않아요.”
그의 고개가 다시 숙여졌다.
서준이 긴 한숨을 내쉬는데 방문이 열리며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고등학생 같은 소년이 쟁반에 소주 한 병과 마른 안주를 들고 들어왔다.
“이건 윤마담님이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요.”
마호타이를 잔뜩 부어 넣었던 위장이 쓰리지만 서준이 소주병을 잡고 뚜껑을 돌렸다.
드드득~ 양철 부서지는 소리가 가볍게 났다.
술을 한 잔씩 털어 넣은 후 손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예?”
말쑥한 곤색 양복과 자주색 넥타이가 그의 귀공자 같은 얼굴에 잘 어울렸고 여자들이 첫 눈에 호감을 느낄 만 했다.
서준이 땅콩 껍질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비벼 까서 입안에 넣으며 말했다.
“선희와 손준기씨는 어떤 사이요?”
“그게 이 사건하고 뭔 상관입니꺼?”
“당신이 전 국회의원 김영중씨와 친자 소송을 한 것도 알고 있어요.”
서준은 자신도 왜 선희와 손준기의 관계를 묻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전에는 배 다른 오빠였는데 이제는 사랑하는 사이지요.”
그의 입에서 서준이 염려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표정 관리를 하면서 소주 잔을 입에 가볍게 댄 후 다시 물었다.
“그 말은 선희가 김영중의원의 딸이라는 뜻이요? “
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더 뜸을 들인 후 서준이 다음 질문을 했다.
“이제 친 남매가 아니니까 손준기씨가 선희를 사랑 한다는 거요? “
그의 고개가 조금 더 크게 위 아래로 움직였고 두 사람의 눈동자가 잠시 마주쳤다.
“제가 김영중 의원과 친부 소송을 할 때 나중에 일부러 제 머리카락을 안 내고 다른 사람 것을 냈습니다. .
DNA가 같아서 선희와 배다른 형제가 되면 안되니까예.”
"그 문제는 난 모르겠고 지금 선희가 구속이 되면 안되지 않소.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고 봐야지."
신장로님께 용서를 빌고 고소를 취하 하시도록 해봐요.”
“용서는 잘못한 사람이 비는 거 아닙니꺼.”
준기의 높아진 억양에 서준도 맞섰다.
“이렇게 버티다가 선희가 구속 되면 후회할거요.”
손준기의 손이 소주 잔으로 쭉 뻗었고 반쯤 남은 소주를 입 안으로 부었다.
“그 노인네가 사과한다고 고소를 취하하겠습니꺼?”
“사실은 내가 얼마 전 말씀을 드렸는데 꿈쩍을 안 하시더라고.
그래도 당사자가 무릎을 끓고 빌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교회 장로님이신데.”
“지는 목사나 장로, 그런 사람들 안 믿습니더.
신방주목사의 아버지면 더 하겠지예.”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영중 의원이 섬망 증세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오?”
“지도 소문으로만 들었어예.
치매인지 섬망인지 이제 관심도 없지만…”
“선희가 그 분의 딸이라면 그런 증상도 유전 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듯 손중기가 눈만 깜박거렸다.
“전혀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믿는 것이 섬망 증상이니까..
여하튼 이번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당신이 선희를 위해 신장로님을 만나요.
내일이라도 내가 연락을 할 테니까 내 전화 기다리고 있어요.”
서준을 바라보던 손준기의 고개가 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