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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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326화 ★ 황제와 만찬

wy 0 2024.09.25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루브리아를 보는 황제의 눈에 경탄의 빛이 스쳤다.

 

헤로디아는 화려하고 가슴이 깊이 파인 빨간색 드레스와 엄지손톱만 한 루비 귀걸이를 하고 나왔다.

 

직사각형 식탁 위에는 독수리 모양의 황금 촛대가 12가지로 뻗쳐 자주색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왕비가 다급히 루브리아에게 귓속말을 했다.

 

자주색 옷을 입으면 어떻게 해! 그 색은 황제 가족만 입는 옷이야.”

 

루브리아가 막 대답하려는데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보낸 옷이 참 잘 어울리네.

 

선물로 줄 테니 자주 입도록 해요.”

 

, 폐하 영광입니다.”

 

, 루브리아 양이 내 왼쪽에 앉고 헤로디아 왕비가 오른쪽으로 앉아요.”

 

황제가 식탁 중앙에 앉으며 두 사람의 좌석을 지정해 주었다.

 

곧이어 두 사람이 더 식탁에 와 앉았는데 한 사람은 노미우스 경호실장이고 또 한 사람은 약간 마른 얼굴에 이마가 넓고 단아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 노미우스 실장은 이미 인사했을 테고.”

 

황제가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계속 말했다.

 

이 젊은 선생은 로마의 자랑인 철학자 세네카인데 마침 나를 만나러 이 섬에 와서 오늘 같이 참석하게 되었소.”

 

세네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은덕에 감사드리며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가 루브리아와 헤로디아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루브리아는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을 다시 한번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로마 제일의 철학자 세네카라는 사실에 가슴이 살며시 뛰고 있었다.

 

세네카도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미소 지었다.

 

흰옷을 입은 소녀가 황제 앞에 놓여 있는 자수정 포도주잔에 흰 포도주를 따랐다.

 

동시에 연회실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키타라 연주자가 조용히 연주를 시작했다.

키타라, 올림푸스 신들의 회동 BC500 년경 b_0202_02_i2.jpg

키타라 연주, BC 500년 경

 

하프 소리 비슷한 음색이나 어딘지 더 슬픈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수정 포도주잔에도 포도주가 모두 따라지자 황제가 세네카를 보며 말했다.

 

세네카 선생, 오늘 이 만찬을 위해 건배해주시오.”

 

갑작스러운 황제의 지시에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세네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대하신 아우구스투스 선대 황제 폐하의 유지를 계승하시어, 로마제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으신 티베리우스 폐하의 시대에 살고 있는 로마시민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제국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선정을 베푸시는 황제 폐하의 은덕입니다.

 

폐하께서는 신과 동등한 존재이심에도 절제와 관용을 베푸시는 철학자 황제이십니다.

 

폐하의 통치가 30년을 넘어 40, 50년까지 이어지실 수 있도록 감히 건배를 제의합니다.”

 

세네카가 잔을 들며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노인 황제가 앞에 놓인 자수정 잔을 천천히 들었고 루브리아와 헤로디아도 건배했다.

 

루브리아와 잠시 눈을 마주친 황제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고맙소. 세네카 선생, 오늘 내가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오.

 

앞으로 당신이 원로원에서 재무관으로 선출될 것이니 더욱 지혜와 경험을 넓혀 로마 황실의 좋은 선생이 되어주시오.”

 

, 폐하. 감사합니다. 소신이 있는 힘을 다하여 보필하겠습니다.”

 

세네카가 자리에 앉자 음악 소리가 커지면서 하인들이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향신료를 듬뿍 넣은 생선요리, 기름진 꿩과 소고기 요리, 상추 위에 데친 버섯을 올린 채소요리 등과 함께 붉은 포도주가 곁들여 나왔다.

 

루브리아가 맛을 보니 나폴리산 포도주 같았다.

 

황제가 꿩고기를 가리키며 헤로디아 왕비에게 말했다.

 

이 꿩은 이 섬에서 가두어 기른 거라 연하고 맛있어요. 먹어봐요.”

 

, 폐하. 감사합니다. 이 붉은 포도주는 시칠리아산인가요?”

 

그건 나폴리 동부의 고원지대에서만 나는 포도로 만들었지요.

 

흰 포도주가 시칠리아산일 거요.”

 

루브리아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 역시 그렇군요. 저도 맛을 보고 그런가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주예요.”

 

황제가 그 말을 듣고 아무 대답을 안 했다.

 

루브리아는 그 순간 무슨 실수를 했나 하고 왕비를 쳐다보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빕사니아도 이 포도주를 제일 좋아했는데.”

 

약간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노인이 화제를 바꾸었다.

 

얼마 전에 빌립왕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

 

그의 시선이 노미우스를 향했다.

 

. 폐하, 그렇습니다.”

 

경호실장이 앉은 채로 자세를 세우고 대답했다.

 

지금 그 땅은 누가 다스리고 있나?”

 

, 폐하. 지금은 일단 로마에서 직접 통치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왼쪽으로 헤롯 안티파스왕이 다스리는 땅과 붙어 있습니다.”

 

이미 헤로디아가 무언가 그에게 손을 쓴 듯한 발언이었다.

 

, 그렇구먼. 빌라도가 잘하고 있나?”

 

. 폐하. 하지만 카이사레아에서 멀리 떨어진 땅이라 관리가 좀 어렵습니다.”

 

경호실장의 말을 이어서 헤로디아가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폐하, 그 문제로 제가 내일 폐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만.”

 

, 그래요. 왕비가 그 동네를 잘 알겠구먼

 

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하지.”

 

, 폐하. 감사합니다.”

 

헤로디아의 얼굴이 활짝 폈다.

 

, 루브리아 양은 유대 지역에 얼마나 있었나요?”

 

황제의 독수리 같은 눈빛이 루브리아를 바라볼 때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2년 정도 있었습니다. 폐하

 

, 그 정도면 루브리아 양도 현지 사정을 잘 알겠구먼.”

 

노인이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유대 땅은 선대 황제께서도 특수지역으로 관리하신 곳이지.

 

유대민족이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특수한 민족이라 우리와 잘 융화가 안 되고 자기네들끼리도 파벌이 많다고 들었어요.

 

루브리아 양은 어떻게 생각하나?”

 

루브리아는 황제의 질문을 정확히 몰라서 대답을 조금 망설였다,

 

그러니까 그 땅을 우리 로마가 직접 관리하는 것과 헤롯왕 같은 분봉왕을 두고 통치하는 방법 중에 어느 편이 더 나을까?”

 

노인의 질문에 갑자기 식탁이 조용해졌다. 기타라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제가 대답할 능력이 없습니다. 폐하

 

왕비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래도 로마시민으로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이 있을 테니 말해보시오.”

 

루브리아가 황제를 보며 말했다.

 

제가 느끼기에 유대민족은 대단히 우수한 민족입니다.

 

종교적 자유만 허용해 주시면 그들 스스로 잘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헤로디아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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