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도시인 송도 신도시는 깨끗하고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인천대교를 건너 순환도로 입구의 H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두 사람은 1층 로비로 들어갔다.
지은 지 얼마 안된 호텔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고 로비 오른 쪽에 있는 커피숍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였으나 한적한 편이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킨 후, 두 손을 깍지 끼고 앞으로 모은 기도하는 자세로 이학장이 말했다.
“선배님, 이번에 꼭 저 좀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
맞은 편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문교수에게 상체를 바싹 기울인 채 목소리를 낮추어 이어나갔다.
“선배님이 영국에 계신 며칠 사이, 우리 교단에 엄청난 일이 터졌습니다.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터진 거나 다름 없지요.
S교회 어느 성가대 여신도가 #미투를 선언했는데 상대방이 총회장님입니다.”
이학장이 좌우를 슬쩍 둘러본 후 계속했다.
“12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높습니다.
그 양반이 S교회 담임 목사 시절에 성가대원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어깨를 안마 해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목사님이 얼마나 피곤하실까 하는 마음에 열심히 주물러 드렸는데, 다음 주에는 허리 또 다리로 안마 부위가 바뀌었고 결국 그 여신도를 무릎에 앉히고 성폭행을 했다는 주장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열을 받은 듯 조금씩 높아졌다.
“추가 폭로도 나왔는데 그 양반이 ‘여신도들이 화장을 안하고 나오면 교회 분위기가 어두워진다’는 말을 자주 했고 또 ‘앞으로 여성 신도들이 아이를 많이 나야 복음을 전파 할 주의 일꾼들이 많이 생긴다’고도 했답니다.”
“아이 많이 나으라고 한 것까지 문제가 되나요?”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넘어 가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미투 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아, 또 ‘커피는 역시 젊고 예쁜 여신도가 타 주는 것이 더 맛있다’라는 말도 5년 전에 자주 했답니다.”
“그 문제로 이 학장님을 제가 도와 드리기는 어려운데요.
저는 총회장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할 만큼 그분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
“그게 아니고요… 총회장님이 곧 교단에서 물러 나시기로 했어요.”
그가 다시 한 번 주위를 잽싸게 둘러 본 후 계속 이어나갔다.
“제가 그 미투 여성을 만나서 간신히 달래 놓았거든요.
당장 기자 회견을 하겠다는 것을 이 달 말까지만 시간을 주면, 총회장님이 자진 사퇴를 하시는 선에서 이 문제를 조용히 마무리 짓기로 했지요. “
“미투 열풍이 우리 사회에서 있을 만한 일이긴 하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맞지만 총회장, 그 양반은 틀림 없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제가 있는데도 일식당 젊은 여종업원의 손을 은근슬쩍 잡더라니까요!”
분홍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종업원이 웃음 띤 얼굴로 커피 두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고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커피잔을 들고 입에 가져갔다.
가벼운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귀에 익은 멜로디였다.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가사가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떠나가는 그 사람’ 으로 시작하는 경쾌한 노래였다.
하얀 커피잔을 얌전히 테이블 위에 놓는 이학장의 손가락이 살찐 어린 아이처럼 포동포동했다.
“총회장님은 이제 아무 탈 없이 은퇴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으로 알고 계십니다.
물론 정치계로 나가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총회장이 유고가 되면 교단 법 상 3달 내에 보궐 선거를 치러서 총회장을 선출해야 합니다.
제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번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것 같아 출마를 해볼까 합니다.”
그가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지 어떻게 아시나요?"
이학장이 두 손을 더 꼭 모아서 흔들었다.
“기도로 알 수 있지요!
선배님이 도와 주시면 그 자체로 가장 결정적인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사실 어디서 갑자기 성가대 하던 여성이 나타나서 미투를 선언한 것은 우리가 측량 못 할 주님의 오묘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문교수가 입을 열었다.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도 아무 능력이 없는데요."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을요.
지금 한국 기독교계에서 최고 스타가 바로 선배님이십니다.
가수로 치면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이시지요.
저는 총회장이 되면 우리 교단의 상부조직을 민주적이고 열린 조직으로 바꾸려 합니다.
솔직히 지금은 한 사람에게 너무 권한이 집중되어있어요.
일년에 2백억이 넘는 돈을 한 사람이 전결로 집행하고 인사 문제도 일방적인 지시 체제로 이루어지는 폐단을 바로 잡으려 합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지난 번 선배님 파문 안건도 순전히 그렇게 이루어진 겁니다.
저는 저 혼자 회장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회장단을 구성하여 여러 선배님들을 섬기면서 집단지도 체제로 교단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목이 타는지 그가 커피를 원 샷으로 꿀꺽 마셨다.
“예를 들면 저는 총회장이란 권위주의적인 말을 없애고 대표회장이란 말을 쓰려합니다.”
“대표회장이라면 대표이사처럼 다른 회장들이 있나요?”
“네 회장단을 상임 회장단 4-5명, 경영 회장단 6-7명, 실무 회장단 7-8명으로 구성하려 합니다."
“아니 무슨 회장들이 그리 많습니까?”
“아, 처음에는 좀 많아 보이지만 그렇게 우리조직의 여러 지체들에게 소임을 부여하면 모두 한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섬길 것입니다.
선배님은 대표회장 위 그러니까 제 위에 대표 고문을 좀 해주시지요. “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노래가 익숙한 반주와 함께 끝이 났다.
“저는 지금 학교도 안 나가는 사람인데 교단 일까지 할 수는 없지요.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대표 고문 말고 그냥 고문은 승낙해 주시지요.”
문교수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