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어느새 테임즈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나 하이드 파크 역에 도착했다.
영국은 지하철을 '서브웨이'라고 하지 않고 ‘언더그라운드’라고 하는데 여기서 3정거장만 가면 런던 힐튼 호텔 앞에 내린다.
로빈슨 교수의 집이 커즌 스트리트에 있어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힐튼 호텔을 예약했다.
런던은 고층 건물이 많지 않고 런던 힐튼 호텔이 40여층으로 그나마 제일 높은 축에 드는데, 지은 지 오래 돼서 계속 수리를 하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벨보이가 안내한 문교수의 방은 17층으로 하이드 파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로빈슨 선생의 집 전화 번호를 찿아서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울리자 영국 액센트가 강한 선생의 부인, 메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빈슨 선생이 오전 내내 기다렸고 집에서 점심을 준비했으니 어서 오라는 것이다.
지금 11시니까 간단히 샤워하고 나가면 12시 전에는 집에 도착 할 수 있는 거리다.
힐튼 호텔의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고급 상점가로 연결이 되었고 음식점들도 많았다.
런던의 뒷골목은 아직도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올리버 트위스트가 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작고 네모난 돌로 바닥을 만든 골목길에 몇 년 사이 더 많이 눈에 띄는 '할랄 식품'을 판다는 사인이 크게 붙은 식료품점들이 런던 뒷골목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3-4블럭을 돌아 들어가면 주택가가 나오는데 선생의 주소는 찾기 쉬었다.
작은 아치 모양 현관의 벨을 누르자 곧 문이 열리며 메리안이 밝은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그녀와 가볍게 허그를 하고 거실로 들어가니 로빈슨 선생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애제자를 기다리는 그의 얼굴이 3년전 보다 많이 수척해 보였지만, 맑고 푸른 눈동자는 고요한 기쁨을 내뿜고 있었다.
“건강이 좋아 보이십니다. 흰머리도 저보다 없으시네요.”
“요 며칠 문교수를 기다리느라 흰 머리가 많이 늘었네 .”
허그를 하면서 느낀 선생의 홀쭉해진 몸통에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
문익진이 맞은 편 자리에 앉자 메리안이 먼저 그의 왼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 눈이 화장한 것 같지는 않은 데 어디서 넘어졌나요?”
“네, 그런 일이 좀 있었습니다.”
선생과는 반대로 그동안 더 동그래진 얼굴의 메리안이 짧은 금발 머리를 갸우뚱 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런던 오는 기차에서 선생님이 쓰신 ‘기독교 어디로 가는가?’ 라는 글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교회에 잘 안 나가는 기독교인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교수는 ‘가나안 교인’이라는 신조어를 설명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국에는 아마 장로교가 제일 많지?”
“네, 개신교의 반 이상입니다.”
“칼빈 선생이 한국 사람들을 제일 좋아하겠네 ㅎㅎ.
미국에서는 요즘 장로교가 몰몬교보다 적다는 통계가 있더군.
몰몬교나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같은 파들은 나름대로 단결력이 강해서, 그 교세가 꺾이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늘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종교적 신조와 생활 사이의 괴리가, 일반 기독교인보다 더 없는 것 같아.
말하자면 그들은 대개 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규율을 지키며 사는데, 이것이 스스로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지."
“네, 몰몬의 경우는 기존의 기독교와 교리상 큰 차이가 나는데도 신도가 늘고 있고, 여호와의 증인은 백여 년 전 몇 번의 재림 예언 실패로 큰 타격을 받았는데도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피곤한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점심을 먼저 하고 이야기 하세요.”
메리안이 벽에 있는 휠체어를 끌고 와서 선생을 그 위에 앉히고 식당으로 움직였다.
식당에는 간단한 영국식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영국이 결코 자랑할 수 없는 것이 음식이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문교수는 메리안이 만든 터키 샌드위치를 조금 남기고, 커피 대신 홍차를 한 입 마신 후 로빈슨 선생의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서재의 책상까지 휠체어를 밀고 온 메리안이 문교수에게 말했다.
“저녁 메뉴는 로스트 비프를 맛있게 할거니까 기대하고 계세요.
오후 3시쯤에는 스콘 빵과 홍차를 가지고 올게요.”
문교수는 그녀가 하는 로스트 비프보다 스콘 빵이 더 기대가 되었다.
선생의 서재 벽에는 영국 왕실 아카데미 정회원증을 중심으로 몇 개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흑백으로 찍은 옛날 사진이 먼저 눈길을 끌었는데, 20대의 젊은 선생 옆에는 버틀란트 러셀이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영국식 장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최연소 역사신학 교수가 된 것을 기념하여, 당시 켐브리지 철학 교수였던 러셀 선생과 한 장 찍은 귀한 사진이지.
벌써 60년이 넘었네.”
긴 숨을 내쉬고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 때 러셀 선생이 써서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는 글을 읽고, 마음 속으로 언젠가 이 글에 대한 반박 논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못 쓰고 있네. “
문익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옆에 붙어 있는 칼라 사진으로 눈길을 돌렸다.
60년의 세월이 어떤 변화를 주는 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은 리차드 도킨스 교수와 작년에 찍은 사진인데,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와서 내가 쓴 글을 읽고 한마디 하더군”
“뭐라고 하던가요?”
“아직도 오래 전 죽은 옛날 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니, 내가 기독교 신전통주의의 마지막 적자가 될 거라고 했네.
최근 무신론을 널리 퍼뜨린 책을 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지만 나도 한마디 해 줬지. “
문교수의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