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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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99 화 ★ 여기서 어디로

wy 0 2019.11.09

 

 

 

광장의 질문 중 핵심을 찌르는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문교수님, 종교는 신에게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갈구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교수님 말씀대로 과거의 교리를 떠나서 예수님만을 따르는 기독교가 가능할까요?

 

전통 종교의 내용이 죽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것을 애도하고 종교를 떠나는 사람은 많지만,

여기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종교를 떠나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함안 조의원 드림 -

 

 

-조의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어제의 종교적 패러다임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떠오르는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나'입니다.

 

성경을 패러디 한다면 “보라 옛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왔는지 아직 모르겠다”가 되겠지요.

 

고대 종교의 시작은 자아 의식과 함께 존재의 불안을 느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초자연적이면서 인격적인 절대자, 즉 인간처럼 기쁘고 화내고 슬프고 칭찬하는 하나님을 상정했습니다.

 

종교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것이 종교의 역사입니다.

 

저 하늘 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개념은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의 새장이 열리자 흔들렸지만 전통적 기독교는 이를 애써 무시하고 부인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일주일에 6일은 과학의 세계에 살고 일요일은 교회에 가서 성경에 나온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믿으려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러한 정신적 이중 생활은 중세시대 이후에는 정상적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2015년 조사에 의하면 영국의 젊은이 중 70%가 무신론자이고 10%가 가톨릭, 7%가 성공회, 6%가 이슬람인데 개신교를 믿는 젊은이는 2%밖에 되지 않습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영국의 존 웨슬리가 보면 얼마나 놀라운 현상일까요...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무신론자가 80%가 넘는데 사회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과거 하늘 높은 곳에서 인간들의 복지를 보살펴 주시던 하나님은 이런 나라에서는 더 이상 신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무신론자도 어느새 52%에 이르고 있는데 불과 10여년 사이에 10%가 늘어났습니다.

 

무섭게 빠른 속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위에 계신 하나님보다는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의 방향 전환이 바람직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높이에서 깊이로의 전환이지요.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진리에 대한 탐구나 질문을 회피하고 종교 속으로 숨으면 안됩니다.

 

숨는 것은 일단 편하지만 정직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여기서 새 사도신경이 새로운 방향을 희미하게 보여줍니다.

 

새 사도신경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이해 가능한 언어로 표현했고, 예수님의 삶과 기독교의 중심교리인 부활이나 영원한 삶에 대한 현대적 설명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말로만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을 확장시키는 문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죄 밖에 없는 인간이 오직 천국 가는 날을 기다리며 사는 그 동안의 패러다임보다,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 생명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갈 방향이고, 그런 공동체의 이름은 교회가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도착점은 결코 종교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때는 그렇게 생각 할 때도 있었지만, 궁극적 단계는 단지 온전한 인간에 가깝게 되는 것뿐입니다.

 

한 때는 교리적 종교가 우리의 종착역이라 믿었지만, 이제 단지 우리가 초월 해야 할 인생의 한 단계인 것입니다.

 

종교를 초월한 크리스찬입니다.

 

유대교를 초월한 예수님의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대강의 방향은 어렴풋이 보이는데 아직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문익진 드림 -

 

 

다른 질문을 읽으려 하는데 이메일이 들어왔다. 

 

런던의 토마스김이었다.

 

-문교수님 내 주에 플로렌스에 가려던 계획을 앞당겨서 다녀왔습니다.

 

마침 그 곳에서 고대 미술 세미나도 열리고 무엇보다 그림 ‘막달라 마리아의 전설’을 직접 보고 싶어서 서울 본사의 허락도 없이 출장을 간 거지요.

 

비밀로 해 주세요. ㅎㅎ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그림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

 

문교수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특히 제가 유심히 살펴 본 막달라 마리아 일행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타고 온 배에 쓰여진 콥트어는 전혀 덧칠 한 흔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 그림을 그린 ‘조반니’의 사인에 덧칠이 발견되어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는데 그의 그림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2C말에 플로렌스에서 활동하고 성화를 많이 그린 ‘까마조’라는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의 작품과 유사한 면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십자고’상을 많이 그렸는데 십자고상이란 것은 가톨릭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으로서, 승리자 그리스도보다는 순종과 희생을 강조하는, 고통 받는 예수님의 인성을 주로 표현하는 작품입니다.

 

12C에 들어서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림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전까지는 동방교회의 영향으로 십자가에 예수께서 양 손과 양 발에 하나씩 모두 4개의 못이 박혀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때부터는 두발이 하나로 겹쳐진 곳에 못 하나만 박혀서 3개의 못이 박힌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런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이 까마조인데 만약 M마리아의 전설이 그의 그림이라면 그림의 연대가 12C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번에 모인 전문가 10여명 중 두 사람밖에 안 됩니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영국 언론에서도 앞으로 다루지 않을 겁니다.

 

참고가 되시기 바라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런던 토마스 드림 -

 

문교수가 다시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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