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2
한밤중의 평화 속을 거닐다 보니 제다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우리는 왜 자꾸만 뜯어고치려는 걸까?
별들이 놀러 오는 들판에 무거운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죽순처럼 아파트가 들어서고 산 속에 댐이 들어서고 골프장이 들어선다. 이렇듯 모든 것이 변한 뒤에야 비로소 우리들의 고향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절이 산에 있지 않고 들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실상사에 대한 고마움이다.
절을 지을 거면 중생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그런 절이었으면 좋겠다. 산마다 절이 있지만 산 내음을 거스르는 절은 제다움에서 벗어난 절이다. 바다가 보이는 어느 남쪽 지방에 자그마한 암자가 있어 자주 놀러가곤 했었는데 어느 날 화려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나만 배신감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암자 가는 길에 오래된 동백나무가 있었는데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태풍에 부러지고 말았다. 그 뒤부터 나는 거기에 가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 극본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배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훌륭한 극본이 받쳐줘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극본을 위한 극본이 되면 드라마가 허해진다. 편곡이라는 것도 그렇다. 편곡이 화려하면 가수도 빛을 잃고 노래도 빛을 잃고 편곡도 빛을 잃는다. 절도 중생들을 위해서 지어야지 절을 위해서 절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진정으로 빛나는 것은 저절로 빛나는 것, 일부러 빛나게 하는 것은 빛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빛나려고 하는 삶은 빛나지 않고 빛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삶은 빛나는 것이다. 온실 속의 꽃보다 들에 핀 꽃들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누구나 꿈을 이루고 싶겠지만 꿈은 평생 함께 하는 벗일 뿐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꿈이 많았다. 섬마을 선생님도 되고 싶고 산골 의사도 되고 싶고 아이들을 지키는 동화 작가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꿈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가 바라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차라리 ‘꿈’이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원하지도 않는 길을 걷다보니 어린 날의 꿈은 다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알고 있다. 꿈을 이루는 순간 꿈은 사라진다는 것을.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꿈을 이루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꿈이라는 건 껍데기가 화려할수록 허한 것이고 지저분할수록 실한 것이다.
싱싱한 꿈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면 날마다 꿈을 버려야 한다. 꿈 껍데기가 지저분하도록 말이다.
꿈을 버리는 방법은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꿈을 간직하는 방법은 하루에 한 번 별을 바라보는 것이다.
만약 하늘이 흐려 별이 보이지 않는다면 마음에 새겨진 별을 보면 될 일이다.
이 일을 게을리 하면 그 인생은 장식장 속의 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