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 1번의 끝자락에서 팀파니가 멀리서 다시 등장하고, 바이올린의 화려한 리드를 따라 현악기 전체가 약동하며 음악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큰 볼륨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브람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음악의 여운이 사라지자 방주가 긴 숨을 내쉬었고, 서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무죄가 되었으니 자네는 목회를 계속 해야겠지?”
방주가 긴 속눈썹을 깜박거린 후 입을 열었다.
“하늘에서 그들을 돌보아 주는 하나님께,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비는 것을 전통 기독교라 한다면, 진리가 그들의 목표는 아니네.
과연 내가 이런 목회를 할 수 있을까?
가볍게 한 숨을 내쉬고 서준이 반문했다.
“음, 21C 이후에는 과연 어떤 종교가 살아남을까?
1C 유대 땅에서 생기고, 4C 로마를 점령하고, 13C 서구문명을 지배하고, 16C 종교개혁의 진통을 겪고, 21C 이후 교세가 급격히 줄어드는 전통 기독교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유럽의 선진국 중 기독교 인구가 10%도 안 되는 나라가 많고 우리 나라도 이제 20% 정도 밖에 안 될 거야.
난 그래도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붙잡고 다니던 때의 교회가 좋더라. ”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하지만 이제 어린 시절의 익숙하고 평안한 하나님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지.
이러한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를 수동적 의존 상태에 끝 없이 머물게 하네.
전통 기독교의 가장 큰 모순은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자신에게 둔다는 것이지.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인데…
그래서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지만 중세시대까지의 이야기였지.
부분적인 어떤 글귀 하나에 매달려 위안을 받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하네.
참된 종교는 인생의 불완전성을 끌어 안은 채 용기를 가지고 사는 힘, 그 자체가 아닐까…”
서준이 어깨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블레즈 파스칼 1623-1662
“나는 어려서 읽은 파스칼의 ‘팡세’가 아직도 기억나.
그 중에 소위 ‘파스칼의 내기’라는 것을 자네도 잘 알지?
과연 신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내기에서, 죽은 후 신이 있을 경우, 신을 믿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신을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 가니까, 확률상으로 볼 때 신이 있다는 쪽에 거는 편이 내기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지.
죽은 후는 어차피 모르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건데…일리가 있지 않나?”
방주가 빙긋이 웃었다.
“ 응, 나도 고등학생 때 팡세에 나오는 이 글을 읽을 때는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파스칼이 말하는 그 신은 오직 가톨릭의 신을 믿는 사람들만을 천국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신이라는 점을 이미 전제로서 깔고 있는 것이지.
파스칼이 애초부터 생각했던 신은 상당히 속 좁은 신이었던 셈이네.
즉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내버려두는 그러한 신이지.
더욱이 아직 개신교는 불란서에서는 이단으로 치부되고 있을 때였네.
따라서 <파스칼의 내기> 자체가 허술한 가정 위에 세워진 것이네.”
“그 말을 들으니 그런 면이 있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방주의 말이 계속 되었다.
“파스칼의 내기 이후 영생을 바라는 인간은 다른 내기를 최근에 개발했지.
바로 <인체 냉동 보존술>의 성공에 내기를 거는 방법이네.
즉 나중에 완치 가능한 미래에 다시 깨어나 치유를 받는 쪽에 내기를 거는 걸세.
20만 달러 정도 비용이 든다는데 돈이 많으면 별로 아깝지 않겠지.
왜냐하면 이는 불확실한 천국이 아닌 지구상에서 계속적인 생명을 보장받는 것이니까.
여기서 가장 문제는 만약 이들이 신을 믿어서 천국에서 살고 있는데, 냉동 된 몸이 어느 날 다시 깨어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인데, 내가 소설가라면 한 번 쓰고 싶은 스토리네.ㅎㅎ
물론 현재의 <인체 냉동 보존기술>에 대한 얘기들, 특히 뇌를 다시 살리는 것은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지만, 무신론자들에게는 파스칼의 내기보다는 매력적일 거야.
유신론에 내기를 걸든 무신론에 내기를 걸든, 결국 우리 스스로의 영생에 대한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일세."
“맞아. 전도서에도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지만 그 시종을 알 수 없게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했지.
어쩌면 파스칼의 내기와 인체 냉동술은 유무신론을 떠나서 같은 종류의 보험이라고 보면 되겠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미래의 의술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보험 회사인지…
아니면 두 가지 보험에 다 들으면 어떨까? ㅎㅎ”
서준의 농담에 방주가 환하게 웃었다.
“작년 봄 자네가 주동했던 비운사 불상 복원 사업은 잘 마무리 되었다고 들었네.
앞으로 종교간의 대화 모임도 계속 추진 할거지?”
“음, 사실 우리는 종교간의 대화, 그 이상을 해야지.
다른 종교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구나’ 라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네.
내 종교만 옳다는 것은 종교의 근본 정신에 어긋나지 않을까…
성숙한 신앙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지.
이것은 말로 할 수 없지만 스스로 드러난다네.
불확실성의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