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나보다 더 큰일도 하리라’ 고 하신 말씀의 참뜻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있습니다.”
성경을 펼쳐보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려는 듯 문교수가 다시 물컵을 입에 대었다.
방주도 신학대를 다니기 전부터 참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한 구절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사도 바울이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순간 바울이 아니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천년 전 갈릴리 호숫가를 거닐면서 병자를 고쳐주시고, 가난한 자를 축복해 주신, 그런 선한 목자로 사는 것입니다.
한가지 다른 것은 우리들 안의 예수님은 지금 한국 땅에 살고 계신데, 그분이 2천년 전 유대 땅의 예수님과 똑 같은 말씀을 하실 수는 없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전에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이르노니” 하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는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참 뜻을 따르게 될까요?
우리는 지금 '2천년 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지만 지금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그 분의 참뜻 아니겠습니까...”
문교수가 시선을 위로 한 번 향한 후 계속 이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너희들이 나보다 더 큰일도 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 분의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진심으로 제자들에게 간곡히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굳어진 종교의 위선적 행태를 질타하시고 생명과 사랑의 본질을 밝히신 분이었지요.
우리는 이런 분의 가르침을 본받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예수님을 박제화해서, 다시 종교 안으로 집어 넣어 우상화 한 것이 아닐까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유일한 진리다’ 라고 할 때는 예수님의 이러한 종교를 포함하고 초월한, 즉 ‘포월’ 한 뜻으로만 가능한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배당 안이 잠시 숙연해지는 느낌이었다.
“여러분 중에 보신 분도 많겠지만 ‘도마복음’이 1945년 이집트의 작은 도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 것을 2천년 기독교 역사에 떨어진 원자폭탄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도마복음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이야기 식으로 나오지 않고 그 분의 말씀이 어록 위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또 다른 차이는 기적이야기, 동정녀, 부활, 재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위나 바다 속이 아니고,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즉 ‘하나님의 나라가 가깝다’고 할 때의 가까움은, 곧 온다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바로 내 가슴 속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마복음이 신비한 깨달음을 강조한 영지주의라고 비난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너무나 다른 생생한 기록들이 2천년의 어둠을 뚫고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도마복음을 처음 읽은 후 만약 이것이 5백년 전 나타나서 루터가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는 종교 개혁 후 27권의 신약 성경 중 2-3가지를 빼고 정경으로 확정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여의치 않았는데, 어쩌면 도마복음을 넣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도마복음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큰 발견이었는데, 이에 못지 않은 대단한 발견에 대한 발표가 곧 영국에서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국의 폴 로빈슨교수가 얼마 전 터키의 이케아 호수 밑에 잠겨있는 성당에서, 사도신경으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돌 판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마 곧 해석을 끝내고 그 내용을 발표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외우는 사도신경과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저도 곧 영국으로 가서 마지막 해석 작업에 참여 할 예정입니다.
이것이 발표가 되면 곧 언론에 나오겠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인터넷에서 ‘21C 기독교 광장’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문교수가 주위를 돌아보며 방주와 눈을 마주친 후 계속 말했다.
“저는 내년에 이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만 21C 광장을 통하여 늘 여러분들과 대화를 할 것입니다.
지금 21C 광장의 대화들도 22세기가 되면 안이하고 진부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22세기 광장이 다시 생긴다면 바로 이러한 발전이 21C광장보다 더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예배당 안은 문교수의 설교 중에도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와서 이제는 통로 중간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손가락이 아니라 그분이 가리키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만이 예수님을 재 발견하고 기독교의 새로운 개혁을 가져 올 것입니다.
2천년 전 신조나 교리가 그대로 유지 되는 한 지금의 기독교는 다음 세기에는 어쩌면 아프리카에만 남아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루터의 가톨릭 개혁 못지않은 큰 개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지요.
저는 그 분이 토로한 그토록 아름답고 충만한 것, 그 분을 완전히 사로 잡았던 그 무엇을 알고 싶습니다.
마리아가 동정녀인지 아닌지, ‘알마’라는 단어가 처녀인지 아닌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그 분이 나의 구원자라면 그 이유는 오직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고, 광야의 유혹을 물리쳤고,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을 향해 모든 것을 헌신한 선한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분이 자신을 메시아로 확신했고, 3일 후에 부활 할 것을 미리 알면서 십자가에서 죽었고, 오직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각본대로 산 분이라면, 그 분은 나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
이 때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며 통로 중간에 서있던 어떤 사람이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키가 크고 몸매가 날렵한 젊은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목사가 아니야!
마귀의 왕 '바알세불'아, 당장 여기서 내려와라.”
그가 옆에 있는 빈 의자를 번쩍 들어서 문교수에게 내리쳤다.
이어서 바닥에 넘어진 문교수를 올라타고 두 손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앞 좌석의 젊은 사람 몇 명이 급히 뛰어 올라 사내의 양팔을 붙잡아 떼어 놓았다.
방주와 선희는 그가 손준기라는 것을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