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하늘나라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천국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천국을 지키지 못하고 하늘나라만 꿈꾼다.
이 모두가 우리 마음속에 악마를 키운 탓이다. 방송에서는 좋은 뉴스보다 안 좋은 뉴스를 더 즐기는 것 같고 학교에서는 인성 교육 대신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아이들이 자라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된들 악마의 농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어릴 때 배운 토끼와 거북이 얘기도 그렇다.
느려도 꾸준히 노력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얻긴 했지만 정말 중요한, 그러니까 토끼와 거북이가 서로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처음 이 얘기를 접했을 때는 나도 거북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왠지 토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느린 거북이를 위하여 일부러 자는 척했을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이런 토끼의 마음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무조건 손가락질 하지 않았는가.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를 본받으라고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토끼의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 가르쳤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내 생각은 이렇다. 토끼는 처음부터 이 경주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보다 느린 거북이가 승자가 되면 사람들한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경주를 하기로 한다.
원작에는 토끼가 잠을 잤다고 되어 있는데 달리던 토끼가 갑자기 잠을 자는 것도 그렇고 거북이가 잠자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지나치는 것도 좀 그랬다. 그렇게 해서 승리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반대로 토끼가 이겼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자기보다 느린 거북이랑 경주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경주를 하려면 토끼들끼리 하든가 거북이들끼리 해야지 어떻게 빠른 토끼와 느린 거북이가 경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나는 경주를 하자고 먼저 말을 꺼낸 거북이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토끼가 느림보라고 놀렸기로서니 어떻게 자기보다 빠른 토끼와 경주하자는 말을 할 수 있겠나? 나 같으면 그냥 느림보 소리 들으면서 살았을 것이다. 세상이 빠른 것에 중독이 되어 느림의 즐거움을 모르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