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배우가 있었다.
누구라고 말하면 다 아는 사람이다.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이 배우가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전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 배우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실망했다. 아니 실망했다기보다는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코를 높이고 쌍꺼풀을 하고 나왔는데 따뜻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목소리만 남아서 옛날의 그녀를 생각나게 하였다.
그 뒤부터 그 배우가 조금씩 멀어지더니 결국 가슴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고향 같은 배우였는데 나는 고향을 잃은 것 같아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만약에 백성들이 즐겨 찾는 어떤 산에 댐이 들어선다면 백성들은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고 나라를 원망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그런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결국은 댐을 건설하고야 만다.
백성들은 선진국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데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선진국이 되려고 애를 쓰는 걸까? 산을 파헤치고 강물을 더럽히면서 막무가내로 선진국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먼 훗날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선진국이 되지 못한 후진국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아니다. 먼 훗날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후진국이 될 것이며 선진국을 포기한 후진국들은 저절로 선진국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이라는 말은 때려 부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지역이든 개발이의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초토화가 된다.
아파트를 위하여 또는 위락장을 위하여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들을 무참하게 없애버린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전력이 부족하다고 소중한 산을 마구 파헤쳐 댐을 만들라고 한 사람도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과 다를 바 없다. 진정 백성들을 위한다면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지켜 줘야 하거늘 거꾸로 때려 부수고 있구나.
언젠가 창녕 사는 아우랑 함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고운동 마을을 찾은 적이 있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하는데 지리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반갑고 고마웠다. 그날 밤 내가 본 달은 평소에 봤던 달하고는 격이 달랐다.
밝기도 하였거니와 너무 고와서 넋을 잃을 정도였다.
달빛에 물든 고요한 산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무와 풀들 그리고 사람의 얼굴 그러니까 눈길 닿는 곳마다 달빛 향이 은은하게 품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달빛을 그렇게나 많이 뿌려놨으니 달빛 향이 날 수밖에. 어릴 적에 햇살 소리를 들은 기억은 있지만 달빛에서 향이 난다는 걸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부터 나는 지리산 갈 때마다 본능처럼 고운동에 들렸다.
산이라는 게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는 건데 고운동은 갈 때마다 거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산이 달빛 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달빛을 머금은 풀과 꽃들의 향은 아무리 마셔도 배부르지 않고 오히려 마음의 때가 씻기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었다. 달은 고운동이 좋아서 달빛 뿌리고 사람은 그 달빛으로 마음을 씻으니 세상에 이처럼 포근하고 평화로운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 평화로운 곳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운동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운동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마치 침략이라도 당한 것처럼 이 나라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렸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움튼 것이다.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온 산의 들풀들이 모두 함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노래를 만들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래를 산신령한테 의존하고 있는 나로서는 노래를 빨리 만들어 낼 재간이 없었다.
고운동에 자주 가야할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