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까지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렸다.
성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긴 줄이 서 있었다.
미크바 통에 몸을 담그는 줄이다.
바라바가 마차에서 내려 줄 끝에 섰다.
아침에 쿰란의 동굴을 비추던 해는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날씨는 기분 좋게 선선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오랜 여행에 피곤해 보였으나, 떠드는 목소리에는 성전에 들어가는 기대가 배어 있었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한 조각 떼어 주는 엄마도 있고, 성안에 들어가면 양이나 염소는 너무 비싸서 비둘기 한 마리만 사야겠다고 불평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미크바 통은 성문 약 1Km 앞에 설치되어 있고 남녀를 가르는 탈의실 앞에 주의 사항이 몇 나라 언어로 크게 쓰여 있었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성전에 오시는 순례객에게 알립니다.
아래 사항에 해당하는 사람은 미크바 통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이달에 시체를 만졌거나 그림자가 시체에 닿은 사람
*생리 중인 여성
*사람을 죽였거나 파충류를 만진 사람
이를 어기고 미크바 통에 몸을 담그면 큰 화를 당할 것임>
대제사장 가야바 씀
히브리어 옆에 두 나라 언어로 더 쓰여 있는데 그리스와 로마 글자였다.
미크바 통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물은 역시 지저분했다.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심이 들었으나, 몸을 안 담그기도 찜찜해서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옷을 다시 입으며 빌립 선생이 준 목걸이도 목에 걸었다.
성문을 지나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오니 경비가 삼엄한 것을 당장 느낄 수 있었다.
왕실 경비병들이 서너 명씩 창을 들고 군데군데 서 있었고, 페니키아 용병들도 긴 칼을 차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때 시온 호텔로 향하는 바라바의 등을 누가 뒤에서 툭 건드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몬이었다.
“어, 아몬. 여기 웬일인가?”
“응, 성문 앞에서 자네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어.
자세한 얘기는 걸어가면서 하고 우리 숙소로 가세.
시온 호텔 옆에 여관을 간신히 얻었어.”
“자네 말고 다른 사람도 와 있나?”
“헤스론과 다른 대원들도 몇 명 같이 왔네.”
바라바는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성전으로 향하는 길은 사람들로 붐벼서 시끌벅적했지만, 아몬이 그동안 있었던 일 즉 나발이 체포당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바라바에게 말하기에는 오히려 적합했다.
“내가 나발에게 예루살렘에서 시온호텔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설마 나발이 그 얘기를 할까?”
아몬이 땅을 보며 잠시 걷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지난번에도 내가 말 했지만, 근래에 자네를 생각하는 동지들의 마음이 좀 흔들리고 있지.
나나 헤스론은 물론 그렇지 않지만, 나발은 자신을 못하겠네.”
바라바의 고개가 숙여지며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일단 오늘 시온호텔에는 가지 않는 게 좋겠어.
내가 예수 선생의 제자 시몬과 연락을 해서, 그 여자의 눈을 고치는 문제는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으니까.”
바라바가 입에서 다시 한숨이 새어 나온 후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일 사라 재판도 가 봐야 하는데….”
“그것도 위험할 것 같아. 나발이 재판도 알고 있으니까.”
아몬의 말에 바라바의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시온호텔에서 기다리는 루브리아의 얼굴이, 까만 눈동자가 떠올랐다.
나발이 설마 그럴 것 같지 않았고 여하튼 루브리아를 만나고 싶었다.
“자, 내일 아침 일찍 할 일이 있으니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나가서 먹읍시다.”
카잔이 잃어버린 딸에 관한 얘기를 그만하고 싶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누보 어머니도 같이 모시고 가자. 내가 요즘 주머니가 든든하니까. 하하.
미사엘 님도 내일 땅 좀 파려면 영양 보충하셔야지요.”
미사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시장통에 맛있는 양고깃집을 알아요. 그리로 가지요.”
누보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시장통 고깃집은 조금 이른 시간이라 빈 자리가 많았다.
오랜만에 여기에 오니 누보는 지난 일들이 샅샅이 떠올랐다.
마나헴에게 붙잡혀 고문당한 후 쓰레기통 옆에 숨어 있다가, 헤스론이 뒤에서 반갑다고 어깨를 쳐서 놀랐었고….
나발과 같이 유리와 식사를 하며 한참 즐거웠는데, 유리 어머니가 먼저 가라고 해서 먹던 음식을 어머니 드리려 싸가지고 온 일도 생각났다.
“엄마, 오늘 고기 좀 많이 드세요.
비록 카잔 형님이 사시는 거지만, 내가 사는 거나 다름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많이 드세요. 그렇지요. 카잔 형님?”
“그럼, 그렇고 말고…. 어머니는 효자 누보가 있어서 참 좋으시겠어요.”
“네. 그렇긴 한데 이제 내 말 좀 잘 들었으면 좋겠어요.
고기 많이 먹는 것도 좋지만 어머니 말 잘 듣는 게 더 효자에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고생 안 하시게 누보가 편히 모실 거예요.”
“고생 안 하는 것도 좋지만 어머니 말을 잘 듣는 게 진짜 효자라니까요.”
양고기가 노랗게 익어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큰 접시로 나왔다.
모두들 열심히 고기를 먹었지만, 마음 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무슨 생각들을 그렇게 해요. 내일 걱정은 내일들 하세요.”
모두 무거운 얼굴로 고기만 먹는 모습에 누보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는 늘 맞는 말씀만 하시네요.”
카잔이 맞장구쳤고 어머니가 계속 말했다.
“어제 일, 지나간 일도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한다고 고쳐지나요. 아무도 세월 돌이켜서 새로운 시작 못 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끝을 만들어야지요.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음, 누구나 이제부터 새로운 끝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카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생각만 바꾸면 돼요. 시작을 고칠 순 없지만, 끝은 고칠 수 있어요.”
별말 없이 고기만 먹던 미사엘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누보 어머니 말씀이 어떤 훌륭한 랍비보다 더 나으십니다. 하하.”
양고기 한 접시를 더 비운 후 네 사람은 식당을 나섰다.
미사엘은 내일 아침 일찍 오겠다며 인사를 하고 산보도 할 겸 회당 옆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빨리 걸으니 옷에 묻어 있던 양고기 냄새가 툭툭 흩어져 나왔다.
공원 벤치에 왔을 때는 해가 거의 저물어 어둑어둑해졌다.
벤치 뒤에 서 있는 밑동이 굵은 야자수 나무 기둥에서 미사엘의 눈이 무엇을 찾고 있었다.
조금 어두워져도 미사엘은 그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미사엘과 사라의 사랑을 위해’라는 글씨가 야자수 나무 기둥에 선명했다.
공원에 올 때마다 오늘은 혹시 사라가 산보를 나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새겨 놓은 글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