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유월절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고 있었다.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순례자들이 늘어나고 도시의 모든 길은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키 큰 대추야자와 올리브 나무가 시원하게 일렬로 펼쳐져 방문객들을 안내했다.
수많은 여행자는 성문에서 1Km 정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정결 의식을 치러야 한다.
'미크바'라고 불리는 물통에 몸을 담가야 하는데 유월절 성안에 들어오는 필수 과정이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신의 거룩함을 받아들이는 깨끗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유월절이 끝날 때까지 생리 중인 여성은 미크바에 몸을 담글 수 없으므로 성 내에 들어올 수 없다.
또 도마뱀을 만졌다거나 시체에 그림자가 닿기만 했어도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
순례자들은 유월절 몇 주 전부터 정신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그들은 어떤 제물을 몇 마리 살 것이며, 내야 할 세금은 얼마가 될지 계산하느라 골치가 아프다.
험한 광야와 사막을 오래 걸은 사람들은 발도 아프고 몸이 쑤시지만,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생각을 하며 참는다.
성 안에 들어온 순례자들이 올리브 산에 오르면 영광의 빛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휘황찬란한 금빛의 성전은 보는 이들을 감탄시키고 웅장한 성벽은 여행자들을 안심시킨다.
유월절 축제의 총 책임자는 대제사장 가야바지만 성전세를 직접 관리하는 임무는 안나스의 아들 조나단이 맡고 있다.
며칠 전 아버지의 은밀한 지시로 성전 비밀 금고에 보관된 100달란트 상당의 금괴를 헤롯궁으로 옮겼다.
극비리에 일을 진행했지만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나면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무거운 금괴를 빠른 시간에 옮기려면 한두 사람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옛날 이집트의 왕들은 무덤에 보물을 묻은 후 거기서 일했던 노예들을 모두 같이 묻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산헤드린 의원 한 사람이 조나단을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조나단 님, 요즘 유월절 준비로 매우 바쁘시지요?”
그의 태도는 정중하고 부드러웠다.
가야바 대제사장이 오랫동안 그 직위를 탄탄히 유지하고 있지만, 다음 순서는 조나단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니고데모 님. 제가 하는 일이 뭐 있나요? 그냥 심부름 정도지요.”
“무슨 말씀을요. 중요한 일은 다 하시잖아요.”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으나 사두개파와도 잘 어울렸다.
산헤드린 젊은 의원들 사이에서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의 하얗고 고급스러운 의상 가장자리에 금색 술이 양쪽으로 각각 세 개씩 달려서 흔들렸다.
사두개파와 달리 바리새 랍비들은 대개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데 니고데모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티가 났다.
인사를 마치자 그가 본론을 꺼냈다.
“이번 유월절에 성전세가 꽤 많이 들어오겠지요?”
“네. 아마 순례자들이 작년보다 많이 올 것 같습니다.”
“세금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일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네. 세수가 부족하면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고, 세금을 올리면 시민들 원성이 높아지니까 그 사이를 잘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걷기도 어렵지만 걷은 세금을 잘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성전세 관리에 대한 정기감사는 1년에 한 번 하는데, 이것을 두 번 하도록 관계 규정을 바꾸자는 의견들이 있더군요.”
나고데모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며 조나단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 그래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나요?”
“젊은 의원들 몇 명이 그러더군요. 그리고 요즘 좀 이상한 소문도 들리고….”
조나단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소문요?”
“음, 거룩한 성전에 모아둔 금괴가 없어졌다는데 그럴 리야 없겠지요.”
가슴이 뜨끔한 조나단이 니고데모의 시선을 피했다.
감옥에 갇혀있는 열성당수 아셀의 경호팀장인 헤제키아에게 처음 보는 사람이 면회를 왔다.
가슴에 흉장이 크고 청동 무늬가 화려해서 혹시 천부장이 아닌가 했지만, 천부장이 자기를 만나러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아셀 당수의 경호팀장 헤제키아가 맞습니까?”
그의 태도나 목소리로 봐서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그는 헤제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미심쩍은 듯 말했다.
“음, 30대 초반에 얼굴이 퉁퉁하고 키가 크다고 했는데 말라서 그런지 얼굴이 좀 아닌 것 같네.”
“여기 들어와 며칠만 있어 보세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는 게 다행입니다.”
헤제키아의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어 헤제키아에게 주었다.
서신을 펴 보니 아셀 당수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헤제키아에게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나는 이 서신을 전해주는 칼로스 천부장 님 덕택에 잘 지내고 있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기로 하고, 우선 천부장 님께서 자네에게 지시하는 일을 내가 시키는 일과 똑같이 생각하고 따르기 바라네.
건강 유지하고,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좋은 시절이 올 걸세.
그럼 곧 만나세. -아셀 씀.>
헤제키아는 서신을 한눈에 다 읽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천부장 님인지 몰라뵙고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셀 당수 님은 건강이 괜찮으신가요?”
칼로스 천부장은 이 사내가 보기보다 영악하다고 느꼈다.
“아셀 님은 건강하시오. 이미 내가 밖으로 모셔서 온천물에 목욕하시며 편히 계십니다.”
“아, 저는 여기 와서 당수님 걱정을 하루도 안 한 날이 없습니다.”
헤제키아는 큰 키를 반은 접으며 머리를 숙였다.
“아셀 님도 경호팀장 걱정을 많이 하시지요.
서 있지 말고 이제 앉으세요.”
헤제키아는 경호 책임을 맡던 사람답게 민첩하고 강해 보였다.
그가 공손히 앉자 천부장이 물었다.
“여기서 밥도 잘 못 먹고 힘들었을 텐데 건강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안에서도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안에서 무슨 운동을 할 수 있나요?”
“쇠사슬에 발이 묶여 있으니까 뛸 수는 없고 제 몸무게를 이용한 근육운동을 하지요.
많이는 못 해도 팔굽혀 펴기는 열심히 했습니다.”
“잘했네요. 당장 나가서 일할 수 있겠어요?”
헤제키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그럼요.”
“음, 열성당 비밀사업부장 나발의 거처를 아나요?”
“나발의 거처는 제가 모릅니다만, 미사엘이 아마 알 겁니다.”
“그럼 미사엘이라는 사람을 먼저 만나야겠네.
지금 같이 나갑시다.”
헤제키아는 터져 나오는 만세 소리를 간신히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