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당 대표로 내가 산헤드린 의원이 되는 건가요?”
아셀이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이 나라는 해안지역의 잘 사는 사람들과 들판에서 작물을 재배하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세상을 모릅니다.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아람어도 말은 하지만 읽고 쓰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로마제국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 몰라서, 누가 조금만 선동을 해도 저렇게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겁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을 개화시키는 역할을 아셀 님이 하시면서, 정식으로 의회에 진출하시는 겁니다.”
“총독 각하의 생각이신가요?”
“네, 각하께서 유대민족의 앞날을 위해 큰 선정을 베푸시는 거지요.
실은 총독 각하의 부인이신 프로클라 여사가 총독께 말씀드려 승인하신 겁니다.”
“프로클라 여사요? 저도 성함은 들어 봤는데….”
“네, 그분은 대외활동을 별로 안 하셔서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안 보이는 영향력이 큽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십니다.”
아셀의 눈이 천장으로 향하자 칼로스 천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산헤드린 의회에 바리새파 의원들이 많지만, 정신적 지주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필로 선생 아닙니까.
아셀 님이 필로보다 못할 것이 없지요.”
필로(BC 30?~AD 45?)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셀이 말했다.
“그래도 나 혼자 거기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셀 님이 물꼬를 터 주셔야지요.
나중에 아셀 님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또 추천해 주시고요.”
‘내가 필로보다 그리스 말은 못하지만, 유대 민족을 위해 평생을 투쟁했지요.’ 라는 말이 아셀의 입안에서 맴돌았다.
카잔이 유리를 몰래 따라오는 놈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복도로 나가는데 마침 나발이 방에서 나왔다.
“카잔 님, 지금 유리가 아래 와 있어요. 같이 내려가시지요.”
“아니, 잠깐만.”
카잔이 목소리를 낮추고 유리를 따라온 두 사람에 대해 나발에게 설명했다.
“까만 옷을 입은 남자들이라면 아무래도 시카리 놈들 같은데, 갈릴리 시몬파에서 일하는 암살 청부업자들이 그런 복장이지요.”
“아, 시카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칼로 사람들을 마구 찌르는 놈들이지. 나도 들은 적이 있네.”
“네, 아직도 암암리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나헴이 고용했을 텐데, 바보 같은 유리가 그런 놈들을 달고 다니네요.”
“음, 내가 대신 내려가 볼게. 유리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또 카잔 님 신세를 지네요.
죄송하지만 유리에게 당분간 여기 오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연락한다고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일 층 로비로 카잔이 들어가니 유리가 오른쪽 구석에 앉아 있고, 검은 옷 두 명은 유리의 뒤쪽에 앉아 있었다.
유리는 나발이 내려오는 것만 기다려서 그런지, 카잔이 앞에 가도 언뜻 못 알아봤다.
“유리 씨, 안녕.”
그가 바로 앞에서 말을 건네자 그녀가 놀라며 반가워했다.
“어머! 카잔 아저씨. 여기 계셨군요.
그러지 않아도 뵙고 싶었어요.”
“목소리를 낮추고 주위를 돌아보지 말아요.”
유리가 깜짝 놀라며 동작을 멈췄다.
“누가 제 뒤를 따라왔나요?
“응, 그런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어머, 저는 전혀 몰랐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나중에 집에 가서 마나헴이 여기서 만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을 생각해 놔야 해요.”
“큰일이네요. 뭐라고 해야 할지… 시장에 가야 하니까 가는 도중 생각해 볼게요.”
“그래요. 누보도 이번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어요.”
“나발 님은 별일 없으시지요? 누보를 구해주느라 다치지는 않았나요?”
“괜찮아요.” 카잔은 자기도 같이 싸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제 일어나서 시장으로 갈게요.
무서워서 여기 오래 못 앉아 있겠어요.”
“시장에 같이 가요.
어차피 저놈들이 우리를 따라올 테니까 시장에서 따돌리는 게 나을 거요.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해야 해요.”
두 사람은 가볍게 일어나 광장호텔을 나섰다.
*필로(BC30?~AD45?)
‘알렉산드리아의 플라톤’이라는 명성을 얻었던 유대인 철학자로서. 그리스어를 잘했지만 히브리어는 못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이며, 구약성서 창세기를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사용하여 알레고리적 해석을 최초로 시도한 학자이다.
AD 39년에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단을 이끌고,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