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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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125화 ★ 종교 간의 대화

wy 0 2022.10.23

 

헤로디아 안나스 collage.png

 

헤로디아의 반응을 본 안나스는 대제사장 예복인 '에봇' 반환에 대한 심중의 말을 꺼냈다.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왕비님께서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직접 부탁을 드리셔야 될 것 같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직속 상관인 시리아 총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좋은 생각이네요. 제가 시리아 총독께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리고왕비님 말씀대로 이 문제는 결국 누가 황제 폐하께 직접 말씀을 드려야 해결될 것입니다.

 

마침 왕비님께서 칼리굴라 님을 만나신다니 그때 한 번 언급을 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헤로디아는 왜 안나스가 칼리굴라에게 가져가는 선물을 흔쾌히 부담한다고 했는지 이제 알았다.

 

그러지요. 칼리굴라 님이 황제께서 계신 카프리 섬에 자주 가시니까 쉽게 말씀드릴 수 있을 거예요.”

 

안나스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크게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이제야 저의 오랜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왕비님께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감읍할 따름입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계속 되었다.

 

아무쪼록 헤롯 각하와 왕비님의 만수무강과, 우리 유대 민족의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 기원합니다.”

 

헤로디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드려야지요

 

이번 유월절, 예루살렘에 빌라도 총독의 부인도 오는데 제가 대제사장 예복인 '에봇'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프로클라 여사가 총독보다 더 협조적일 겁니다.”

 

, 제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리 해 주시면 금상첨화가 되겠습니다

 

'에봇'이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으로 반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아무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 에봇을 가야바 대제사장이 입고, 또 앞으로 요나단이 입고 거룩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왕비님께서 오래오래 지켜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요나단은 안나스의 아들로서, 가야바 이후 대제사장 자리를 미리 언급하는 것이었다.

 

그럼요. 물론이지요

 

그때까지 대제사장님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뒤에서 계속 돌봐 주셔야지요.

 

요나단 제사장은 젊은 나이에도 침착하고 현명해서 벌써부터 대제사장 감이라는 소문이 자자 하더군요.”

 

자식 칭찬에 안나스도 흡족한 마음을 흠뻑 드러내며 말했다.

 

왕비님께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봐 주신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그 아이의 얼굴이 제가 젊었을 때와 똑같다고는 합니다.”

 

,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요나단은 역시 젊어서 그런지 좀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생각이라면 어떤 말씀을 하시는 건지.”

 

노인의 약간 불안한 음색이었다.

 

, 뭐 나쁜 뜻에서 한 말은 아니고요...

 

지금 우리 유대교가 크게 세 파로 나뉘어 있잖아요.

 

우리 왕실과 사두개파가 나라의 제사나 행정의 큰 조직을 움직여 가지만, 숫자로는 바리새파가 많고, 경건 생활을 위주로 하는 에세네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이 세 파가 자주 모여서 대화를 하며 서로 공감대를 넓혀가자는 움직임이 젊은 층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요나단이 앞서 추진하는 것 같더군요.”


,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물론 될 수만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요.”

 

어렵다고 보시나요?”

 

, 솔직히 그렇습니다.

 

원래 종교라는 것은 서로 다른 종교 간의 대화가 같은 종교 내 다른 파끼리의 대화보다 쉽습니다.

 

저희가 인도의 힌두교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는 비교적 수월하게 대화의 장을 열 수 있습니다.

 

근본이 다르므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유대교의 서로 다른 파끼리는, 마치 집안싸움이 다른 집안과 싸움보다 더 치열하듯이, 더 어렵습니다.”

 

왕비가 잠자코 고개를 끄떡였다.

 

안나스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 나갔다.

 

왕비님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 사두개파는 모세 5경만을 진정한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파는 지혜서나 문학서도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영혼이나 천사들의 존재도 우리는 믿지 않고 그들은 믿습니다.”

 

,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인간은 마음이 약하고 지식 수준이 낮을수록 무언가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천사나 마귀가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들의 그런 믿음을 탓하거나 고쳐 줄 필요는 없습니다.”

 

, 그런가요?”

 

. 그들의 힘든 삶에 위안을 주는 유일한 희망을 없애는 것은 잔인하기도 하고,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허나, 간혹 근본을 흔드는 주장을 하는 무리들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인들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심 산 성전을 유일하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이 퍼지게 되면 우리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예루살렘에 오는 참배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헤롯 전하와 왕비님의 통치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도시는 오직 예루살렘이어야 합니다.”

 

안나스의 논리 정연한 주장에 오랜 관록이 엿보였다.

 

. 그래서 매년 유월절 행사가 특히 중요하지요.”

 

“네, 왕비님. 올해는 특히 질서 유지에 만전을 기해, 예루살렘을 거룩히 받들지 않는 폭력배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을 엄히 다스릴 생각입니다.

 

반면에 성전 내의 이방인의 뜰까지는, 환전상이나 제물들을 파는 상점들을 더욱 늘려서 매일매일 그들의 수익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이려 합니다.”

 

왕비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사실 비둘기나 양을 파는 사람들의 일 년 매출 중 반 정도는 유월절 기간에 발생한다지요?”

 

. 맞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좀 많이 걷어도 별 저항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힘으로 전체 치안 유지를 하지 못하고,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로마 수비대가 항상 성전을 내려다보며 감시하는 모양새가 옥에 티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에봇을 반환받은 후 또 할 일이 있군요.

 

성전의 안토니아 요새 수비대도 왕실에서 직접 파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봅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왕비님.”

 

안나스가 다시 한번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혔다.

 

[크기변환]에봇 Screenshot 2022-05-17 at 21.18.4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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