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리아의 손을 놓으며 헤로디아 왕비가 말했다.
“손도 참 예쁘네. 반지가 아주 잘 어울려.
이렇게 마음씨 곱고 백합처럼 활짝 핀 루브리아를 데려가는 남자는 누굴까, 복도 많지.”
루브리아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왕비가 계속 말했다.
“이제 날씨도 꽤 쌀쌀한데 다음에 우리 온천이나 한 번 가자.
그런데 루브리아가 어렸을 때 로마의 칼리굴라 님과 친했었지?”
“네, 어릴 때 같이 자라서 게르만 전장에서도 함께 뛰어놀았어요.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세요.
얼마 전 서신을 보내셨는데 아직 답장을 못 드렸네요.”
“어머, 그러셨어? 나중에 로마에 가서 같이 한번 인사드리자.
사람들은 외로울수록 어릴 때 친구가 생각나는 법이야.
그분도 아마 지금 많이 외로울 거야.”
“네, 서신에도 그런 말씀이 있었어요.
저보고 로마에 오면 꼭 찾아오라고 하셨으니까, 왕비님과 같이 가면 좋을 거예요.”
“응, 그래. 사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주위 사람의 말을 골고루 잘 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지.
나도 이 손바닥만한 땅의 왕비라고,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데 그분은 오죽하시겠어.
루브리아는 언제 로마에 갈 생각이지?”
“저는 유월절 지나면 곧 아버지와 같이 가게 될 것 같아요.
그전에 제 눈 치료를 위해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 선생님을 만날 계획인데, 이번에 꼭 치료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래. 그 사람이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헤롯 전하께서도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하시지. 호호.”
왕비가 일어나 하얀 통과 마실 물 두 잔을 옆방에서 가지고 왔다.
“이 석청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전하께 가져온 히말라야 석청이야.
얼마 전에 나도 조금 먹어 봤는데 효과가 참 좋은 것 같아. 호호.”
헤로디아가 석청을 물에 타서 루브리아와 같이 마셨다.
두 사람은 동시에 바라바를 생각했다.
루브리아는 내일 식당에서 만날 생각을 했고, 왕비는 내 주쯤 다시 한번 오라고 할 계획이었다.
강하고 쌉쌀한 석청의 향내가 두 여인의 코를 찔렀다.
다음날, 새벽에 서리가 내려서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했다.
루브리아는 하얀 목도리를 두 개 구해서 하나는 바라바를 주려고 가지고 나왔다.
사막의 겨울은 살얼음이 얼을 정도로 추웠다.
며칠 전의 아지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에는 겨울이 기억 안 나고, 겨울에는 여름이 아물아물한 것이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다.
오늘은 루브리아가 먼저 나와 바라바를 기다렸다.
“일찍 오셨나 봐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천만에요. 늘 바라바 님이 저를 기다리셨잖아요.
오랜만에 만날 생각을 하니까 집에서 빨리 나오고 싶었어요.”
루브리아의 검고 큰 눈동자를 보며 바라바가 입을 열었다.
“눈은 괜찮으시지요?”
“네, 이제 곧 예수 선생님을 만나면 고쳐주시겠지요.
이번에 예루살렘에 저와 같이 가실 수 있지요?”
루브리아가 얼굴을 바라바에게 가까이하며 물었다.
“네, 그래야지요. 사라 재판도 있고요.”
손뼉을 치는 시늉을 하며 그녀가 말했다.
“정말 잘 되었어요. 예루살렘이 사막이라 밤에는 갈릴리보다 추워요.
이 목도리 하고 가세요.”
루브리아가 건네준 목도리는 부드럽고 가볍기가 솜털 같았다.
“이렇게 좋은 건 처음 봤어요. 루브리아 님이 하시지요.”
“제 것도 있어요. 똑같은 것을 세트로 구했어요.
헤롯 전하도 이런 하얀 천으로 만든 옷을 늘 입고 시찰을 하셔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유대인들이 부른대요.
우리도 이 목도리를 두르면 왕과 왕비가 된 기분일 거예요. 호호.”
루브리아의 말에 바라바가 싱긋 웃은 후 물었다.
“지난번 서신에 살이 찐 것 같다고 쓰셨는데 제가 볼 때는 전혀 모르겠어요.”
“바라바 님이 못 보는 부분만 살이 조금 쪘어요.
너무 열심히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호호.”
바라바의 시선이 입을 가리고 웃는 루브리아의 손에 멈췄다.
“오늘 끼고 나오신 반지도 루브리아 님과 참 잘 어울리네요.”
“이렇게 큰 흑진주 처음 보셨지요?
어제 왕비님께서 불러서 갔더니 선물로 주셨어요.”
바라바는 헤로디아 왕비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음식은 늘 먹던 흰 살 생선이 나왔고, 오랜만에 와서 맛있다며 루브리아가 빠르게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자 그녀가 말했다.
“이번 여행에 아버지가 경호원을 한 사람 붙이셨어요.
바라바 님이 같이 간다고 말하면 아무 걱정 안 하실 텐데 그럴 수도 없고, 유타나와 사라도 있으니까 경호원을 따돌릴 수 있을 거예요.”
바라바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로마는 유월절 끝나면 바로 가시나요?”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로마도 좋지만 카프리 섬은 정말 천국 같은 곳이지요.
바라바 님의 일들이 잘 마무리되고 빨리 오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위는 너무 전면에 나서지 말고 각별히 조심하셔야 해요.
빌라도 총독의 성격이 원래 좀 난폭한데, 요즘 특히 기분이 안 좋다고 들었어요.”
“네, 이번 일이 끝나면 카프리 섬에 꼭 같이 가고 싶습니다.”
바라바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루브리아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이 하늘에 있나요?’ 라고 예수 선생님께 물었는데 ‘천국이 하늘에 있으면 새들이 우리보다 빨리 가겠어요’라고 하셨대요.
그분이 비유로 말씀을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
“네, 그러네요. 정말 천국은 어디 있는 걸까요?”
“저는 어디 있는지 알아요. “
“어디 있는데요?”
루브리아가 바라바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곳이 천국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