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서를 마지막까지 꼼꼼히 읽어보던 헤롯이 눈썹을 움찔하며 옆에 있는 왕비에게 물었다.
“예수라니? 세례 요한의 환생이라는 예수 말인가요?”
“아닙니다, 바라바 예수입니다.”
“열성당 수뇌부를 체포했는데도 조직에 별 타격이 없나 보구려.”
“네. 이번 시위가 우리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겁니다.
이쪽으로 오지 않고 빌라도에게 간다고 하니까요.”
“빌라도가 강경하게 진압하려 할 텐데…
그리고 이런 일은 황제께서 승인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잖소.”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의 성사 여부보다는, 이들을 이용하여 빌라도의 콧대를 꺾어야 합니다.
최종 목표는 그를 로마로 소환되게 한 후, 우리와 협력을 잘하는 사람을 총독으로 오게 해야지요.”
헤롯이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야누스가 숙청당한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소. 왕비께서 모든 것을 잘 알아서 진행하시구려.”
“네, 우리 왕실 경호대는 당분간 열성당원의 움직임을 모르는 척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제 오빠 아그립빠가 아직도 칼리굴라 옆에서 우리를 음해하며 아부를 하고 있는데, 그가 귀가 얇고 나이가 어려서 걱정입니다.”
“그가 황제가 되기는 어렵지 않겠소?”
“그건 모르는 일이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께서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셨을 거예요.
나이로 보면 40대의 클라우디우스가 적임이지만, 다리가 불편하고 역사책만 들여다보는 책벌레라 큰일을 감당하실 수 있을지….”
“칼리굴라는 벌써 여러 안 좋은 소문이 있던데….”
헤롯이 얼른 말을 중단했다.
소문이긴 하지만, 칼리굴라는 한번 마음먹은 여자는 꼭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그중에는 사촌들은 물론이고 친동생도 있다는 것이다.
헤롯은 헤로디아도 자기의 사촌임을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
“네, 사실이 아닌 일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 아리송하게 되지요.
티베리우스 황제 폐하도 해괴망측한 소문이 있었지만, 저는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아, 그 수족관 소문 말이지요?”
“네, 카프리섬 별장에 그런 수족관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요.”
늙은 황제가 별장에 큰 수족관을 만들어, 작고 이쁜 물고기와 발가벗긴 어린 소녀들을 같이 넣고, 수영을 즐긴다는 말이 한때 로마에 떠돌았다.
“그 소문은 나도 좀 이상했어요.
근엄하시고 절제를 미덕으로 생각하시는 분께서 그러실 리가 없지요.”
“네, 여하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루브리아를 통해 칼리굴라에게 선물을 속히 보내는 게 좋겠어요.
물론 제가 로마에 가서 그녀와 함께 칼리굴라를 직접 만나야지요.
아직 세상을 모르는 나이에 손에 칼을 잡으면 아주 위험하니까요.”
헤로디아의 말에 헤롯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 없이 웃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헤로디아는 바라바가 제법 청원서를 잘 썼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바라바가 맨정신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는 석청에 미혼약을 타지 않고도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양 볼이 화끈거렸다.
두 모녀가 저녁을 먹으며 며칠 안에 깃발 탈취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갑자기 마나헴이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왜 이렇게 놀래요?
내가 너무 갑자기 올라왔나?”
“어머, 너무 반가워서 그렇지요.
그렇지 않아도 오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레나가 얼른 얼굴 표정을 바꾸고 다시 질문했다.
“성벽 공사는 잘 마무리 지으셨나요?”
“그럼요. 예정보다 며칠 앞당겨서 완공했지요.”
“마나헴 님, 그동안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아요.”
유리가 얼른 콧소리를 섞어서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마나헴 님 시장하실 텐데 드실 것 좀 가지고 올게요.”
“그래요. 종일 마차로 달려왔더니 좀 출출하네.
술도 좀 가지고 와요.”
레나가 방을 나가자 마나헴이 옆으로 앉으며 묵직한 손으로 유리의 손을 덮었다.
“우리 유리 보고 싶어서 내가 일찍 왔는데 유리는 내 생각 별로 안 한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도 생각 많이 했어요.”
“하하, 그랬군. 이번에는 결혼식을 꼭 올려야지.”
유리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지난번 다치신 다리는 괜찮으세요?”
“그럼, 내가 나이는 좀 있지만, 건강은 젊은 청년 못지않아요.
정강이뼈가 도로 붙었다고 하네. 하하.”
“어머, 역시 대단하시네요.”
유리가 슬그머니 손을 빼내며 조금 떨어져 앉았다.
“아까 내가 들어올 때 무슨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놀랬지?”
유리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결혼식에 입을 옷을 상의하고 있었어요.
지난번 사건 이후에는 엄마도, 저도 자주 놀라게 돼요.”
“아, 그렇구나. 그 천벌을 받을 놈들을 빨리 잡아야지.”
“네,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래요.”
“그놈들이 분명히 내부를 잘 아는 놈들이야.
아, 그 후에 누보라는 놈이 또 온 적 있나?”
“키 작고 얼굴 검은 사람 말이지요?
안 온 것 같은데요.”
유리는 마나헴이 누보를 언급하자 가슴이 뜨끔했다.
“음, 그놈이 뭔가를 알 것도 같은데, 어디 숨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
마나헴이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엄마가 음식과 술을 가지고 들어 왔다.
“예루살렘 성전의 성벽 공사가 완공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마나헴 님.”
붉은 포도주를 한 잔씩 따르고 레나가 건배를 제의했다.
“고맙습니다. 두 모녀가 염려해 준 덕택이지요. 하하.”
마나헴은 긴장을 풀려는지 든 잔을 놓지 않고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곧이어 양고기를 다져 넣은 빵을 또 한입에 먹었다.
“천천히 드세요. 식사도 젊은 사람보다 빠르셔요. 호호.”
그가 꾸역꾸역 고기 빵을 삼키면서 레나에게 물었다.
“이제 유월절 전에만 예루살렘에 가면 되니까 시간 여유가 좀 있어요.
결혼식 날을 좋은 날로 좀 잡아 주세요. 유리와 잘 상의하셔서.”
“네. 요 며칠 별자리 좀 보고 곧 알려 드릴게요.”
“그래요. 내가 여기 있으면서 잡을 놈이 또 하나 있는데, 혹시 열성당의 바라바라는 놈의 소식은 못 들었나요?”
레나와 유리가 모두 고개를 저었다.
“흠, 그런 놈도 점성술을 보러 여기에 올 수도 있는데….”
마나헴의 빈 잔에 유리가 다시 술을 가득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