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은 회의를 마치고 누보의 집으로 갔다.
마침 누보는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지붕을 갈대로 덮고 누런 진흙을 쌓아서 만든, 창문도 없는 집이었다.
누보가 손에 잡고 있던 누런 빵을 놓고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우리 집에 웬일이니?”
나발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뭔가 화가 난 것 같았다.
“호텔 로비로 가서 술 한잔하자.”
“어, 그래 가자.” 누보는 어머니에게 금방 다녀온다고 말하고 따라나섰다.
로비에 앉자마자 나발은 포도주를 시켜두 잔을 계속 마셨다.
그의 눈치를 보면서 누보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혹시 급히 피해야 할 일은 아니지?”
나발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치고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도 꾹 참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너무 심했어.”
“지난번에 뭐?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
“너 말고 바라바 형…”
“아니, 왜?”
“너도 알다시피 지난번 마나헴 집에서 은전을 한 부대 가득 가지고 나온 게 누구니? ”
“응, 그건 내가 가지고 나왔지.”
“아니, 그 작전을 누가 성공시켰냐고?”
“아, 그건 당연히 네가 한 거지.”
“그렇지? 근데 나에게는 은전을 줄 생각을 안 해.
너와 유리도 애 많이 썼으니 꼭 줘야 한다고 내가 우겨서 그나마 받게 된 거야.
바라바 형은 줄 생각을 안 해.”
“아, 그랬구나. 고마워.”
나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그나저나 유리는 일 잘하고 있지?”
“그럼. 열심히 잘하고 있어. 곧 깃발을 가지고 나올 것 같아.
근데 깃발이 너무 커서 가지고 나오다가 걸릴 것 같으면 근처에 잘 숨겨 놓는 게 낫겠어.”
“음, 알았어.”
누보는 내일이면 일이 다 끝나고 깃발을 강대상 밑에 숨겨 놓을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며칠 더 보면서 금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면 돈도 가지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깃발을 숨기면 그다음 날부터는 누보와 유리는 잠적해야 한다.
누보는 집에 일찍 가려고 자기 잔에 술도 따르지 않았다.
“여하튼 이번 일을 성공시키면 나에 대한 인식이 더 달라지겠지.
며칠 내에 꼭 성사시켜야 해. 유리에게 내 안부도 전해주고.”
“응, 그렇게 할게” 나발이 포도주를 한잔 더 따라 마시는데 누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나발 동지 여기 왔구나.”
나발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미사엘이었다.
“어, 미사엘 님, 여기는 웬일로….”
“음, 그러지 않아도 나발 동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만났네.
같이 앉아도 될까?”
“네, 그럼요. 이쪽은 제 친구예요.”
누보는 미사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나발에게 어머니가 기다리시니 먼저 가겠다고 하며 바로 나갔다.
미사엘은 아까 회의에서 나발의 언짢은 기색을 눈치챘다.
바라바가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끝까지 사양할 수도 없고 아셀 님이 석방될 때까지만이라도 책임을 맡기로 했다.
숙소인 광장호텔로 돌아와 차나 한잔하려고 내려왔더니 나발의 모습이 보였다.
앞에 앉은 같은 또래의 친구와 부담 없이 술을 하는 것 같아 다가온 것이다.
“나발 동지 술 잘하지?”
“네, 뭐 조금 합니다.”
미사엘이 누보 앞에 놓였던 잔에 포도주를 반쯤 따라 마시고 입을 열었다.
“아까 회의에서 혹시 마음이 상했을까 걱정되었네.
지금 여러 중요한 일을 자네가 많이 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천만에요. 저야 아직 나이도 어리고요.”
나발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모두 어려운 시기니까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나는 물러날 테니,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더 큰 일을 해야지.”
미사엘이 나름대로 나발을 다독거려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우선 깃발 탈취 작전만 성공해도 좋겠습니다.”
미사엘이 나발의 빈 잔에 포도주를 가득 따랐다.
마나헴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거의 다 마무리하였다.
가버나움으로 돌아가기 전, 안나스 제사장의 아들 조나단과 어렵게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마나헴 경호대장님, 다리도 불편하신데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조나단이 포도주 한 잔을 건네며 치하의 말을 했다.
“무슨 말씀을요. 부족한 저를 이렇게 믿고 맡겨 주시니, 안나스 대제사장님과 조나단 제사장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나헴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나헴 님 단도 던지는 솜씨는 다리 아프신 것과 상관없이 여전하겠지요?”
“네, 그럼요. 실은 요즘도 거의 매일 단도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어떤 강도 두목도 추적하고 있다면서요?”
“네, 진작 잡았어야 했는데 제가 여기 오는 바람에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시몬이라는 폭도가 했던 일을 아직도 계속하려는 어리석은 무리가 있는데, 워낙 점조직으로 움직여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폭도들이 또 유대 독립을 떠드는 거 같은데, 세상 돌아가는 걸 그렇게 모르니 참 불쌍하네요.”
“네, 그렇습니다. 대부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입니다.”
마나헴의 말에 조나단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안나스를 빼다 박은 얼굴에 추진력도 강한 그는, 다음 대제사장 1번 순위였다.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 대제사장이 올해 말에 은퇴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조나단이 잠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그들을 좀 가르쳐서 위험하지 않은 길로 인도해 주고 싶네요.”
“아, 네. 참 훌륭하신 생각이고 역시 조나단 제사장님다운 말씀입니다.”
“우리 사두개인은 제사나 행정일이 많으니까 바리새인들 중 명망 있는 분들을 모셔서, 민중들에게 국제 정세 등 세상 돌아가는 교육을 좀 하면 어떨까요?”
“바리새인들을요?”
“네, 그 사람들 중에도 민중 교육에 관심 있고, 유대 민족의 화합과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앞으로 제가 큰일을 맡으면 이런 내부 화합을 위해 힘을 좀 쓰려 합니다.
우선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만나서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다음 단계로 에세네파 분들도 초청해서 유대 민족의 화합의 장을 열어 보려 합니다.
이렇게 3대 종파가 화합하면 극단적인 무력시위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열성당 활동도 점점 줄어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 정말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그런 큰 뜻을 펴실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마나헴은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