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웅 게르마니쿠스
아그리파가 술 한잔에 얼굴이 벌겋게 된 칼리굴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각하, 그 수족관 소문은 사실인가요?”
“인간 수족관?” 칼리굴라가 피식 웃었다.
“네, 엄청나게 큰 수족관에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를 여러 명 발가벗겨 집어넣고 황제께서 같이 수영을 하신다는….
“큰 수족관이 빌라 요비스 궁전 한쪽에 있기는 하지요.
황제께서 오래전 이혼하고 혼자 계시니까 그런 소문이 나는 듯한데 내가 있을 때는 그런 광경은 못 봤어요.
그 양반 평소에 근엄하고 농담도 잘 안 하시잖아요.”
“그래도 모르지요.
심지어는 그런 사실이 소문날까 봐 어린 소녀들을 희롱한 뒤 섬 절벽에서 떨어뜨려 다 죽인다는 말도 있어요.”
“아마 아닐 거요. 술도 별로 많이 안 하시는데….”
“네. 여하튼 여기는 그런 소문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칼리굴라 가 별 대꾸 없이 빈 잔을 들자 아그리파가 얼른 포도주를 가득 따랐다.
이제 그들은 긴 의자에 비스듬히 반쯤 누워서 술과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얼굴이 까만 시녀가 들어와 칼리굴라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소문이라는 것은 어떤 때는 사실보다 무서웠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양아들 게르마니쿠스가 젊은 나이에 이유를 모르는 병으로 죽었을 때도, 황제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로마 전체에 퍼져나갔다.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가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임명하면서, 동시에 다음은 게르마니쿠스라고 미리 순서를 정해 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렇게 되자 자기의 친아들인 드루수스에게 황위를 물려주기 위해, 티베리우스 황제가 게르마니쿠스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티베리우스 황제도 용맹한 장군이었지만 게르마니쿠스야말로 로마시민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전쟁 영웅이었다.
게르만 지역을 점령했다고 해서 이름도 게르마니쿠스라고 고쳐 불렀다.
그는 칼리굴라의 아버지였다.
당시 게르마니쿠스의 독살 용의자로 의심받던 시리아 총독 피소가 재판정에 나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자살했다.
아무런 유언이나 메모도 발견되지 않았다.
소문은 더욱 꼬리를 물었으나 결국 조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철이 든 다음 이런 소문을 전해 들은 칼리굴라는 정말로 황제가 아버지를 독살한 원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증거도 없고 황제의 양아들과 친아들 모두 세상을 떠난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칼리굴라는 당시 그런 증거가 안 나온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황제의 자리가 지금처럼 자신에게 가까이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직접 눈으로 못 본 것을 굳이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늘씬한 시녀의 손길이 그의 허벅다리를 계속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요나단 제사장이 비어 있는 루브리아의 잔에 포도주를 더 따라주며 말했다.
“어느 선지자 말씀 중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 잔 더 하시지요. 하하.”
루브리아가 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지만, 술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조금 전 들은 말이 그녀의 머리를 망치로 때린 듯했다.
천부장은 벌써 자리를 떴고 갑자기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이 아주 무섭게 느껴졌다.
바라바 님이 지금 어디 있는지 천부장이 알고서 막 잡으러 가는 성싶었다.
글로바 선생이 요나단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사장께서 스가랴 선지자 말씀을 아주 잘 적용하네요.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라는 말씀 다음에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우리 요나단 제사장께서 앞으로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시기 바랍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야 어르신들 모시고 앞으로 많이 배워야지요.
알렉산드리아에 계신 필로 선생님도 안녕하시지요?”
“네, 연세가 좀 있으시지만 건강하신 듯합니다.”
선생이 고개를 돌려 루브리아에게 조용히 물었다.
“지난번에 눈이 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이제 다 나았나요?”
루브리아가 대답을 하지 않자 선생이 조금 크게 다시 한번 물었다.
“요즘 눈은 좀 어때요?”
그제야 그녀가 놀란 듯 얼른 대답했다.
“아직 그대로에요. 실은 이번에 눈을 치료받으러 여기 왔어요.”
“아, 그러셨군요. 누가 치료하나요?”
요나단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네, 예수 선생이라고 지금 베다니에 있나 봐요.”
“아, 세례 요한이 죽었다 다시 나타난 사람?”
헤로디아가 약간 술 취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근데 우리 헤롯 전하는 그렇게 믿고 있단다. 호호.
우리 유대교에는 그런 사상은 없어.
옛날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선생이나 인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렇지요? 글로바 선생.”
“네, 왕비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번에는 요나단에게 물었다.
“요나단 제사장도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지요?”
“네. 만난 적은 없지만, 그에 대해 몇 번 들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왕비의 질문에 요나단이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별로 신경 안 쓰셔도 될 겁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아픈 사람들이지요.
예수는 우리 유대 율법을 잘 지키지 않아서 경건한 신앙인들에게 비난받고 있지만, 과격한 행동을 통한 사회 혁신도 별 뜻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민중을 선동하는 듯하지만, 주로 하늘나라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세례 요한이 당한 것을 알고 겁을 먹고 있을 겁니다. 다만….”
“다만 뭐요?”
“그가 하는 말이 참신하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구석이 좀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니고데모 님도 그와 대화를 했는데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헤로디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루브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여하튼 다른 마술사보다 병을 고치는 능력이 뛰어나서 우리 루브리아의 눈을 고쳐주면 참 좋겠어요.”
헤로디아가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 연회장의 중앙에 있는 큰 목욕탕으로 걸어갔다.
옆에서 시녀가 술잔과 갈아입을 옷을 들고 따랐다.
루브리아도 따라가며 왕비에게 말했다.
“왕비님, 저는 이제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응, 그래. 일찍 가서 잘 쉬어.
바라바가 여기 와 있나 보네.”
그녀가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말했다.
왕비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