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디아는 루브리아가 시온 호텔에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녀를 왕실 파티에 초대했다.
헤롯왕이 내일 오니까 왕이 없을 때 예루살렘에 와 있는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서, 자기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술도 한잔하고 싶었다.
산헤드린 의회가 내려다보이는 예루살렘의 헤롯 별궁은 화려했다.
성전을 다시 크게 지으며 왕실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헤롯 대왕이 생전에 가장 큰 공을 들여 만든 건물이었다.
입구에 하얀 대리석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중앙 로비를 지나 파티를 위한 연회장이 바로 나온다.
이오니아식 기둥은 청옥색 돌로 만들어졌고, 중앙 분수대에는 검은 돌로 사자와 독수리를 양쪽에 세워 놓아 그 입에서 온천물이 나오게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로마에서 놀던 대로 왕비가 먼저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들어간다.
포도주 잔을 들고 옆에서 따르는 시녀들과 물에서 나올 때마다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는 시녀가 따로 있었다.
그녀의 파티는 늘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헤롯 궁의 실세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히 빌라도 총독의 부속실장인 칼로스도 초대했다.
아직 총독이 이곳에 오지 않았는데 왜 그가 먼저 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기회에 인맥을 넓히는 것이다.
왕비는 가슴이 깊이 파인 파티복을 입고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루비색 포도주를 몇 잔째 들이키고 있었다.
태양은 아직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왕비님, 늦어서 죄송해요. 조금 전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왔어요.”
루브리아가 헤로디아에게 다가와서 공손히 인사했다.
“천만에, 이렇게 여기서 만나니 내가 고맙지.
루브리아가 지금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데, 자기는 언제봐도 예뻐.”
왕비는 벌써 적당히 마신 술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떤 젊은 남자가 다가와 왕비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왕비 전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아, 우리 젊은 제사장 요나단이시지? 반가워요.”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 당연하지요. 가야바 대제사장은 오늘 바쁘신가요? 아직 안 오신 것 같네.”
“네, 유월절 앞두고 재판이 밀려 있어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왕비님께 말씀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아, 네. 알겠어요. 자, 포도주 한 잔 하세요.”
옆에서 시녀가 얼른 요나단에게 포도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아, 그리고 서로 인사해요. 여기는 내 조카뻘 되는 루브리아에요.”
요나단의 시선이 루브리아를 향했고 잠시 그대로 멈췄다.
“호호, 우리 제사장이 루브리아에게 한눈에 반했네.
그럼 젊은 사람끼리 대화 좀 나누고 있어요. 나는 저쪽으로 잠시 가 볼게요.”
루브리아에게 눈웃음을 보내고 왕비는 건너편에 있는 칼로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칼로스 천부장님.”
칼로스가 왕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프로클라 여사님도 안녕하시지요?”
“네. 평안하십니다.”
“천부장께서 미리 오신 걸 보니까 무슨 중요한 일이 있나 보네요?”
칼로스가 대답을 막 하려는데 궁중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루트를 뜯으며 레코더를 부는 대여섯 명의 젊은 아가씨 연주단이었다.
이제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각자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즐기며 음식을 먹으라는 신호였다.
“자, 나중에 또 얘기 나누고 우선 식사부터 하시지요.”
헤드 테이블에는 왕비와 가야바, 칼로스, 글로바, 루브리아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글로바가 루브리아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누군가 했더니 얼마 전에 만난 분 아닙니까?”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신지요.”
글로바선생은 흰머리만 조금 더 늘어난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럼요. 아가씨 이름이 루브리아였지요?”
“네,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연하지요. 오늘 가말리엘 선생이 바쁘셔서 내가 대신 오기 잘했네요.
이렇게 반가운 사람도 만나고…. 바라바도 잘 있지요?”
“네, 잘 있어요.”
루브리아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왕비가 가야바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옆 테이블에 있는 요나단을 불렀다.
“요나단 님이 여기 앉으세요.
오늘 대제사장께서 못 오실 것 같은데, 어차피 나중에 앉을 자리니까요. 호호.”
그녀는 안나스가 요나단을 다음 순서로 생각한 기억이 났다.
“아닙니다. 늦게라도 오실 겁니다.”
“괜찮아요. 나중에 오면 그때 옮기세요.
그래야 우리 아름다운 루브리아와 대화를 계속 나눌 수 있지요. 호호.”
요나단이 얼굴이 붉어지며 루브리아 옆자리에 앉았다.
악사들이 음악을 계속 연주했고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선 창자를 삭혀서 만든 소스를 뿌린 양상추 에피타이저가 식욕을 자극했다.
연한 노란색의 백포도주는 가벼운 꽃향기가 혀 끝에 남아돌았다.
곧이어 나온 생선찜 요리는 바로 바라바와 자주 가던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다.
지금 바라바는 어디에 있는지... 어제 본, 수염 붙인 그의 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내일 사라 재판이 잘 끝나고 베다니에 가서 눈을 고치면 모든 어려움이 지나간다.
예수 선생을 무조건 믿는 믿음만 있으면 눈이 낫는다고 했다.
“루브리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옆에 앉은 요나단 님께 포도주 한잔 권해 드려. 앞으로 유대의 대제사장이 되실 분이야.”
루브리아가 잔잔한 미소를 지며 포도주를 그의 잔에 따랐다.
“영광입니다. 루브리아 아가씨. 저도 한 잔 드리지요.”
요나단이 그녀의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을 보며 왕비가 계속 말했다.
“루브리아는 내가 곧 로마로 데리고 가서 중매를 설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전에 데이트 신청을 해야 되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호호.”
요나단이 왕비를 향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데이트는 비밀로 해야 해요.
미래의 대제사장께서 로마 여인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면 아무래도 안 좋겠지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