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리아와 사라의 눈이 마주쳤다.
“두 분도 가낫세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 보네요?”
살로메의 말에 사라가 즉시 대답했다.
“네, 그 사람은 안 돼요. 안 좋은 사람이에요.”
“어머, 그래요?”
살로메가 당황하며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없어. 사라야.
어쨌든 능력은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활용하면 되는 거지.”
루브리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더구나 내가 알기로는 지금 예수 선생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이런 때는 오히려 그런 사람이 필요할지도 몰라.”
“우리 선생님에 대해 잘 아시나 보네요?”
요한이 물었다.
“예루살렘 내려오기 전에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올라가는 선생에 대한 보고서를 봤어요.
이번 유월절에 잔뜩 벼르고 있더군요. 상당히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네, 역시 그렇군요. 그리고 내일 선생님 만나시면 혹시라도 변호사에 대한 말씀은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저희가 말씀 안 드리고 하는 일이에요.”
요한이 사라를 보며 당부했다.
“네, 그럼요. 내일 갈 때 우리가 가지고 온 유월절 음식도 같이 가지고 갈게요.
선생님과 제자분들을 위해 준비해 왔어요.”
“어머, 어떤 음식을 가지고 오셨나요?”
“양의 정강이뼈, 삶은 달걀, 쓴 나물, 소금을 많이 가지고 왔어요.
또 아주 좋은 포도주도 여러 병 가지고 왔지요.”
“네,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는 줄도 모르고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요한이 고개를 숙이며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내일 오전에 우리가 재판이 있는데 금방 안 끝나면 혹시 모레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네, 걱정 마세요. 선생님만 보시면 금방 나으실 거예요.
얼마 전에도 바디메오라는 사람의 눈을 완전히 고쳐주셨어요.”
“우리가 눈을 고치러 가는 것을 선생님이 알고 계시나요?”
사라가 요한에게 물었다.
“아직 말씀은 안 드렸어요.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같이 가시기만 하면 만나실 수 있어요.”
“아, 네. 바디메오라는 사람은 누군가요?”
“그는 여리고에 사는 소경 거지였어요.
우리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선생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길가에 앉았다가 소리를 질렀어요.”
“그래요? 뭐라고 그랬나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지르는 거예요.
우리 제자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어도 더 크게 소리를 질러서 선생님이 들으셨어요.
그를 부르셔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고, 그가 보기를 원한다고 하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며 눈을 고쳐주셨어요.
그 사람은 거기서 바로 선생님을 따르기 시작해 지금 우리와 같이 있어요.”
“와, 대단하시네요!”
사라의 탄성이었다.
“다윗 왕은 적어도 천년 전의 사람인데 어떻게 예수 선생이 그의 자손인지 알았나요?”
루브리아의 갑작스런 질문에 요한이 조금 당황했다.
“네, 처음에는 저도 잘 몰랐는데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아요.
제자 중 한두 사람은 선생님의 족보를 적어 놓은 것도 있어요.”
“아, 그렇군요. 가낫세 변호사는 언제 만날 건가요?”
사라가 질문했다.
“실은 지금이라도 가서 만나야 합니다. 저희를 기다릴 거예요.”
요한과 살로메가 변호사 고용에 필요한 돈의 액수를 말했다.
지하 터널 벽의 횃불이 환하게 밝혀주는 길을 50걸음쯤 계속 걸으니 저 앞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습하고 찬 공기가 미사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단 위로 올라가니 바로 회당 옆의 어느 집 1층 거실로 나왔다.
집안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듯했다.
복도 쪽으로 걸어가니 방이 2개 있었다.
그중 하나에 나발이 갇혀 있을 것이다.
큰방은 열려 있고 작은 방이 밖으로 빗장이 채워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나발 씨!”
미사엘이 문을 두드리며 나발을 불렀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는 순간, “나발 씨!”
누가 뒤에서 또 나발을 불렀다.
미사엘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나뭇가지 위에서 하얀 앵무새가 매달려 그를 보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데 안에서 소리가 났다.
“누구십니까?” 나발의 목소리였다.
“나 미사엘이오.”
빗장을 빼고 문을 열었다.
“미사엘 님, 여기를 어떻게 오셨나요?”
나발이 얼른 방에서 나오지 않고 물었다.
회당에 들어와 우연히 비밀통로를 나오는 사람들을 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이 바라바 님이 아직 안 잡혔다고 하더군.”
“아, 그래요. 정말 다행입니다.”
나발이 얼른 말했다.
“자네가 바라바 님이 있는 곳을 거짓으로 가르쳐 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물론이지요. 그럼 어서 나가지요.”
“어서 나가지요.”
앵무새가 다시 말했다.
두 사람이 서둘러 다시 터널을 지나 빠져나왔다.
“아셀 단장님도 만났어요.”
“단장님은 무사하신가?”
“네, 아주 건강해 보이셨어요. 그런데….”
나발이 말꼬리를 흐렸다.
“자세한 말씀은 광장호텔에 가서 드릴게요.
지금 거기 누가 있나요?”
“아까 나올 때 카잔 님과 누보가 있었네.
유리라는 여자도 온 것 같던데….”
나발은 유리를 만나기 싫었지만, 그냥 호텔로 갔다.
호텔에서 일하는 그의 친구가 나발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사히 나왔구나. 걱정 많이 했었어.”
“응, 고마워. 누보는 어디 있니?”
“오늘 아침에 굉장히 바쁘던데…. 아직 안 들어왔어.”
나발은 미사엘과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아셀 단장님이 마음이 변하신 듯해요.
나에게 자꾸 바라바 님이 있는 곳을 로마 천부장에게 말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말을 안 하면 저는 물론 아셀 단장님의 신상에도 해가 될 것 같아서 가짜로 말했어요.”
“잘했네. 아셀 단장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저도 그제 만나고 못 만났는데, 시내 어디 안가에 계신 것 같아요.
아주 건강해 보이셨어요. 살도 많이 찌시고….
앞으로 산헤드린 의회에 의원으로 진출하실 계획이라고 하셨어요.”
“산헤드린 의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
“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요즘 그리스 말을 열심히 공부하신대요.”
나발의 말에 미사엘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