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와 카잔이 식당으로 내려가니 유리가 빵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설명을 했고 우선 이사부터 하기로 했어요.”
유리가 차분하게 말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여자들은 울기는 하지만 더 침착했다.
누보도 아침을 많이 안 먹어서 다시 빵을 시켰다.
카잔이 유리에게 조금 전 앞집 사람이 장사하던 시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을 찾으면 되겠네요.”
유리가 희망 섞인 목소리로 누보에게 말했다.
“네, 그래야지요.”
“그리고 어머니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은 좀 어려워도 나중에 큰 인물이 돼서 많은 사람을 거느린대요.”
누보는 누룩이 안 들어가서 퍽퍽한 무교병을 먹다가 감격했다.
울컥한 마음에 빵을 더 천천히 씹어 넘겼다.
유리가 계속 말했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곧 풀려날 거라고 했어요.”
나발에 대한 말이었다.
누보는 방금 넘긴 빵이 체했지 싶었다.
“찾고 있는 사람 이름은 뭐예요?
어머니에게 물어봐야지.”
누보가 대답이 없자 카잔이 말했다.
“아마 ‘아칸’이라고 했지?”
누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앞집 사는 사람이라고 했지요?
집에는 가 보셨나요?”
“지금 집에 있을 리가 없겠지.
장사도 안 나왔는데…. 이미 텅 비어 있을 거야.
유리 씨는 이사는 언제 어디로 갈 건가?
경비가 모자라면 내가 좀 도와줄 수 있는데….”
카잔이 누보를 슬쩍 보며 유리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당장 이사 갈 경비는 있어요.
그 아칸을 잡은 후에 좋은 집으로 옮기면 돼요.
내일 아침 일단 그리스 사람들 많이 사는 윗동네로 가려고 해요.
제가 그리스 말을 하니까요.
마나헴도 그쪽으로 올 일은 없겠지요.”
유리가 마지막 빵을 다 먹으며 누보에게 물었다.
“오반이 카잔 님 얼굴을 아나요?”
“글쎄… 카잔 형님이 우르소와 싸울 때, 오반은 벌써 나를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얼굴을 모를 거예요. 왜요?”
“내일 이사할 때 혹시라도 오반이 눈치채고 막으면 그를 잡아놔야 하니까요.”
“음, 그렇군. 그럼 내가 내일 아침 일찍 집 앞에 있다가 만약에 나오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가면 되겠네.”
“네, 그래 주시면 고맙겠어요. 카잔 님 신세를 계속 지네요.”
“신세는 무슨, 앞으로 일들이 빨리 잘 되어야지.”
유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지난번 우리 어머니 만나보셨지요?”
“그럼, 그때 급히 오시지 않았으면 누보네 집에서 밥 먹다가 잡힐 뻔 했잖아.”
“우리 어머니 아직 이쁘지요? 호호.”
“그래, 미인이시던데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
“이제 막 마흔이세요. 카잔 님과 이사 끝나고 식사 한 번 같이해요.”
“하하, 그래요. 나야 영광이지.”
유리는 누보의 마음은 전혀 모른 채 카잔과 자기 어머니의 만남을 이 와중에 주선하고 있었다.
누보는 빵을 두 개 남긴 채 어머니에게 갖다주려 수건에 돌돌 말았다.
아칸을 찾아서 많은 돈을 유리에게 준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가 이 빵을 좋아하셔서 딱딱해지기 전에 올라가서 드릴게요.
두 분이 얘기 좀 더하세요. 조금 있다 내려올게요.”
누보가 고개를 숙이고 식당을 나갔다.
“누보 어디 아파요?”
유리가 누보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지금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
카잔은 누보의 심경을 그녀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요한과 살로메는 오전 내내 풀려나지 못했다.
가낫세 변호사가 아침 재판에 바로 가느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서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기다렸을 유타나는 물론,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을 아는 베다니의 시몬과 유다가 돌아오지 않는 우리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변호사 님이 점심때는 연락이 되겠지.
오후에는 풀려날 테니 바로 시온 호텔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네, 그럼요. 그분들이 뭐 어디 가지는 않겠지요.”
“여하튼 예수 선생이 이번 유월절에 뭔가 큰일을 하긴 하실 거야.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가낫세 변호사가 도움이 된다면 나중에 네 형과 네가 선생의 좌우에서 사랑받는 측근이 될 거다.”
“지금도 선생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눈길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피가 섞여서 그러시겠지요.”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선생의 친동생인 야곱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니?”
“야곱 형은 선생님을 아직 메시아로 믿고 따르지는 않으니까요.”
“응, 그렇기는 하지.”
살로메가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그 형이 선생님의 편에 서면 큰 힘이 될 거예요.
어려서부터 착하고 성실한 분이니까요.”
“그래, 그럴 때가 오겠지.”
“근데 선생님이 저를 사랑도 하시지만 다른 제자들과는 좀 다르게 생각하시는 듯해요.”
“그래, 어떻게?”
살로메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제가 어떤 때 선생님의 말씀을 잘 이해 못 하면 인자하게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레의 아들 요한아, 나중에 나이를 많이 먹고 어느 섬에서 외로이 있을 때, 머리 위에서 하늘이 열리고 마음으로 빛이 비추면 그때는 알 수 있게 되리라.’”
“그게 무슨 뜻이니? 다른 제자들에게는 그런 말씀을 안 하시고?”
“네. 다른 제자들에게는 무슨 섬 이야기는 안 하세요.
아마 궁금하게 생각하는 제자들이 나중에 또 물어볼 거예요.”
요한의 말이 끝나자 문이 열리며 어제 만난 백부장이 들어왔다.
“잘 쉬셨어요? 백부장 알렉스입니다.
가낫세 변호사께서 살로메 님이 그의 고객이라고 확인해 주셨어요.
부득이한 조치였으니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제 그렇게 말씀 드렸잖아요.
이런 일 하시려면 사람 얼굴도 잘 보셔야지요.
우리 요한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큰일을 하게 될 거예요.
또 어느 섬에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