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는 가말리엘 선생을 다시 방문하여 그와 마주 앉았다.
“선생님을 로고스 클럽의 회장으로 모시기로 했다니까, 요나단 제사장도 부회장직을 흔쾌히 맡겠다고 하였습니다.”
“허허, 그게 아니고 니고데모 의원이 앞으로 잘 할 것 같으니까 그랬겠지요.”
선생이 기분 좋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계파를 초월하여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정신은 어느 시대나 절실히 필요합니다.
계파 간 평화 없으면 나라에 평화 없고 나라에 평화 없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하니까요.”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에세네파에서 나올 부회장은 정해졌나요?”
마른 얼굴에 하얀 수염이 한 뼘은 내려와 있는 노인이지만 선생의 기억력은 좋았다.
“네, 선생님 말씀대로 부회장을 에세네파에서 한 분 모셔야 하는데 아직 적절한 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음, 에세네파에서 찾기가 쉽지 않을 거요.
그럼 일단은 공석으로 두고 로고스 클럽의 실무를 해 나갈 총무를 선임하도록 합시다.
누가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요?”
가말리엘이 니고데모의 눈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 아니 회장님께서 저를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니고데모도 즉시 화답했다.
가말리엘 선생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의 특유한 부드러움이다.
누구도 그와 시비를 걸고 싸울 수 없을 듯했다.
아직 좀 어린 사람들은 자기의 소신이 분명한 것을 강하다고 생각하고 선생 같은 분을 마음이 약하다고 착각한다.
싸워서 이기는 사람보다 누구도 싸울 수 없는 사람이 더 강한 것을 선생을 보며 배운다.
“니고데모 총무께서 앞으로 요나단 제사장과 함께 로고스 클럽을 크게 발전시키기 바랍니다.
진리의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합니다.
십계명에는 질투의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으로 나와 있지만 이제 우리의 시대에는 진리의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진리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물론 율법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시각에서 본 규정들은 시대적 요청에 의해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고스는 세계 안에 내재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고, 손으로 잡을 수 없으나 가장 귀한 하나님의 창조 정신이 진리, 로고스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유대인만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란 말을 했는데 그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지요.
유대인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그 축복을 거두고 징계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에요."
“네. 그렇군요.”
“모세가 제시한 방향만 고집하는 사두개파, 거기에 영혼의 개념을 추가한 우리 바리새파, 또 정결한 공동생활을 강조하는 에세네파, 모두가 서로 자기네만 옳다고 우기면, 앞으로 유대인은 선택된 백성에서 제외되는 거지요.”
“네, 알겠습니다. 유대교 분파는 아니지만 열성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무력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200년 전 마카비 장군의 위업을 따라하고 싶은 열망에서 그리하는데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에요.
당시 유대를 점령했던 시리아의 셀루키스 왕조는 국력이 쇠퇴하여 떨어지는 해였지요.
악독한 안티오크스 4세가 파르티아와 전쟁 중 사망한 후 내전까지 발생하여 유대 땅에 신경 쓸 처지가 못 되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지요.
물론 마카비 형제가 오래 투쟁하며 대단히 큰 공헌을 하였지만, 국제 정세의 덕을 본 거예요.
지금 로마는 막 솟아나는 해인데 이들과 무력으로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행위지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니고데모가 선생의 말이 끝나자 질문했다.
“네... 그러면 우리가 열성당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줘야 하나요?
그들은 지금도 200년 전처럼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독립시켜 줄 것으로 믿고 로마군을 몰아내기 위해 창과 칼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곧 메시아가 나타나서 마카비 장군이나 다윗 왕 같은 능력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말리엘 선생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먼저 나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들의 애국심과 용기는 평가해 줄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잘못을 범하게 돼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생각하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거지요.
성공하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지요.
독립도 좋지만 많은 사람의 생명을 가벼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유대교 교리상의 차이, 즉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천사의 존재나 영혼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은 사실 큰 차이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모세가 쓴 글에 의하면,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든 후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과 이브가 생명을 얻었는데 이때 넣은 생기, 생명의 기운은 기체라고 볼 수 있지요.
즉 기체가 물질이라면 사두개파의 주장도 일리 있어요.
물질은 영원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 바리새파는 물질이 아닌 영혼과 천사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교리가 더 진리에 가깝다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사람이 믿게 될 거예요.”
“아, 네. 그러니까 로고스 클럽에서 이런 식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대화의 폭을 넓히면 되겠군요.
제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가말리엘 선생이 빙긋이 웃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시간도 없었어요.
하나님이 시간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하나님 안에 있는 거지요.
태초에 ‘빛이 있으라’라고 하신 후부터 시간이 가고 있는 거예요.
빛도 물질이라면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까요.
그러니까 그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되겠지요.”
“네, 빛이 시간이고 시간도 물질이라는 말씀은 처음 들었습니다.”
“약 600년 전부터 그리스에서 위대한 자연 철학자들이 나왔지요.
탈레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선생 등이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사는 이 땅도 평평하지 않고 공처럼 둥글다고 주장했지요.”
“아, 그럴 수가 있나요…. 그분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나요?”
“이름이 달랐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알았겠지요.
여호와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여호와나 엘로힘이나 또 다른 이름이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이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인데요.”
니고데모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