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사라 재판에 가봐야겠어.”
바라바는 밤새 거의 잠을 못 잤다.
몸은 종일 쿰란 골짜기를 오르내리느라 고단했지만, 갑자기 바뀐 도망자 신세가 적응이 안 되었다.
눈이 감길만하면 헤스론의 코 고는 소리가 잠을 방해했다.
천둥소리와 비 오는 소리를 코와 입으로 교대하며 내었는데, 어찌나 소리가 큰지 옆방에서 벽을 여러 번 두드렸다.
그래도 요지부동이라 옆방 사람에게 미안했다.
“사라 재판 가서 청중석 사람들에 섞여 있으면 괜찮겠지?”
바라바의 희망 섞인 질문에 아몬이 조금 전 눈을 뜬 헤스론을 보며 대답했다.
“음,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정 가겠다면 변장을 좀 하고 가지. 내가 변장 도구가 있으니까.”
“그래, 그게 좋겠다. 우선 나가서 아침부터 먹자.
어제 저녁이 시원치 않더니 자면서 계속 먹는 꿈만 꾸었네.”
헤스론의 말에 바라바가 방문을 나서는데 옆방에서도 마침 세 사람이 나왔다.
그중에 한 사람이 마침 잘 만났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보쇼.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렇게 코를 크게 골아서 옆방에서까지 잠을 못 자게 합니까?”
뒤따라 나오며 그 소리를 들은 헤스론이 대답했다.
“내가 그랬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오.”
그를 본 옆방 사람이 친절하게 말했다.
“아,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아침부터 야곱 여관은 성전 순례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중에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그것들을 여관 마당에 묶어 놓는다.
짐승들이 배가 고픈지 아침부터 울어대고 있었다.
여관 카운터에서는 방이 없다는 종업원에게, 예약한 지가 언젠데 갑자기 방이 없냐며 항의하는 손님들의 고성이 들렸다.
이집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도 보였고, 큰 귀걸이를 철렁거리는 페니키아 여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식당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로벤이 들어왔다.
“편히 쉬셨습니까? 아몬 님.”
그가 옆에 앉으며 인사를 했다.
“아침 일찍 왔구먼. 잠자리가 불편했을 텐데 괜찮았나?”
“그럼요. 감람산이 공기도 좋고 천막이 편해서 괜찮습니다.
다른 동료들도 모두 오랜만에 소풍 온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아침은 추울 텐데, 여하튼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그런데 저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여기를 보며 쑥덕거리는데요.”
아몬이 긴장해서 슬쩍 몸을 비틀어 뒤를 보았다.
“옆방에서 나온 사람들이네.
헤스론에게 한이 많이 맺혔으니까. 하하.”
로벤이 그게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아몬을 바라보았다.
“아, 인사하게. 여기는 바라바 님이고 저쪽은 헤스론 님이네.”
로벤이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머리를 숙였고 아몬의 말이 계속 되었다.
"오늘 산헤드린 재판소에 열리는 재판 중, 루고라는 사람에 대한 재판이 언제 열리는지 좀 알아볼 수 있겠나?”
"네. 알겠습니다. 재판정에 오늘 일정이 붙어 있을 겁니다.
지금 가 볼까요?”
로벤이 아몬을 보며 물었다.
바라바가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아 요새 위에서 아침 해를 맞으며 성전을 내려다보니 어젯밤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어두운 성전은 신화의 속살을 드러내지만, 밝은 성전은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했다.
요한은 어제 저녁을 못 먹었으나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 빨리 가낫세 변호사와 연락이 되어서 풀려나야 한다.
그들이 잡으려는 바라바가 어제 저녁 늦게 호텔에 나타났을지도 궁금했다.
밖으로 잠긴 문을 세게 두드리니 복도를 경비하던 군인이 다가와서 작은 식구통을 열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곧 아침 식사를 가지고 올 것이오.”
“식사보다도 어제 만난 천부장님을 빨리 만나게 해 주시오.
우리의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사람과 연락을 급히 해야 합니다.”
“알겠소. 좀 기다리시오.”
성의 없는 대답과 함께 식구통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살로메가 옆에서 말했다.
“어제저녁도 못 먹었는데 아침은 먹어야지.
가낫세 변호사와 연락만 되면 곧 풀려날 거다.”
요한은 다시 창문으로 가서 성전을 내려다보았다.
작년 유월절에 예수 선생과 왔을 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 선생은 제자들에게 성전이 얼마 후에 무너질 것이라는 이해 못 할 말씀을 하셨다.
누가 들을까 걱정되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던 환전상들의 좌판을 선생이 직접 엎어버리려고 하셨다.
전혀 평소의 선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만약 선생이 며칠 후에도 또 그러면 이번에는 좀 위험할 것 같았다.
아침부터 성전을 경호하는 분위기가 예년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이 선생을 그렇게 화가 나게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요한의 눈에 성전은 여전히 웅장하고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솔로몬 왕의 성전이 무너졌던 것은 600년도 더 된 오래전의 일이었다.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의 일인데, 그는 21살 때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이후 시드기야가 공물을 바치지 않자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함락해 버렸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무시하고 예루살렘을 탈출하다가 바빌론 군사에게 붙잡혔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두 어린 아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죽이라 명령했다.
이것이 시드기야 왕이 살아 있으면서 두 눈으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그들이 곧 왕의 눈을 파내어 장님을 만든 후 사슬로 묶은 채 바빌론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성전은 약 50년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대인들의 귀국을 허용한 후 재건되었다.
이렇게 건축된 제2성전을 헤롯 대왕이 더욱 크게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작년만 해도 외벽공사는 다 끝나지 않았는데 지금 여기서 내려다보니 모두 완벽하게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식구통이 덜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물과 빵 몇 조각이 들어왔다.
“여기에 우리를 보증해 줄 변호사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으니 빨리 연락해 주세요.
그분은 로마 시민권자니까 우리가 억울하게 갇혀 있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살로메가 음식을 넣어 준 사람에게 큰소리로 외치며 쪽지를 전했다.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아직 윗분들이 안 나오셨어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상냥해졌다.
“가낫세 변호사가 로마 시민권자인가요?”
요한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나야 모르지. 로마 병졸은 그렇게 얘기해야 신경을 쓰는 법이니까.”
살로메가 빵 하나를 요한에게 먼저 먹으라고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