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백부장과 헤제키아는 시온 호텔 로비로 서둘러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 로비는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렉스의 굳은 얼굴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 헤제키아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불을 켜고 보았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고, 바라바 비슷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그 사이에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있나 생각하여 식당을 한 바퀴 돌아 봤으나, 음식 냄새만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아무래도 그 사이에 왔다 갔거나, 나발이 거짓 정보를 준 성싶었다.
로비로 돌아와서 다시 둘러보니, 입구 한쪽 구석에 아까부터 혼자 앉아 있는 얼굴이 까만 여자가 신경이 쓰였다.
분명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이다.
“알렉스 백부장님, 저기 저 구석에 앉아 있는 얼굴이 까만 여자가 좀 수상해 보입니다.
제가 가서 좀 알아보겠습니다.”
“왜 수상해 보이는데?” 알렉스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이 호텔에 얼굴이 까만 여자가 투숙한다는 게 좀 이상하고요, 아까부터 초조하게 누구를 기다리는 모습이, 혹시 바라바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렉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제키아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누구를 기다리시나요?”
유타나는 또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 좀 짜증이 났다.
배에서는 아까부터 꼬르륵 소리도 나고 있었다.
큰 덩치에 힘깨나 쓰게 생긴 남자였다.
“왜 그러시나요?” 그녀가 쌀쌀하게 말했다.
“이 호텔 투숙객입니까?”
헤제키아는 여자의 질문을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그게 댁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그녀가 불쾌한 듯 반문했다.
여자의 반응에 약간 당황한 헤제키아는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빌라도 총독 각하의 부속실 비밀요원이요.
여기서 수상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신원이 확실치 않으면 따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헤제키아가 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
“그러니 본인의 이름과 이 호텔 어느 방에 묵고 있는지 사실대로 대시오.”
그제야 얼굴이 까만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싶었으나 곧 헤제키아에게 물었다.
“댁이 부속실 비밀요원이라는 증거를 먼저 보여주세요.”
당찬 여자의 반응에 헤제키아는 로비 저쪽의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서 있는 로마 분이 부속실 백부장이오.”
“흥, 겉으로 봐서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백부장 옷도 안 입고 나이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그리고 댁은 유대인 같은데 총독 부속실에 유대인이 있나요?”
만만치 않은 반문에 헤제키아는 내심 화가 났다.
“흠, 잠깐 여기 이대로 꼼짝 말고 있어요.”
알렉스에게 급히 건너온 헤제키아가, 역시 수상한 여자니까 붙잡아 가서 조사해 보자고 했다.
알레스가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나는 총독 각하 부속실 백부장 알렉스라고 합니다. 여기서 누구를 기다리시나요?”
알렉스가 부속실에서 발행한 신분증을 보여주며 물었다.
여자가 신분증을 자세히 본 후 천천히 말했다.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의사 선생을요? 이 호텔에 있는 어느 분이 아픈가요?”
“네.”
“그 사람이 누구고 어느 방에 있나요?”
여자가 대답을 안 하자 알렉스가 눈짓을 했다.
옆에 사복 차림으로 서 있던 부속실 요원 한 명이 밧줄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잠깐, 그 여자에게 손대지 마시오.”
어느새 맥슨 백부장이 유타나의 옆으로 다가와 밧줄을 들고 있는 사람을 저지했다.
유타나의 입에서 ‘휴’하는 한숨 소리가 나왔다.
백부장 복장을 한 맥슨이 알렉스를 따로 불러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인 후 유타나에게 와서 정중히 말했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실례했습니다.”
알렉스를 따라 로비 건너편으로 간 헤제키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저 여자가 누군가요?”
“음, 얼굴색이 다르다고 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 앞으로는 조심하시오.”
헤제키아는 오늘은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로벤이 야곱 여관으로 돌아와 아몬을 만났다.
“유타나를 만나서 아몬 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오, 수고했네. 금방 찾을 수 있었나?”
“그럼요. 호텔 로비가 붐볐지만 그런 얼굴을 한 사람은 그 여자밖에 없었어요.”
“음, 혹시 로비에 로마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나 경호원들은 없었나?”
“네, 그런 사람들은 제가 갔을 때는 전혀 안 보였어요.”
“그래, 수고 많았네. 그럼 내일 또 만나세.”
방으로 돌아온 아몬이 바라바에게 로벤의 말을 전했다.
“나발이 배신할 리가 없어. 우리가 지나친 걱정을 한 것 같아.”
헤스론이 그 보라는 듯이 유쾌하게 말했다.
바라바는 일단 루브리아와 연락이 돼서 마음이 놓였다.
내일 사라의 재판에서, 멀리서라도 루브리아와 사라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래도 안심하면 안 될 것 같아.
유월절을 앞두고 경호가 삼엄하고 불심검문도 많아.”
아몬의 신중한 목소리였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난 이제 좀 자야겠네.”
헤스론이 작은 방의 오른쪽 끝으로 길게 누우며 말했다.
보통 때는 한 사람이 자는 방에 세 명이 들어와 있다.
바로 누우면 어깨가 서로 부딪쳐서 중간에 있는 사람은 거꾸로 자야 한다.
손님으로 꽉 찬 여관에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방을 못 얻어 실랑이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몬이 중간에 거꾸로 누우면서, 피곤할 텐데 좀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의논하자고 했다.
곧 헤스론의 코 고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작은 창문으로 예루살렘의 달빛이 뽀얗게 들어왔다.
바라바는 내일 재판과 그 후에 루브리아의 눈 치료가 잘 되면 하루속히 아몬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발이 이런 나의 생각을 읽고 마음이 흔들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배신을 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그의 눈으로 볼 때는 내가 먼저 배신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발을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쪼록 앞으로 며칠을 잘 넘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바라바는 이렇게 급할 때만 기도해도 되는 건지 걱정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