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리아는 마차 안에서 하얀 수건을 눈에 대고,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있었다.
눈동자에 파란색이 비친다는 말을 듣고 놀란 가슴은 좀 진정이 되었다.
어차피 곧 예수 선생을 만날 테고,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도 고치셨다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시야도 처음에는 당황해서 많이 안 보이는 것 같았으나, 아직 큰 차이는 없는 듯싶었다.
“선생님, 아까 말씀하신 파란 눈 증상은 한번 생기면 대개 얼마 만에 시력을 잃게 되나요?”
루브리아가 남의 말 하듯이 물었다.
“음,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지요.”
“그래도 대개 평균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일주일이랄지, 한 달이랄지”
루브리아가 또 물었다.
“네… 전혀 이상이 없다가 갑자기 생기는 사람은 며칠 만에도 실명을 하는데 아가씨의 경우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호텔에 가셔서 뜨거운 수건으로 마사지하시면 적어도 1주일 이상은 문제없을 거예요.
예수 선생은 모레 만나기로 하셨지요?”
선생이 사라를 보며 물었다.
“네. 내일 제 재판 끝나고…. 아, 그냥 내일 예수 선생을 만나러 가세요.”
사라가 울어서 빨개진 눈을 닦으며 탈레스에게 말했다.
“아니야, 내일은 재판에서 꼭 이겨야지. 모레 가도 늦지 않아.”
루브리아의 작은 목소리에 사라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울먹였다.
“사라야. 선생님 포도 좀 드려.
아주 맛있는 포도를 가지고 왔어요.
포도주도 있는데 그건 눈 다 낫고 건배하기로 해요.”
사라가 과일 바구니를 열어서 포도를 꺼냈다.
화려한 무늬의 은빛 쟁반에 굵은 포도알이 탐스럽게 담겨있었다.
선생이 한 알을 먹어보고 말했다.
“정말 맛있는 포도네요. 아가씨도 드세요.”
“저는 조금 더 있다가 먹을게요. 사라도 얼른 먹어.”
사라가 억지로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었다.
“음, 얼마 전에 유타나가 예수 선생이 하신 말씀이라며 한 말이 있었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포도나무고 아버지는 농부시고 우리는 거기 붙어 있는 가지라고….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떠나면 안 된다고….’
뭐 이런 말씀이신데, 이번에 눈이 나으면 정말 그를 포도나무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상하게 그 말씀이 생각나네….”
“네, 거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겠지요?”
사라가 포도를 삼키며 물었다.
“응, 유대인의 하나님, 아니 예수 선생의 하나님이겠지. 같은 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차는 속력을 내고 있었고 예루살렘이 가까워지면서 순례 행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이나 염소를 끌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들것에 실려 오는 사람도 있었다.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은 사람도 보이고, 해맑은 눈동자의 어린아이도 부모를 따라 먼지 길을 걷고 있었다.
사라는 저 사람들도 무언가 간절한 소원을 가슴에 품고 성전으로 오고 있을 것이고, 마차를 타고 가는 우리를 부러워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 그리고 며칠 후에 또 어떨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사라야, 내 가방에서 상아색 목도리 좀 꺼내줘.”
“네. 언니. 추우신가요?”
“아니, 눈에 댄 하얀 수건이 좀 찬 것 같아서….”
루브리아는 부드러운 캐시미어 목도리를 눈에 대니 따스한 느낌이 들면서 이 목도리를 하고 있을 바라바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마음이 푸근해지며 좀 자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누보 놈은 식사를 하다가 치우지도 못하고 급히 피했다.
식탁에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누보가 어머니와 같이 사니까 또 한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 시각에 누보에게 알려서 도망가게 했을까.
유리와 레나는 마나헴이 집을 떠날 때 있었고 돌아와서도 있었다.
오반이나 우르소가 누보에게 미리 알렸을 리도 없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데 여하튼 누보 놈, 참 운도 좋다.
예루살렘 가는 것을 은밀히 하루 더 연기하고, 누보 집에 시카리 암살단 몇 명을 배치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보 놈을 못 잡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 유월절만 지나면 안나스 제사장님이 정식으로 승진을 시켜주실 것이다.
그리고 바로 돌아와서 유리를 신부로 맞이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우르소는 한눈을 가리고도 마차를 잘 몰고 있었다.
주위에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는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마차 한 대가 마나헴의 마차를 빠르게 추월해 나갔다.
두 마리의 하얀 말이 몰고 있는 고급스런 마차였다.
먼지가 날려서 수건으로 코를 가리고 있는데 또 한 대가 그 마차를 따라가듯이 속력을 내며 지나갔다.
앞의 마차를 호위하는 듯한데 누군가 지체 높은 사람이 탄 마차인 성싶었다.
자신도 이대로 잘 나가면 몇 년 안에 호위무사가 뒤에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안나스 제사장님께 더 잘 보여야 하는데, 이번에도 바라바를 잡기는 커녕 근처에도 못 간 생각을 하니 다시 화가 슬슬 났다.
바라바를 잡으려다 광장호텔 2층에서 뛰어내리며 무릎을 다친 생각도 나고, 자다가 괴한들에게 봉변을 당하며 다리가 부러진 생각도 났다.
부러진 정강이는 거의 다 나았는데 그때 깨진 무릎은 아직도 목발을 짚어야 편했다.
마차가 속력을 줄이고 서는 것을 보니 예루살렘 외곽 성문에 다다른 것 같았다.
여기를 통과하려면 일반 순례객들은 모두 *미크바 물통에 몸을 담그는 정결 의식을 거쳐야 한다.
성문의 경호는 왕실 경호대가 서고 있었다.
그들은 마나헴이 보여주는 신분증을 보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다.
하루를 지체했기 때문에 혹시 안나스 제사장님이 오늘 자신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우르소에게 예루살렘 시내에 들어왔으니 더욱 속력을 내라고 하려는데, 또 다른 마차 한 대가 마나헴의 마차를 추월해 나갔다.
마차를 보니 로마 천부장의 마차인데 무슨 일인지 상당히 급히 달리고 있었다.
꼭 누구를 잡으러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요:15-1
*미크바: 유대교에서 정결 의식의 하나로 몸을 물에 담그는 도구이다. 미크바는 기독교로 넘어가 세례로 발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