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루브리아도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바는 목적지인 동굴 근처에 도착했다.
계곡 밑은 겨울에 잠깐 비가 온 후 강물이 흐르다만 ‘와디’의 자국이 선명하다.
풀 한 포기 없는 누런 산이지만, 새파란 하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나귀 두 마리와 두 인간의 움직이는 모습을 감상하는 성싶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다섯 곳의 동굴을 차례로 확인하며 두루마리와 그릇들을 보관하는 작업은 시간이 꽤 걸렸다.
몇백 년 전 파놓은 동굴에는 당시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항아리들도 있었다.
“바라바 형 덕분에 일이 잘 끝났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으며 호란이 말했다.
“뭐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 헬몬산에서 석청 따던 생각이 나는군. 하하
그런데 그 얇은 쇠에 철필로 그린 지도는 보물 지도라고 했지?”
“네. 그래요.”
“어떤 보물들인지 궁금하네. 금이나 은인가?”
“저도 궁금해서 할아버지께 물어 봤어요.
금과 은도 있고 루비나 에메랄드 같은 여러 가지 보석이 많은가 봐요.”
“그렇구나. 대단하겠네.”
“네. 우리 에세네파에서 기다리는 메시아가 나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 건국 자금으로 쓸 거니까요.
그때는 로마 군대도 물러가고 타락하고 사악한 제사장들도 심판을 받게 될 거예요.”
“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
“네. 그때는 오늘 보관한 지도를 보고 보물을 찾는 사람이 있겠지요.
제가 언뜻 듣기로는 그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 근처래요. 모세가 쓰던 금으로 된 성배도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
“와, 모세가 쓰던 성배라면 정말 한번 보고 싶네.
그 잔으로 포도주도 한잔 마시고. 하하.”
“네, 그때 저도 불러주세요. 하하.”
어느새 해가 중천을 지나 노새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이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겠네. 오늘 저녁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 해.”
“네. 집에서 마차로 가시면 30분밖에 안 걸려요.
할아버지가 마차를 준비해 놓으셨으니 간단히 식사하실 시간은 있을 거예요.”
“응, 그래. 어제 저녁은 채식으로 맛있게 먹었어.”
“다행이네요. 저는 어려서부터 채식만 했더니 고기는 이제 못 먹겠어요.
모세가 쓰신 말씀에도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하셨어요.”
“아, 그런가?”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심지어는 동물들도 태초에는 서로 잡아먹지 않았나 봐요.
저는 독수리가 허공에서 비둘기를 잡으려 할 때 돌팔매질로 독수리를 맞추어 비둘기를 구해 줘요.”
“와! 솜씨가 대단하네.”
“네. 어려서부터 돌멩이 던지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사막에 나타나는 뱀도 머리를 맞추어서 많이 잡았어요.”
“독수리나 뱀은 호란 아우를 피해 다녀야겠어. 하하.”
“하하, 근데 아직 점심을 못 먹어서 배고프네요. 노새의 등이 놀고 있는데 우리 이거 타고 가지요.”
두 사람은 노새의 등에 겉옷을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탔다.
하늘에서 맴돌던 독수리 한 마리는 이제 별 재미가 없는지 계곡 저편으로 사라졌다.
헤롯 궁에서 집으로 돌아온 구사는 로마 금전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았다.
‘*아우레우스’라고 부르는 금전은 금으로 만든 유일한 돈이었다.
지금 로마의 재정이 악화돼서 금 자체로 가지고 있는 것이 돈의 명목 가치보다도 높아졌다.
앞면에 새겨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얼굴이 마치 ‘내 얼굴이니까 그렇다’라고 선포하는 듯했다.
그는 41년간 황제의 지위에 있으면서 로마제국의 앞날을 단단히 다져 놓았다.
앞으로 누가 황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오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황제가 나올 성싶지 않았다.
구사는 역시 오늘 궁전에서 꿈의 마지막 대목을 말하지 않기 잘한 것 같았다.
사실 해몽이 어렵기도 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세운 로마가 무너지고 새로운 제국이 세워지는데 그것이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면 혹시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요즘 요안나가 어디서 듣고 와서는 매일 하는 얘기가, 말세가 곧 온다고 하던데 혹시 그런가도 싶었다.
하지만 곧 세상의 끝이 온다고 외치던 가짜 선지자들은 나오는 족족 모두 십자가형에 처해지지 않았던가.
그래도 혹시 이번에는 진짜인지 모른다.
왕의 꿈은 보통 사람들의 꿈과는 다르다.
요안나가 성격이 화통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이 여편네가 들어오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그녀가 싱글거리며 들어왔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얼굴이 싱글벙글이오.”
“네. 그럼요. 젊고 미남인 바리새 랍비와 가마 안에서 담소를 나누었어요. 호호.”
“바로 그 랍비가 이제 곧 말세가 온다는 사람이오?”
“당신이 이제 말세가 다 궁금하고 웬일이에요?
그 사람은 아니고 예수라는 분의 말씀이에요.”
“그럼 그 가마에 같이 탔던 랍비는 누구요?”
“슬슬 질투가 나시나 봐요?
‘니고데모’라는 산헤드린 의원이에요.”
“예수라는 사람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지요?”
“네. 당신도 그분에 대해 들어보셨군요.”
구사는 속으로 섬찟했다. 설마 그럼 그 사람이?
헤롯 왕은 세례 요한에 대한 죄의식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를 죽인 왕비가 아우구스투스로 변한 후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으로 연결되었다.
왕의 꿈이 맞는다면 로마의 장래가 예수라는 사람에게 연결된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당키나 할 말인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요안나의 말이 그를 깨웠다.
“예수 선생은 갈릴리 출신 아니오?” 구사는 저절로 예수 뒤에 선생을 붙였다.
“어머, 그것도 아시네요. 갈릴리에서도 시골인 나사렛 출신이시지요.”
“음, 니고데모라는 젊은 랍비도 그의 제자인가요?”
“정식 제자는 아니고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지요.”
구사는 갈릴리라는 지역을 생각하다 집히는 데가 있었다.
“갈릴리에는 페니키아인, 시리아인, 아랍인, 그리스인 등 이방인들이 더 많이 산다고 들었는데, 혹시 예수 선생의 얼굴이 로마인과 비슷하지 않나요?”
로마 제국 티베리우스 황제의 두 아들이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다음 황제는 그의 직계가 아닌 사람 중에 고른다는 소문인데 만약 그의 핏줄이 발견된다면…. 그리고 그가 혹시….
“그건 모함이에요.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으셨어요.”
요안나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구사는 아내가 왜 갑자기 흥분하는지 몰라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1:29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아우레우스' 금화 앞면에 아우구스투스 로마제국 초대 황제의 얼굴과 함께 써 있는 글씨: “로마제국 정부 개선장군 아우구스투스 황제, 제11대 집정관, 제6대 호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