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헤롯은 즉시 들어오라고 했다.
“전하,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헤롯은 꿈 이야기를 헤로디아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온 꿈이라 조심스러웠다.
“제게 말씀하신 꿈은 이번에 처음 꾸신 건가요?”
“처음 꾸었지…. 아니, 근데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뭔가 비슷한 꿈을 꾼 것도 같네.”
헤롯은 갑자기 그런 것 같았다.
“네, 아마 그러실 겁니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를 다른 분께 혹시 하셨나요?”
“아니,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지.”
헤롯이 구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하셨습니다. 이 꿈은 당분간 저만 알고 있는 게 좋겠습니다.”
“오, 그래. 알았네. 도대체 이게 무슨 꿈인가?”
구사는 침을 한번 삼킨 후 천천히 말했다.
“네. 전하 꿈이란 신께서 인간에게 은밀히 보내는 서신이옵니다.
그 서신은 지극히 비유적이고 암시적이라 함부로 해석하기가 어렵고,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꿈을 꾼다고 해도 서로 다른 해몽을 해야 합니다.”
“그렇겠군. 두 사람의 환경이 다를 테니까…”
“하옵고 전하,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해몽은 저의 목숨을 걸고 해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감히 거론하고 여쭐 수 없는 문제들이 꿈에서 나왔으나, 전하께서 비슷한 꿈을 여러 번 꾸셨다는 것을 안 이상, 소신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걱정 말게나. 자네의 해몽은 나만 알고 있을 거니까.”
“네. 그럼 이제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마음 깊은 곳에 빌립 왕에 대한 강한 경쟁심이 있었는데, 이번 꿈으로 전하의 정신 영역이 크게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쟁 상대가 죽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꿈은, 꿈꾼 사람의 능력과 수준이 상대방을 초월할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또한, 머지않아 빌립 왕의 신상에 안 좋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전하의 통치를 넓히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신이 어제 말씀드린 좋은 기회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음, 그런 뜻이었구먼.” 헤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사가 계속 말했다.
“송구합니다만 폐하께서 아직 마음으로 극복 못 하신 문제가 있습니다.
빌립 왕의 얼굴이 세례 요한으로 변한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 역시 자네 말이 맞아.
사실 아직도 그가 상당히 찜찜하게 마음에 걸리네.”
“그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에 마땅한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항상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왕비님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시고 창의적이십니다.
날개를 가지고 날아다니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왕비님의 능력으로 위기를 넘기실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다만 무엇인가? 절대 왕비에게 말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네, 어느 시기에 왕비님께서 *갈리아 지방으로 같이 가자고 하시면 전하께서는 안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갈리아 지방? 그 먼 데를 내가 왜 가나?”
“꿈에서 언덕은 전하의 차원에서는 큰 산맥이고 그 산맥은 로마를 넘어 갈리아로 펼쳐집니다.
한번 가시면 다시는 유대로 돌아오시기 어렵습니다.”
헤롯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대꾸했다.
“갈리아 지방은 내가 가 본 적도 없고 갈 일도 없을 걸세.
음, 또 계속 말해 보게.”
“네. 전하. 그리고 꿈에 티베리우스 황제께서 안 나오신 것은 적어도 그분이 계신 한 이 땅에 큰 변화는 없는 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건강하게 오래 계실수록 전하도 평안하실 겁니다.”
“그래, 황제께서 70이 넘으셨는데 아직 주위에 시중드는 여인들이 많다니 장수하시겠지.
하긴 그분은 젊으셔서부터 운동을 많이 하셨으니까….
그런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께서는 왜 나오신 거고, 그분의 얼굴은 왜 또 안 보이는 사람으로 변한 건가?”
“전하, 소신이 아직 거기까지는 해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더 목욕재계하며 그 뜻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음, 그러게.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위험한 일이나 조심할 일은 없구먼.”
“네. 전하,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구사가 머리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아, 잠깐. 요즘 여러 가지로 업무가 많을 텐데….”
헤롯은 오른쪽 서랍에서 로마 금전을 꺼내 구사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가지고 필요한데 쓰게.”
“아닙니다. 전하, 저는 전하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야. 이제 유월절도 되었는데 집에서 필요한 일도 있지 않겠나.
또 해몽도 그냥 들으면 그 효과가 떨어지는 거야. 해몽 값은 줘야지.”
“네, 전하. 그러시면 소신 감사히 받겠나이다.”
구사가 나가자 헤롯은 창문으로 다가가 성전의 북쪽에 높게 서 있는 안토니오 탑을 쳐다보았다.
빌라도 총독이 예루살렘에 오면 머무는 곳이다.
거기서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며 감시하는 자체가 로마와 유대의 상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때는 이삼 백 명 정도의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빌라도가 이곳에 오는 유월절에는 오 백 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일 년 중 가장 긴장되고 치안이 불안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유대 땅을 다스리는 사람은 헤롯이긴 하지만, 서열상으로 로마에서 파견한 빌라도 총독의 지휘와 감시를 받고 있다.
또 대제사장 가야바도 벌써 십여 년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안나스 일가의 영향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러니까 헤롯과 빌라도, 가야바 이렇게 세 사람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조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헤로디아 왕비와 안나스 제사장을 포함한 다섯 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헤롯 안티파스가 선친 헤롯 대왕처럼 유대 땅 전체를 다스리려면 제일 먼저 제거되어야 할 사람은 빌라도 총독이다.
그는 은근히 헤롯보다는 요단강 동쪽 넓은 땅을 다스리는 빌립 왕을 더 가까이 하고 있다.
원래 평민 출신이었던 빌라도의 아버지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호위병으로 창 몇 번 휘두르고 귀족이 되면서, 그의 아들이 총독으로 여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빌라도라는 이름도 창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황제가 내린 이름이다.
그가 징계를 받고 로마로 소환되는 확실한 방법은, 유대 땅에 큰 소란이 일어나 치안이 위태로워지는 일이다.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빌라도를 먼저 벤 후 자신은 재빨리 피해야 한다.
매년 유월절이 되면 성전에서 큰 소란이 일어나기를 헤롯이 속으로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갈리아는 현재의 프랑스와 라인 강 서쪽의 독일을 포함하는 지역.
헤롯 안티파스는 칼리굴라 황제가 집권한 후 이 지역으로 유배를 가고, 나중에 찾아온 헤로디아와 함께 여기서 생을 마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