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안녕히 다녀오세요.”
예정보다 하루 늦게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마나헴에게 유리가 말했다.
“응, 그래.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어머니에게 요리와 꽃꽂이 배우고 있어요. 유월절 끝나면 바로 올라올게.”
마나헴이 우르소와 같이 마차를 타고 떠났다.
모녀는 마차가 골목길을 꺾어서 안 보일 때까지 서 있다가 경호원 오반과 같이 들어왔다.
“어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글쎄 말에요. 이제 누보에게 돈을 받아서 빨리 이사를 해야지.”
“쉿, 너무 크게 말하지 마라. 오반이 방에서 나오면 우리 소리가 다 들린다.”
유리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복도 쪽을 보았는데 오반의 방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그런데 우르소 눈이 잘 안 낫나 봐요. 아직도 안대를 하고 있네.”
“응,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이나 봐. 저 성질에 얼마나 화가 날까.”
“그래요. 카잔 아저씨를 만나면 단숨에 죽이려 할 거예요. 어유, 무서워.”
“카잔이라고? 며칠 전 내가 누보의 집에서 만난 사람이 카잔인가?
누보가 그렇게 부르는 듯했어. 내가 돈 얘기도 그 사람에게 했고….”
“콧수염 기르고 그리스 사람처럼 생겼지요?”
“응, 그래. 그 사람이구나.”
“그 사람 인상 어때요?”
“그만하면 점잖고 괜찮던데….”
“그럼 되었어요. 전에 내가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아, 그렇구나.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누보를 만나서 돈을 받아야 할 텐데….”
“내일 아침에 내가 누보 만나러 갈게요.
그래서 이번 주 안에는 일단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지요.
근데 나발 님은 잘 계신가 모르겠네요.”
“그래. 내일 가서 돈도 받아 오고 나발 안부도 물어봐라.
요즘 너무 오래 못 봤네.”
“네, 이제 이사 가면 자주 만나야지요.”
“응, 그래. 근데 유리야….
내가 세상을 좀 살아보니까 남녀관계라는 것은 정말 예측하기 어렵더구나.
또 나발이 본인 관상이나 별자리는 참 좋은데 주위에 있는 사람은 피해를 볼 수 있는 기운이 엿보여.
그러니까 혹시 잘 안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아라.”
“어머, 그래요?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런데 큰 인물인 나발 님을 도와주려면 주위의 희생도 좀 있는 거 아닌가요?”
“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 반대의 기운이 아주 강한 탄생별도 있어.
주위 사람에게 큰 혜택만 주는 별...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엄마는 그런 별을 본 적 있나요?”
“응, 30여 년 전 선생님과 공부할 때 한번 보고 그 후에는 그런 별을 못 봤어.
그 별은 꼬리가 길고 천천히 이동했었지.
놀랍게도 두 달이 넘게 산양자리에 있었는데 동방의 박사들이 해뜨기 전 몇 시간 동안 그 별을 계속 관찰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왔다는 소문도 있었어.”
“아, 그때 태어난 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할까요?”
“글쎄. 앞으로 누가 헤롯 왕의 뒤를 이을지, 또 다음 대제사장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아마 그런 사람 중에 있을 거야.”
“네, 그렇겠지요. 그런데 어렸을 때 처음 점성술을 배울 때는 참 신기했고 다 맞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점점 잘 모르겠어요.”
“응, 그러니까 어떤 일을 당하는 것이 운명이지만, 거기에 대처해서 길을 찾아가는 내 모습도 나의 운명이라 생각하면 돼.”
“네. 별의 모습도 그 밝기나 색깔이 조금씩 바뀌니까요.”
“응, 그렇지. 근데 그 카잔이라는 사람은 보기에는 점잖아 보였는데 어떻게 그 무서운 우루소의 눈을 그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다음에 엄마가 만나서 직접 물어보세요. 관심이 생기나 봐요. 호호.”
오랜만에 모녀의 저녁이 편안했다.
“내일 떠날 준비는 다 되었지?
“네, 아가씨가 말씀하신 유월절 음식과 과일도 다 준비해 놓았어요.”
“맛있는 포도와 포도주도?”
“네. 그럼요. ’로마네해떠’ 포도주 50병이랑 알이 굵은 포도도 많이 실었어요. 예수 선생님 제자 분들도 충분히 드릴 수 있어요.”
“그 분들은 지금 어디 계신가?”
“베세다에 계신데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돼요.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만나기로 수산나와 약속이 되었어요.”
“수산나가 누구야?”
“선생을 늘 따라 다니는 여제자인데 제 친구가 잘 알아서 연락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자 중 요한이라는 분의 어머니가 저를 먼저 좀 만나고 싶어 하시네요.”
“음, 무슨 일일까?
“글쎄요. 무슨 부탁을 할 듯싶은데 여하튼 내일 저녁에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응, 그래. 만나 봐.”
“네. 그런데 예수 선생이 얼마 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엄청난 말씀을 했다고 해요.”
루브리아가 잠자코 유타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선생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더니 선생이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어머, 히브리어 메시아가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인데…. 헤롯 왕이 들으면 싫어하시겠네.”
“네. 아마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나 봐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들었으니 입단속이 잘 안 되지요.
벌써 제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호호.”
유타나가 웃음기를 멈추고 계속 말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참 기뻤어요.
그분이 메시아인데 우리 아가씨 눈 정도는 문제없이 고쳐 주실 거예요.
이제 다 나으신 거나 다름없어요.
참, 그리고 밖에서 이번에 아가씨를 경호할 백부장이 인사를 드린다고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 오래 기다렸겠네. 빨리 들어오시라고 해.”
유타나가 나가서 백부장과 함께 들어왔다.
“이번 여행에서 아가씨를 모실 백부장 맥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맥슨은 상당히 젊고 침착해 보였다.
귀족의 자제이거나 전쟁에서 훈장을 받아 승진했을 것이다.
루브리아는 그의 인상이 어디서 본 듯도 했다.
“아, 네. 그럼 수고하세요.”
“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맥슨이 나가자 유타나가 말했다.
“저 백부장 인상이 참 좋으세요. 포도주 한 병은 줘도 되겠어요. 호호.”
“그래. 한 병 주면서 가능한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떨어져서 경호를 하라고 부탁해.”
“네. 아가씨. 그럼 오늘 일찍 푹 쉬세요.”
루브리아는 드디어 내일 바라바를 예루살렘에서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