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 선생의 간곡한 당부에 이번 일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졌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동판에 쓰인 글은 어떤 내용인가요?”
바라바의 질문에 선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그 설명을 해 주려 했네.
그 동판은 또 하나의 지도인데 에세네파에서 200년간 모아 놓은 보물을 숨긴 장소를 표시해 놓았지.”
“아, 네.” 대답을 하면서 바라바는 왜 이렇게 보안에 신경을 쓰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 동판 두루마리에 대해서는 요셉 선생도 모르고 있네.
우리는 곧 세상의 종말이 오고 새로운 왕국이 열릴 때를 대비하여 여러 준비를 하고 있지.”
“네. 그런데 혹시 철판에 녹이 슬면 부식될 염려는 없을까요?”
“음, 그래서 이 동판을 보관할 동굴은 가장 건조한 장소를 골랐어.
최소한 삼사십 년은 괜찮을 걸세.
적어도 그 안에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리겠지.”
“아, 네….”
바라바와 호란의 눈이 마주쳤고 호란이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자, 이제 저녁 식사하면서 또 이야기하세.
갈릴리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빌립 선생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가니 벌써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모든 생활에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식사도 육체의 건강을 유지할 정도만 하고 있지.
악의 근원은 너무 먹는 건데, 그러면 남는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쓰기 때문이라네.
세상 음란이나 폭력에 쉽게 빠지는 것도 다 그래서 그런 거야.
그래도 오늘 저녁은 자네가 온다고 해서 조금 더 준비한 걸세.”
“네. 감사합니다.”
“그 목도리가 색깔이 좋구먼.
여기는 사막이라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해서 그런 게 필요해.
헤롯 왕도 여리고 별장에서 사막 쪽으로 시찰을 나올 때 그런 목도리를 두르고 나오지.”
목도리를 풀고 식탁에 앉는 바라바를 보고 선생이 한 말이었다.
바라바는 내일 같은 목도리를 한 루브리아를 예루살렘에서 만날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식탁의 음식은 역시 고기는 전혀 없이 야채 위주의 담백한 식사였고 포도주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식의 식당을 루브리아와 카프리 섬에서 열 수는 없을 것이다.
“바라바 형, 많이 드세요. 내일 산을 타려면 힘이 좀 들 거예요.”
호란을 보니 나이도 비슷하고 똘똘하고 야무진 것이 나발 생각이 났다.
바라바가 웃으며 고개를 끄떡이자 빌립 선생이 말했다.
“호란아, 바라바 형이 산 타기 선수라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잠시 세 사람이 식사에 열중한 후 바라바가 물었다.
“혹시 선생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그 사람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는 받았지만, 에세네파는 아니네.
나도 만난 적은 없고…. 이번 유월절에 성전에 나타날지도 모르지.”
빌립 선생이 무언가 말을 더 하려다 옥수수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요나단 제사장을 만나고 집으로 가던 니고데모에게 어느 여인이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혹시 니고데모 님 아니세요?”
부유한 옷차림을 한 40대의 기품있는 여성이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아, 역시 맞군요. 여기서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헤롯 왕을 모시는 구사 님의 아내 요안나라고 합니다.”
“구사 님이라면 왕실 자금 담당관 구사 님이신가요?”
“네, 저의 남편을 아시나요?”
“그럼요. 구사 님을 모르면 유대 랍비가 아니지요.”
“호호, 별말씀을요. 소문만 이상하게 난 거예요.”
구사는 헤롯 왕의 총애를 받아 모든 왕실의 자금 결재는 그를 통해서 집행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도시마다 있는 여러 회당에 대한 재정 지원도 구사가 결정하므로 랍비들의 로비 대상이었다.
“요안나 님이 저를 어떻게 아시지요?”
“호호, 긍금하시지요? 지금 댁으로 가시는 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댁이 서부 주택가에 있지요?
저도 집으로 가던 길이니까 제 가마에 타고 같이 가면서 말씀 좀 나누실까요?”
니고데모가 돌아보니 검은 피부의 건장한 하인 4명이 가마를 땅에 내려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니고데모가 요안나의 가마에 올라탔다.
두 사람씩 마주 보며 앉는 4인용 가마인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마 안은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여인의 향수 냄새가 은은히 배어 있었다.
가마가 출발하자 요안나가 포도를 건네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이 포도가 알은 작지만 달고 맛있어요.”
“아, 네. 그러지 않아도 좀 걸었더니 목이 말랐는데 감사합니다.”
니고데모가 몇 알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니고데모 님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시죠?”
“네. 저는 뵌 기억이 전혀 없는데요.”
“제가 힌트를 드리죠. 호호”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포도와 관련이 있어요.”
“포도와요?” 그가 포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 좀 어려우신가요? 하나만 더 힌트를 드리지요.
니고데모 님 고향이 갈릴리 지역이지요?”
“네. 그렇긴 한데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말했다.
“그럼 혹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네. 맞아요. 수산나 친척의 결혼식에 오셨었지요?
그때 거기서 뵈었어요. 인사는 나누지 않았지만요.”
“아, 네. 이제 알겠습니다. 그때 예수 선생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지요.”
“네. 그래서 니고데모 님께서 예수 선생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고, 그 후 밤에 은밀히 찾아가서 만나신 것도 들었어요.”
“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나요?”
“네. 우리가 예수 선생의 제자 분들을 잘 알아요.
선생의 집회에도 자주 참석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