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헴의 마음은 자주 흔들렸다.
유리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별문제는 없을 성싶다가도, 믿을 수 없는 여자를 두고 애착을 갖는 게 어리석게 생각도 되었다.
그러다가 유리의 얼굴을 보면 너무 아까워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는 마음이 된다.
이번 유월절이 끝나면 정식으로 성전경호대장으로 승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니까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안나스 대제사장님에게 바라바라는 놈을 잡겠다고 했는데 아직 별 성과가 없는 것이 마음에 좀 걸렸다.
누보 놈까지 도망갔으니 일이 영 안 풀리는 것이다.
유리가 만났다는 콧수염 사내가 진짜 친척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로 봐서 그녀의 애인은 아닐 성싶다.
만약 유리가 그런 배신을 한다면 잔인하게 복수를 할 것이다.
레나가 봐준 점성술로 볼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10년간 새로운 대운이 시작되었으니 예루살렘에 가서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바라바를 좀 더 추적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마나헴은 얼른 서랍을 열어보았다.
서랍 안 구석에 작은 쪽지가 있었다
누보 놈이 제 발로 왔을 때 주소를 적었던 종이이다.
이것을 주고 나가려다가 놈이 은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붙잡았던 것이다.
다시 자세히 주소를 보니 어디쯤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오반과 우르소를 불렀다.
“이 주소 어딘지 알겠나?”
“네. 이 동네 제가 잘 압니다.” 오반이 쪽지를 보고 말했다.
“그럼 자네가 여기 누가 사는지 조용히 가서 좀 알아 봐.
지난번 도망간 누보 주소인데 가짜는 아닌 것 같아.”
“저도 같이 갈까요?” 우르소가 물었다.
마나헴이 고개를 저었다.
“우선 오반 혼자 다녀와. 우르소는 너무 눈에 띄니까…”
“그럼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오반이 나가자 마나헴이 우르소의 눈을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안대는 풀었지만, 눈이 아직 상당히 빨가네.
보이는 건 지장 없나?”
“네. 보이는 건 잘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구먼….”
“걱정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 콧수염 놈을 잡기만 하면 두 눈을 뽑아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 지나친 것 같아 우르소가 끝을 맺지 않았다.
“콧수염이라고 했나?
음... 혹시 나이는 40대이고, 그리스 사람처럼 생겼고?”
“어, 어떻게 아십니까?”
마나헴은 유리에 대한 의심이 다시 밀물처럼 몰려왔다.
살로메는 변호사를 만나고 온 얘기를 요한에게 하고 있었다.
큰아들 야고보도 예수 선생의 제자지만, 둘째가 선생의 사랑을 더 받는 느낌이었다.
“가낫세 변호사를 만나니까 좀 안심이 되는구나. 네가 생각을 잘했다.”
그녀가 요한을 보는 눈에 만족함이 넘쳤다.
“제가 처음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유다 님이…”
어머니가 얼른 요한의 말을 막았다.
“여하튼 네가 얘기해서 내가 만난 거니까 마찬가지야.
역시 그 방면 최고의 변호사답게 상황 파악을 금방 하더구나.”
“뭐라고 그래요?” 요한이 필기 도구를 준비하고 물었다.
“호호, 너도 변호사 될 소질이 있네.
가낫세 변호사도 내가 하는 말을 꼼꼼히 기록하더라.
나사렛 예수에 대한 소문도 들어보았대.”
“그분이 우리 사촌이라는 말은 안 하셨지요?”
“응, 안 했어. 처음에 비서에게 그냥 안나스 제사장 소개로 왔다고 했지.
변호사가 아버지 이름도 물어서 말해주었어.
아버지는 내가 변호사 만난 줄도 모르지만. 호호.”
“아버지나 친척들, 특히 선생님의 가족들은 아직도 선생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얘기할 필요 없어요.”
“상담 끝나고 나가려는데 여비서가 따로 부르더니 상담비를 내라고 하더라.
30분도 안 만났는데 일주일 고기 열심히 잡아야 할 돈을 내고 왔다.”
“그러니까 어떤 변호사들은 고객과 식사하면서 포도주잔 한번 부딪치는데 얼마씩 계산한다고 해요.”
“호호, 그렇구나. 하여튼 이번 유월절에 예수 선생을 네가 잘 모시고 다니면서 행여 바리새 랍비들과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요한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가끔 선생님과 처음 나사렛에 갔을 때가 떠올라요.
그때 받은 모욕과 상처를 생각하면 자꾸 불안해져요.”
요한이 맑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예수 선생이 사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나오셨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일이 생생하다.
선생은 모세처럼 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사막 안에서 선생이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믿었다.
빛나고 맑은 눈이 더 커져서 세상을 끌어 앉는 듯했고, 바짝 마른 얼굴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어떤 사람은 선생의 눈을 마주보기 어렵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선생이 누구와 큰 싸움을 하고 나온 것 같다고도 했다.
세례 요한 선생의 제자였던 형 야고보와 내가 예수 선생을 따르기 시작했다.
선생은 고향 나사렛으로 가서 그가 받은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다.
우리들은 선생이 메시아라는 확신으로 기쁨과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떠났고, 빵 두세 덩이를 온종일 조금씩 나누어 먹으며 길을 재촉했다.
황량한 사막의 선인장들과 그 사이로 작은 도마뱀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여리고를 지나 요르단 강을 길게 따라 올라갔다.
떠난 지 3일 만에 갈릴리 호수 남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나사렛 마을의 입구에 다다랐다.
그 마을은 오래되었고 가난한 마을이었다.
흙먼지가 날렸고 구걸하는 맨발의 어린이들과 절름발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구정물이 튀기는 비탈길 양쪽으로 어둡고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내로 더 들어가니 올리브나무와 키가 작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언덕이 나왔다.
이 언덕에 올라 시내를 한번 내려다본 선생은 마을 중앙의 회당으로 향했다.
세례 요한 선생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 선생은 불로 세례를 주신다니 앞으로 일어날 일이 크게 기대되었다.
처음부터 선생은 사촌 동생인 요한을 ‘우레의 아들’이라는 애칭으로 불러 주셔서 그는 속으로 큰 자부심을 느꼈다.
곧 우레처럼 세상을 진동시키는 큰일을 할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