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때 마침 우리 이모가, 촌장이 흥분하여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네.”
카잔이 몸짓을 쓰면서 말을 하니, 마치 누보도 지금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촌장에게 주민 몇 사람이 달려와서, 갈릴리에서 온 유대인들이 음식을 얻으러 집집마다 맨발로 돌아다닌다는 말을 하였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옷은 남루하나 하는 행동은 점잖은 편이었다.
전부 합해 일고여덟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들이 방문한 집 대부분에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냉정하게 문전 박대를 했다.
그러면 그들은 모두 발에 먼지를 터는 행동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정신 나간 노파가 그들에게 큰 빵 두 덩어리를 주어서 그들이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더더욱 어이가 없는 일은, 마을의 자랑인 야곱의 우물에서 그들의 선생인 듯한 자에게, 품행이 안 좋은 마을 여자가 우물물을 떠서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은 그 지역의 촌장은, 오랜 시간 햇볕에 그을려 주름살투성이인 얼굴을 찡그리며 분연히 일어나 우물가로 간 것이다.
촌장을 따라 마을에서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과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노인 네댓 명이 같이 갔다.
거지 떼 같은 유대인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에 혼을 내주어, 이 마을에 질서와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촌장의 눈은 늙은 독수리 같았다.
밀이삭을 쳐 내는 얇지만 단단한 막대기를 손에 든 젊은이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이 우물가에 도착하니 갈릴리 패거리들은 이미 빵을 거의 다 먹고 주위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그들의 선생인 듯한 자도 중간에 앉아, 동네 여자들과 다정스레 대화하며 누가 따 왔는지 무화과 열매를 먹고 있었다.
촌장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는 유대인들 모두 들으시오.”
그의 호통 소리에 놀란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들은 황급히 하던 말을 멈추고 유대인들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누워서 쉬고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한군데로 모였다.
촌장은 자기의 큰소리에 모두 놀라고 긴장한 모습에, 다소 흡족한 얼굴을 하며 주위를 근엄하게 둘러봤다.
무화과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촌장을 바라보는 갈릴리인들의 얼굴에 부딪쳐 떨어졌다.
그들 중 턱수염이 희끗한 사람이 유대인들의 선생 옆으로 다가섰다.
만일의 사태에 선생을 지키려는 자세인 듯했다.
촌장이 다시 언성을 높였다.
“누가 감히 당신들에게 우리의 신성한 땅에 들어오라고 했소?
어디를 가는지 모르지만 어서 갈 길을 가시오.
우리는 성스러운 야곱의 우물을 갈릴리 사람들이 더럽히는 것을 더는 참고 있을 수 없소이다."
턱수염이 희끗한 사람이 즉시 대응했다.
“우리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경배하고 오는 길에 여기를 지나는 것뿐입니다.”
그의 얼굴은 검고 울퉁불퉁하여 바닷바람에 오래 쓸린 갈릴리 어부 출신이 틀림없었다.
그 말을 들은 촌장은 쌓였던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내었다.
“바로 여기가 거룩한 그리심 산이외다.
당신들은 경전을 읽기나 합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셨던 곳이 어딘지 모릅니까?
바로 여기 그리심 산기슭의 떨기나무였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산에서 에돔까지 펼쳐진 평야를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저 약속된 땅을 보라. 내가 이 땅을 너희에게 준다는 약속을 지키겠노라’
알아듣겠소? 경전에 이렇게 쓰여 있단 말이오.
그러니 누구나 경배를 하고 싶으면 선지자들을 죽이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여기서 해야 한단 말이오.”
“모든 땅은 다 거룩합니다.”
조용하면서 따스한 목소리였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유대인들의 선생이 한 말이었다.
촌장은 잠시 그를 바라본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마리아 사람과 갈릴리 사람이 형제란 말입니까?”
“네.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부드럽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촌장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도 형제입니다.”
선생의 소리가 하늘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선생의 말을 들은 촌로가 마음을 바꾸어, 자기네 마을로 갈릴리 일행을 초대해서 이틀간 머문 후 돌아가게 했다.
여기까지 들은 누보가 카잔에게 물었다.
“아, 그럼 그리심 산에도 신전이 있나요?”
“그럼, 나도 어렸을 때 그 신전에서 기도하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전에 아마 유리에게는 말했을 거야.”
“그러시군요. 그런데 티베리아의 목수와 사마리아의 선생이 같은 사람인 줄은 어떻게 아세요?”
“물론 내가 안 봤으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은 예수, 그 사람밖에 없을 거야.
언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구먼….”
“그 사마리아 촌장이 말했던, 경전에 나와 있다는 하나님의 말도 사실인가요?”
“응, 사실이지.”
“그럼 노인의 말대로 예루살렘보다 그리심 산이 진짜 성전이네요.
왜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지요?”
“음, 우리가 경전을 보면서 늘 조심해야 할 부분은, 설령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특정한 문자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쓰인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면 완벽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우리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약이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그리심 산은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서 말씀이 이루어진 시대의 시간성과 공간성의 상징으로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거야.
지금 자네와 내 앞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바로 이 호텔 이 방이 거룩한 약속의 땅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목수, 바로 예수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모든 땅은 다 거룩하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네. 형님의 해석을 들으니까 그럴 것도 같네요.”
“자네같이 쉽게 이해를 하면 참 좋은데 대부분 그렇지 못해.
경전이나 율법서에 쓰여 있는 문자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여 큰 다툼이 일어나지.
때로는 이것이 전쟁까지 가니까 참 안타까운 일이야.”
“아, 그래서 그 예수라는 분이 우리가 모두 거룩한 땅에 같이 사는 형제자매라고 하셨나 봐요.”
누보의 말에 카잔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