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낫세 변호사의 사무실은 입구부터 화려했다.
하얀 대리석 기둥에 바닥은 초록색 돌을 깔았고, 손님 대기실의 크기만도 살로메 자신의 집보다 컸다.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리기만 해도, 수임료를 조금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얀 벽에는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를 비롯해 지금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초상까지 쭉 걸려있는데, 거의 다 안나스 집안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은 근엄하면서 자애로워 보였다.
둘째 아들 요한의 부탁을 받고, 남편 모르게 아침 일찍 나왔는데 벌써 대기실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서너 명 있었다.
세련된 화장에 동그란 은귀걸이를 한 30대의 여비서가 그녀에게 와서 물었다.
“어느 변호사님 만나러 오셨나요?”
살로메가 한 박자 쉬고 되물었다.
“여기 가낫세 변호사님 사무실 아닌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변호사가 네 분 계시는데 어느 분을 만나실 건지요?”
“아, 가낫세 변호사님요.”
“가낫세 변호사님을 개인적으로 아시나요?”
“아, 네. 조금….”
말꼬리를 흐리는 살로메가 미심쩍은 듯 비서가 다시 물었다.
“실례지만 어느 분의 소개로 오셨나요?”
“아, 저의 남편이 예전에 안나스 대제사장님과 친분이 좀 있어서요. 그분의 추천으로….”
이왕 말할 거 제일 높은 사람의 이름을 댔다.
사실 그녀의 남편 세베대오가 오래전, 여러 척의 배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아 수산 시장에 납품할 때 안나스 제사장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살로메가 고급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태도가 품위 있어 보였는지 비서가 상냥하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어젯밤 요한의 설명을 들은 살로메는 아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 둘이 다 예수를 따라다니는데 만에 하나 그가 잘못되면 큰일이다.
지난번 예수 선생에게 세상이 바뀌면, 야고보와 요한을 특별히 잘 부탁한다고 할 때는 반응이 안 좋았지만, 이번에 요한이 공을 세우면 완전히 그의 오른팔이 될 것이다.
살로메가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데 비서가 들어와 가낫세 변호사의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가낫세 변호사입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날카로운 인상의 가낫세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권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상냥하게 물어보는 가낫세에게 그녀가 자세한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미리 오신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아주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저는 이런 의뢰인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아드님이 선생으로 모시는 사람 이름이 '예수'라고 했나요?”
“네….”
“음, 예수라는 이름이 하도 많아서….”
가낫세가 메모를 하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도 합니다.”
“아, 제가 그 사람에 대해 얼마 전에 한 번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음, 걱정을 끼치려는 건 아니지만, 이번 유월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혹시 손님께서 이 사람과 인척이 되시나요?”
대답을 머뭇거리는 살로메에게 가낫세 변호사가 말했다.
“곤란한 대답은 안 하셔도 됩니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나스 대제사장님을 아시는 주인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지요?”
변호사는 살로메의 남편 '세베대오'의 이름을 철필로 적은 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손님은 저에게 바로 잘 찾아오신 겁니다.
대충 들으셨겠지만 제 승소율은 90퍼센트가 넘습니다.
특히 가야바 대제사장님이 주심인 재판에서는 아직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어렸을 때 안나스 제사장님에게 직접 탈무드를 배웠고, 가야바 대제사장님과는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음, 그런데 이 사람, 나사렛 예수가 만약 기소된다면 내란 음모죄나 신성 모독죄가 적용될 것입니다.
이 중에 신성 모독죄가 더 다루기 어렵고, 이 경우 안나스 대제사장님의 의중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런데 신성 모독죄라는 건 좀 애매하지 않나요?”
살로메의 질문을 받고 가낫세가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로서는 일하기가 더 어렵지요.
음, 힌두교 경전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벌써 천년 전에 이런 구절을 경전에 써넣은 인도사람들의 지혜가 놀랍지요.
만지는 장님마다 코끼리가 기둥처럼, 벽처럼, 새끼줄처럼 생겼다고 믿는 거지요.
제가 할 일은 누가 고소를 해도 재판관이 만지는 코끼리와 의뢰인이 만지는 코끼리가 같은 곳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제 의뢰인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면 재판관도 다리를 만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역시 대단히 유능한 변호사라서 수임료가 비싸겠네요.’
살로메가 덜컥 하고 싶은 말을 입안으로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