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애써 사무엘을 잡아서, 그가 열성당의 갈릴리 지역 당수라는 것이 밝혀졌으면, 사형을 시키거나 최소한 카르멜 광산 노예 수용소로 보냈어야 했다.
카르멜 노예 수용소에 가면 이삼 년 안에 많은 노예들이 생명을 잃는다.
오죽하면 약 100년 전 광산지역으로 보내진 노예들과 검투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스파르타쿠스의 난’이라고 불린 이 사건은 진압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
로무스 대장은 유대인의 본심을 너무 모른다.
그들은 절대로 로마에 굴복할 사람들이 아니다.
회유정책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고,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민중을 선동하여 시민 질서와 평화를 깨뜨린 폭도들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루고는 스스로 보이지 않는 정의의 심판자가 되었다.
사무엘처럼 겉으로는 신앙이 깊은 유대인으로 위장하고, 뒤로는 폭력조직을 지휘하는 사람을 루고는 제일 혐오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열성당 내부 소행으로 보이게 한다면 성공하는 것이다.
어려서 배운 의학지식을 동원하여, 외상의 흔적이 없이 자다가 숨이 막혀 죽는 방법을 드디어 개발했다.
며칠 후 아단을 불렀다.
사무엘이 잠들면 그의 방 창문을 모두 닫고, 루고가 제조한 독이 발생하는 향초를 피우라고 지시했다.
아단은 향초의 작용을 알기는 했으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줄은 몰랐다.
약하게 잠깐 맡으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또 사마리아인인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사람은 루고 백부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알았어도 거절은 못 했을 것이다.
루고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슬피 우는 사람들 앞에서 속으로 웃으려니 자꾸 얼굴이 이죽거렸다.
예상대로 그들은 내부에서 범인을 찾으려 했으나 물론 헛수고였다.
아단은 사무엘의 사망에 충격을 받았으나 그가 그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고, 또 곧 자기를 승진시켜주겠다는 루고의 말에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루고는 생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쳤다.
아단이 갑자기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자기가 살인을 했다는 생각을 하니 점점 불안해지고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사라에게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냥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금방 승진이 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자기는 그 향초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루고 백부장이 시켰다는 말은 절대 안 할 테니 그냥 혼자 자수해도 되냐고 물었다.
루고는 펄쩍 뛰었다.
도대체 폭력조직의 두목을 법을 대신해서 처단했는데 자랑스럽게 생각은 못 하고 왜 그리 바보같이 마음이 약하냐며 꾸짖었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면 안 되고, 만약 그런 말을 또 하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윽박질렀다.
아단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마나헴은 목발을 짚은 채로 돌아왔다.
예루살렘에서 제일 큰 병원에 안나스 제사장의 소개장까지 가지고 갔으나, 무릎뼈가 부서져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하기 전에 다리를 고치고 싶었는데 그마저 맘대로 안되니 짜증이 났다.
오자마자 레나를 방으로 불렀다.
"지난번 무슨 붉은 별 운운하면서 유리와 결혼을 연기하라고 했지요?
내가 하는 일이 곧 잘되면 그때 해야 한다고….
근데 잘 되는 일이 없네. 다리도 못 고치고…
이제 곧 날짜를 잡는 게 좋겠는데 언제가 좋을까요?“
"지난번 말씀하신 중요한 일이 아직 잘 안됐나요?"
"흠, 곧 잡을 줄 알았는데 여의치 않네요.
그놈 잡은 후 결혼하려면 내가 늙겠소.“
"어머, 아직 팔팔하게 젊으신데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보면 20대로 보이세요."
"그래요? 사실 내가 아직 건강은 젊은이들 못지않지. 허허.
내달 중순께에 좋은 날짜를 하나 정해줘요.
그런 일은 우리 미래의 장모님이 제일 잘하잖아요.”
“네. 알겠어요. 며칠 내에 알려드리지요.”
“아,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에 누보가 왔다 갔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놈이 뭐 하고 있나…
아, 그리고 당분간 내가 안나스 제사장님과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자주 못 올 것 같소.
어쨌든 며칠 후에 날짜 잡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시다.”
레나는 마나헴의 방을 나오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유리를 차지할 목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마나헴이 자신을 돌봐주고 이렇게 안정된 일을 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리의 앞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몰래 짐을 꾸려 야반도주라도 하고 싶었다.
남의 앞날을 봐준다는 사람이 자기 가족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답답했다.
마나헴의 성질로 볼 때 오늘도 늦추자고 하면 화가 폭발할 것이고 그 후유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한다고 하고 다른 핑계를 대거나, 상황을 봐서 결정하는 것이 좋을 성싶었다.
레나는 유리가 앉아 있는 점성술 방으로 돌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유리야,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었는데 오늘은 결혼 날짜를 내달 중순으로 하자고 해서 일단 알았다고 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그 안에 또 무슨 이유를 만들어서 연기하거나 없던 일로 만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응, 엄마. 그 사람이 나를 보는 눈빛이 점점 싫어져.
연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차라리….”
“차라리, 뭐?”
“음, 내가 먼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그래? 누군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니?”
“응, 한사람 있긴 한데… 그 사람은 전혀 내 생각을 모르겠지.”
“그게 누구니?”
“나발이라는 젊고 잘생긴 사람인데 요즘은 안 오네. 누보의 친구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