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나가 탈레스 선생을 급히 모시러 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뒷동산을 산책하던 루브리아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시력이 나빠진 것 같았다.
시야 가장자리에 뿌옇게 보이는 부분이 더 늘어났고 따라서 옆을 보는 능력이 떨어졌다.
루브리아는 시력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기 싫었다.
여기서 어렵다면 아버지 말씀대로 로마에 가면 좋은 의사들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실명을 하면 바라바 님과 약속한 로마 여행도 같이 못 가고, 평생을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
갑자기 불안과 공포에 등골이 오싹했다.
창밖의 새소리도 듣기 싫었다.
장님의 눈도 고친다는 예수 선생 생각이 나면서, 로마에 가기 전에 그를 꼭 만나 보고 싶었다.
누워 있기도 싫어서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탈레스 선생이 들어왔다.
환자의 시력이 나빠진 것을 의사가 쉽게 알 수 있는 병도 있지만, 루브리아의 경우는 오로지 환자가 느끼는 증상에 의존한다.
탈레스 선생이 루브리아의 눈을 확대경으로 들어다 본 후 말했다.
"요즘 정신적인 충격이나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셨나요?"
"네, 좀 신경 쓰인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바라바 님이 왕궁 감옥에 갇혀있던 하루 사이에 체중이 꽤 빠진 듯했다.
"걷다가 넘어질 정도라면 시야 주위의 어두운 부분이 커지면서 좌우의 물체가 잘 안 보이시지요?"
"네. 시야가 동그랗게 보이는데 그 원 모양이 좀 작아졌어요.
특히 왼쪽 눈이 심해요. 며칠 전부터 그런 것 같았는데 오늘 확실히 알겠네요.
이렇게 나빠지면 곧 실명을 하게 되나요?“
루브리아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네....왼쪽 눈은 이 상태에서 더 나빠진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왼쪽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오른쪽 눈 하나로 계속 생활하는 사람도 있나요?”
선생의 대답이 한 템포 쉬고 나왔다.
"네.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만… 다른 쪽 눈도 나빠지기 쉽습니다.“
루브리아가 억지로 목소리를 밝게 내며 말했다.
"아버지가 얼마 후에 로마에 일이 있어서 가시는데 겸사겸사 저도 따라갈까 하거든요.
혹시 로마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소개해 주실 분이 있으신가요?“
"네. 물론 제가 잘 아는 의사들이 있습니다만, 그들도 확실한 치료방법은 아직 모를 겁니다."
루브리아의 고개가 숙어졌다.
"여하튼 소개해 드릴 테니 만나 보세요.
그리고 오늘부터 눈 주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방법을 써 보겠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모든 병은 혈액 순환이 잘 되면 치유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탈레스 선생은 나무로 만든 바늘 같은 것으로 루브리아의 눈 주위 몇 군데를 약간 아프게 찌르며 자극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유타나에게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 이런 방법으로 자극을 준 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마사지하도록 알려 주었다.
"선생님, 아가씨가 산책하다 넘어지셨는데 운동을 계속해야 하나요?"
"네. 운동은 평지를 걷는 운동이라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검투사나 레슬링 선수들은 굉장히 건강하게 보이지만 평균수명은 짧고, 또 운동을 전혀 안 하는 사람들도 건강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운동도 적당히 자기에게 맞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조금 빠른 걸음으로 하루에 30분씩 1주일에 네다섯 번만 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탈레스 선생이 나간 후 유타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가씨, 아까 대장님께서 탈레스 선생님이 오신 걸 아셨어요.
아마 무슨 일인가 하고 곧 아가씨를 부르실 것 같아요."
"그래. 내가 눈이 더 나빠진 말씀은 아직 하지 마. 너무 걱정하실 거야."
"그래도 곧 아시게 될 텐데요. 아가씨가 먼저 말씀드려야 덜 걱정하실 거예요."
"그럴까. 그럼 내가 지금 가서 말씀드려야겠다.“
잠시 후 루브리아는 아버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오, 그래. 잘 왔다. 그러지 않아도 부르려고 했는데, 탈레스 선생이 왔더라?"
"제 눈이 조금 나빠진 것 같아 오시라고 했어요."
"음, 걱정이네. 그동안은 적어도 나빠지지는 않았었는데..."
"네. 뭐 많이 나빠진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늘 탈레스 선생님이 새로운 치료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니까, 며칠 해보면 아마 좋아질 거예요.“
루브리아는 말을 하면서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만약 시간이 좀 지나도 안 좋아지면 로마에 서둘러 가도록 하자."
루브리아가 아무 대답 없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로무스가 다시 말했다.
"지난번 선이 들어온 원로원 의원에게도 우리가 곧 갈 거라고 알려줬다.
네가 만나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절한 핑계를 댈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루브리아가 대답 대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오늘 사무실에서 향초 피운 적 있나요?"
"향초?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어, 이상하다. 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이 냄새인데…"
루브리아가 맡은 냄새는 바로 바라바가 가지고 왔던 향초 냄새였다.
"조금 전 이방에 누가 있었다 나갔나요?"
"응. 루고 백부장이 왔었지."
"아, 그전에는 누가 없었나요?"
"그전에는 내가 오전 시찰을 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는데…"
"그러면 루고 백부장이 향수를 쓰나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왜?"
루브리아는 드디어 어렴풋한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