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리아는 다시 호숫가 데이트를 할 때 연주할 생각으로, 외출복에 진주 목걸이까지 하고 리코더 연습을 시작했다.
한참 음악이 절정을 향해 올라가는데, 유타나가 들어와 아버지가 급히 찾는다고 했다.
집무실에 들어가니 아버지의 시선이 목걸이에 꽂혔다.
"그 진주 목걸이 멋지구나. 누가 선물 준거니?"
"네, 헤로디아 왕비님이 얼마 전 주셨어요. 사양했는데도 굳이 주셔서 받았어요."
"그래? 왕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주었을까?."
"별말씀이 없으셔서 잘 모르겠어요."
"그분이 그냥 줄 리는 없는데… 너에게 앞으로 무슨 상의를 하더라도 나에게 꼭 알려라."
"네, 그럼요. 혹시 지금 왕궁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왕비가 오래전 헤롯 왕과 결혼하기 위해 왕의 첫 번째 부인을 쫓아냈는데, 그 여자가 한을 품고 있지.
그녀의 아버지가 유대 남쪽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의 왕인데 이를 갈며 복수의 기회만 노리고 있어.
만약 로마 황제가 바뀌거나 유고가 되면 그 틈을 타서 침공해 올 거야.
헤롯 왕의 권력 기반이 대번에 흔들릴 수 있지.
여하튼 벌써 30년을 집권했기 때문에 민심의 향방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더라."
"네, 그렇군요. 다음 로마 황제는 누가 될까요?"
"만약 연로하신 티베리우스 황제께서 곧 서거하신다면, 클라우디우스와 칼리굴라 중 한 사람이 되겠지.”
아버지가 말을 멈추고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황제의 경제 담당 고문인 도미니우스 님으로부터 우리와 혼사를 맺자는 제의가 들어 왔다.
그의 둘째 아들인데 나이는 25살이고 문무를 겸비한 젊은이라는 소문이다."
"그래요? 지금 무슨 일을 하나요?"
"벌써 회계담당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곧 재정 비서관을 맡을 거라 하네."
"서로 만나 보지도 않고 혼사를 결정하기는 싫어요.“
“물론이지. 일단 저쪽의 체면도 있으니 서로 인사는 하고, 네 맘에 안 들면 절대 강요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로무스는 루브리아가 이 정도라도 관심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버지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아, 그리고 지난번 죽은 사무엘을 지키던 병사가 자살을 했다는구나."
"어머, 자살을요? 이상하네요…."
"왜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니?”
"아니요. 아직은 좀 더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
루브리아는 혼사가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기 싫었다.
양가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서 적당히 진행하다 그만두면 될 일이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비서 정치를 한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비서실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들었다.
그 정도 집안이고 황제의 비서실에 있다면 주위에 여자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다.
루브리아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유타나에게 사라를 마차로 급히 데리고 오라 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사라가 왔다.
"언니, 저를 찾으셨어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사라가 들어오며 물었다.
"그 범인을 안다는 사람이 그 후 연락이 없니?"
"네, 우리도 매일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네요. 벌써 1주일이 지났는데….“
"음, 사무엘 님을 감시하던 병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구나.
혹시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어머! 그래요? 바라바 오빠와 내가 지난번 만나 본 사람인데, 그 사람이 왜 죽었을까…
그 사람 집에 좀 가볼 수 있을까요?"
"그래, 루고 백부장에게 부탁해서 가면 되겠지."
"네, 빨리 가보는 게 좋겠어요.“
그 병사의 이름은 아단이었고 그의 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적막했다.
벌써 어제 아침에 장례를 치렀다.
가족이라고는 형 한 사람이 있는데, 사라가 정중히 조의를 표한 후 자살의 이유를 물었다.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얼마 전만 해도 곧 승진될 거라고 좋아했었어요."
아단의 형은 동생의 성격이 예민하고 소심하기는 하나, 자살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동생과 한방을 쓰며 살았는데 며칠 전 지방에 다녀오니, 이미 옆방 사람이 사망한 동생을 발견한 다음이었다.
아단이 남긴 유서는 짧은 한 줄짜리 쪽지였다.
'너무 사는 것이 괴롭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미 근위대에서 증거물로 가지고 갔다.
글씨는 동생의 글씨가 틀림없었다.
"혹시 동생이 일기는 쓰지 않았나요?"
"네. 일기는 안 쓰고 가끔 시는 끄적이는 것 같았어요."
"죄송하지만 요즘 쓴 시를 좀 찾을 수 있을까요?"
"네, 그러지요. 뭐…"
아단의 시가 한 장 나왔다.
<조용히
조용히 내 마음 들여다보며 길가의 꽃들이 말을 건네네
외면하는 사람에게 미소지라고…
조용히 내 마음 들여다보며 파랗게 개인 하늘 말을 건네네
잡동사니 일들일랑 잊어주라고… 조용히…>
시는 거기서 끝나 있었다.
사라는 아단의 형에게 부탁하여 그 시를 가지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누군가 창문으로 던졌던 쪽지를 찾아 글씨체를 비교해 보았다.
글씨체는 누가 봐도 같은 사람이었다.
사라의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섬세한 감성의 사람들은 심약한 면도 있지만, 내면세계를 잃지 않는 강인함도 있다.
그의 시를 읽고 사라는 아단이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단의 사망으로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아무래도 루브리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누가 아단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면 바로 그가 범인이다.
*나바테아 왕국 – 기원전 2세기 요르단 일대에 거주하던 아랍 셈족이 만든 왕국. 수도 페트라 유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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