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루브리아와 티베리아 호수에서 점심을 같이하기로 한 날이다.
점심 전에 미리 가서, 전에 앉았던 벤치도 깨끗이 닦아 놓고 수건도 깔아 놓는 게 좋을 성싶었다.
마나헴의 점성술 아지트는 내일 새벽에 습격하기로 했다.
사라에게 쪽지를 던진 사람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연락이 없었다.
바라바가 가게에 도착하여 청소를 대충 한 후 석청을 한잔 타 마시고 있는데 일찍 손님이 들어 왔다.
"여기 주인 요셉 님은 아직 안 나오셨나요?”
"네, 아직….”
대답을 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손님은 목발을 짚고 있었다.
"당신이 요셉 님의 아들인가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바라바가 일어서며 대답했다.
"네, 왜 그러시지요?”
목발이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왕궁 경호대원 네댓 명이 문을 발로 차며 우르르 들어 왔다.
모두 칼을 들고 있었고 바라바를 둘러쌌다.
순순히 헤롯 왕궁의 경호실로 끌려간 바라바는 어두침침한 독방에 넣어졌다.
생각해보니 참 이상했다.
전에도 루브리아와 약속이 있는 날 루고에게 잡혀갔었고 오늘도 그랬다.
그 목발을 한 사람이 바로 마나헴이란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루브리아가 걱정할 것이 먼저 염려되었다.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아버지도 곧 잡혀 올 것 같아 점점 초조해졌다.
잠시 후 철문이 삐거덕 열리고 목발의 사내가 들어 왔다.
벽에 붙어있는 횃불을 밝히니 주위가 환해졌는데 여기저기 검붉은 자국이 보였다.
"아버지 요셉은 왜 아직 가게에 안 나왔소?”
그의 첫 질문에 바라바는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아직 안 잡히신 것으로 보아, 자신이 끌려가는 것을 본 옆 가게 사람이 아버지에게 미리 알린 것 같았다.
"오늘은 안 나오실 거요.”
바라바가 침착하게 말하자 목발의 말투가 좀 부드러워졌다.
"나는 마나헴이라고 하오.
지금 우리는 열성당 당수를 잡으려 하는데, 당신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던 헤스론이라는 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당신도 그놈을 잘 알지요?”
바라바의 눈동자가 왼쪽 위로 한 바퀴 돈 후 말했다.
"아, 그 몸집이 큰 친구 말이지요. 우리 가게에서 일했었지요.”
"그놈 지금 어디 있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관리를 잘못해 우리 가게에 큰 불이 난후 말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바라바를 쳐다보는 마나헴의 날카로운 눈매에 횃불이 출렁거리며 지나갔다.
그가 안나스 제사장에게 요셉을 조사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제사장이 주의를 주었다.
요셉은 에세네파 장로인데 열성당이라는 게 좀 이상하고, 지역사회에서 명망도 높으니 조심해서 다루라는 언질이었다.
그러나 이 아들놈은 뭔가 수상했다.
안나스 제사장의 말만 없었어도 벌써 채찍질을 했을 텐데 손이 근질거렸다.
"당신은 이름이 뭐요?"
"저는 예수라고 합니다."
"예수? 흔한 이름인데… 나발이라는 사람이 당신을 잘 안다고 하던데 나발은 지금 어디 있소?”
마나헴이 넘겨짚어 물어봤다.
바라바의 속눈썹이 몇 번 껌벅거렸다.
"나발이 누군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헤스론이 일할 때 친구 몇 명이 있었는데 아마 그중 한 명 같습니다."
"음, 기억이 안 난다…처음에는 누구든지 그렇게 말하지.
여하튼 조사를 마칠 때까지 여기 좀 있어야 하오.
당신은 나를 만난 게 큰 다행인지 아시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채찍으로 피가 나게 맞았을 거요."
마나헴이 목발을 탁탁 짚으며 나가려다 뭔가 아쉬운 듯이 바라바를 한 번 더 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오?"
"친척 집에 가셔서 며칠 있다 오실 겁니다."
마나헴은 문을 세게 닫으며 나갔고 바라바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아버지의 거취에 대해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화창한 날씨였다.
하얀 벤치에는 올리브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늘어졌다.
호수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오리가 바쁘게 자맥질을 했다.
생선요리가 아무래도 음식점만은 못하겠지만, 이만하면 바라바 님이 좋아할 것 같았다.
지난번 맛있다고 했던 석청과 생강으로 만든 디저트는 물론, 리코더도 가지고 왔다.
식사하고 그동안 연습한 곡을 멋지게 불어볼 생각이었다.
낮이라 포도주는 안 가져오고 오렌지와 포도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동안 항상 먼저 와 있던 바라바 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호수에 비치는 흰 구름이 천천히 한 바퀴 돌아온 것 같은 시간이 지났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서둘러 집에 돌아온 루브리아는 유타나를 가게로 보냈다.
돌아온 유타나에게서 바라바 님이 아침에 헤롯왕의 경호대에 끌려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답답해지니까 눈도 침침해지는 것 같았다.
유타나가 뜨거운 물수건을 만들어 왔다.
물수건을 대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바라바님이 잡혀가긴 했어도 증거가 없는 한 곧 풀려날 거예요."
"응, 그렇겠지. 그래야지."
"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제가 아는 사람이 왕궁 경호실에 근무하니까, 좀 알아볼 수도 있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아버지한테 말하기도 어렵네."
"그럼요. 여하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바라바 님이 믿는 하나님이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실 거예요."
"음, 그래도 걱정이 되네. 혹시 고문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차라리 내가 잡혀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다."
루브리아가 양손등으로 눈을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