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가버나움에서 양고기 바비큐를 제일 잘하는 식당에서,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마음껏 먹으며 포도주도 몇 잔씩 했다.
사라의 결정권 행사로 당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화합을 위해 양보를 한 바라바에게 미사엘이 말했다.
"제가 제안한 절충안을 받아들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모인 젊은 분들을 보니 열성당의 장래가 대단히 밝습니다.
사무엘 님이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셨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희가 미사엘 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바라바가 화답하자 헤스론이 양고기를 집으며 한마디 했다.
"바라바 부당수께서 너무 양보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나 같으면 그냥 당수할 텐데… 뭐 실질적 당수이긴 하지만”
미사엘이 동의하는 뜻으로 헤스론에게 포도주를 권했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며 여러 대화를 나누던 중 사라가 미사엘에게 물었다.
"미사엘 님, 오늘 같은 날 이런 질문 해서 죄송하지만, 그 힘든 감옥에서 어떻게 하루하루 견디셨어요?”
"네, 처음에는 겁도 났고 고문을 당할 때마다 몸서리치게 힘들었지요.
머리를 돌벽에 몇 번 부딪쳐도 봤는데, 제가 돌머리라 안 깨지더군요. 하하.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마음이 안정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어요.
결국,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절대적 의미를 생각하고 찾게 되었지요.”
"네, 절대적 의미… 약간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바라바가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었다.
"제가 찾은 절대적 의미에, 절대적 믿음을 부여하니까, 감옥에 있는 제 인생의 실패가 더는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아, 참 좋은 말씀이네요. 절대적 의미에 절대적 믿음이라….”
사라가 동감을 표하며 거들었다.
"네, 그렇지요.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절대적 의미, 그 의미를 찾으면 절망하지 않고 힘이 납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양고기를 맛있게 먹으니까 힘이 막 납니다.”
헤스론의 말에 모두 크게 웃었다.
바라바가 미사엘에게 질문 했다.
"미사엘 님, 감옥 안에서 가장 힘든 일이 뭐였나요?”
붉은 포도주에 물을 반쯤 타서 한 모금 마신 후 미사엘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물론 고문이었지요. 나중에는 여기서 평생 못 나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과 좌절이 더 힘들었어요.
그럴 때 마다 기도했지요. 나의 마지막 자유를 지키는 능력을 달라고.”
"마지막 자유가 무슨 뜻인가요?”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그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는, 내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유입니다.”
"어려운 말씀이네요. 저희는 여기서 이렇게 편히 듣지만, 미사엘 님이 당하신 고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사라가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고 바라바가 다시 물었다.
"그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미사엘 님이 찾으신 절대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음, 제 입으로 이런 말씀 하기가 좀 그렇지만, 먼저 사무엘님에 대해 함구한 것에 저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사엘 님.” 사라가 고개를 숙였고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좀 거창할지 모르지만 아셀 님이 말씀하신 유다 마카비 장군의 정신을 우리가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도 절대적이었지요.
또 앞으로 우리 열성당의 투쟁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엘 님은 무력투쟁보다는 가능한 외교적 대화를 통해 우리의 뜻을 전달해야 불필요한 희생을 줄인다고 생각하셨지요.
시간이 좀 걸리고 어렵더라도 로마에 열성당 대표를 보내 외교적인 탄원을 해야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과격하게 힘으로 부딪쳐야 더 용감하고 믿음 있다고 생각하지요.
물론 꼭 그래야 할 때도 있지만요.”
“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오늘 미사엘 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희 젊은 사람들이 역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이렇게 열성당의 장래 문제가 잘 정리되어서 참 기쁩니다.”
바라바가 모임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하였다.
누보는 채찍으로 맞은 상처에 약을 바르니 더 쓰라려 왔다.
그동안 나발과 가까이 지냈지만, 그가 바라바와 한패인 줄은 몰랐다.
갑자기 지금 하는 일이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헴도 믿을 수 없지만 나발도 예전의 친구가 아니었다.
어깨의 상처가 아파서 고개를 돌리다가 누군가 미행하는 것을 느꼈다.
호텔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조금 가다 생각해 보니 집을 알려주는 것도 불안했다.
사람이 많은 시장통으로 들어가서 놈을 떼어 놓는 게 최선이었다.
어려서부터 시장에서 자란 그는, 복잡한 길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었다.
조금씩 발걸음을 빨리하다가 어느 골목을 돌자마자, 옆에 있는 큰 음식점의 쓰레기통 뒤에 숨었다.
급히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음식점 앞에서 잠시 멈추고 당황한듯했으나 곧 그길로 계속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보의 입에서 휴~ 하는 소리가 났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누보는 살금살금 오던 길을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이만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며 걷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탁’ 쳤다.
누보가 기겁을 하며 돌아봤다.
"너, 나발 친구 아닌가?”
술 냄새를 풍기며 곰 같은 덩치의 헤스론이 서 있었다.
"며칠 전 호텔 로비에 안 나와서 걱정했는데 별일 없었지?”
"네네, 안녕하세요. 헤스론 님”
주위에 헤스론의 일행인듯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예쁘장한 여자도 한 사람 있는데 같이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온 것 같았다.
어깨의 채찍 자국을 곰 발바닥처럼 생긴 손으로 또 맞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 아팠다.
누보는 '억' 소리를 입안으로 삼키며, 오늘 지독히 일진이 사나운 날이라고 생각했다.